2009년 7월 24일 금요일

Uncanny Valley





일본의 유명한 로봇 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는 1970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不氣味の谷 현상이라는 것을 소개하였다. 영어로는 uncanny valley라고 불리며 우리말로는 "불쾌한 골짜기"나 "이상한 골짜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이론의 골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로봇의 움직임이나 생김새가 인간의 모습에 근접하면 근접할 수록 더 호감을 갖지만 인간과 너무 비슷하면 오히려 혐오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예 완전히 흡사하면 괜찮지만 어중간하게 비슷했다간 되려 극도의 반발심을 유발한다. 악수를 한 상대방의 손이 의수임을 알아차렸을 때 순간적으로 드는 당혹감과 섬뜩함도 이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공업용 로봇들과는 달리 한국과 일본 등에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정용 로봇의 모습을 보면 모두 다 한결같이 인간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몸통 위에 머리가 달려 있고 두 개의 팔이 달려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로봇에겐 사실상 머리도 필요없고 얼굴도 필요없다. 어차피 입을 벌리며 말을 할 것도 아니고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로봇에게 입이 왜 필요한가? 팔이 두 개밖에 없는 것보단 세 개, 네 개 달리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두 팔을 고집하는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인간을 닮은 로봇에 가장 친근함을 느낀다고 한다. 상상해 보라. 병든 노인을 간호해 주는 간병 로봇이 발이 수십 개 달린 지네 모양으로 생겼다든지 어린 아이를 돌봐 주는 베이비시터 로봇이 거미 모양으로 생겼다면 느낌이 과연 어떠할지? 태권 V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사마귀처럼 생겼었다면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로봇의 보행수단으로서 지네나 곤충처럼 생긴 발이 실제로 이동성이나 안정성 면에서 훨씬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로봇 공학자들이 인간과 같은 이족 보행 로봇을 만드는데 온갖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로 로봇이 인간을 닮으면 닮을 수록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괴이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놓는 한 가설에 의하면 인간과의 공통점이 적은 로봇의 경우에는 인간과 닮은 부분이 부각되어 보이지만 거의 흡사할 정도로 닮은 로봇은 닮은 부분보다 오히려 닮지 않은 점들이 눈에 더 잘 띄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위화감을 조성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더 나아가서 인간과 지나치게 흡사한 로봇의 경우 생긴 것은 비록 사람 같아 보여도 무표정함, 풀린 눈동자, 차가운 피부 등의 미묘한 특성들 때문에 사람의 시체를 연상시키면서 오히려 거부감, 두려움, 섬뜩함 등의 감정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이 uncanny valley 현상은 비단 로봇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올 봄 2006 E3 게임 컨벤션에서 Quantic Dream사가 의 후속작으로 개발하고 있는 게임 의 테크 데모를 공개했는데 모션 캡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컴퓨터 그래픽과 캐릭터 모델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이 영상이 알게 모르게 혐오심을 유발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Casting Call, 즉 "오디션"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이 영상은 헤비 레인에 사용된 게임 엔진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프리렌더가 아닌 인게임 엔진으로 직접 제작된 홍보 동영상으로서 게임의 주인공역을 "연기"한 가상의 배우가 게임 제작자를 찾아와서 주인공 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본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되어있다. (연기 경험이 있냐는 감독의 질문에 키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원하는 머리 색깔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낙방을 했다고 대답하는 주인공. 오디션을 통해 혼신의 연기를 선보인 후 방을 나가자 "꽤 괜찮지 않았어요?" 하는 조감독의 질문에 감독, "괜찮으면 뭐해? 키가 너무 크잖아" 이래 버린다...-_-) 아래의 동영상은 너무 흐려서 디테일이 잘 안 보이니 필히 HD화질 동영상을 다운받아서 보기 바란다.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인 인간의 묘사이지만 아주 미묘하게 어색한 점들이 왠지 더욱 돋보이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유럽에서 만든 게임이다 보니 주인공역을 맡은 여자 성우의 영어 발음에 액센트가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왠지 캐릭터에게 약간의 정신 장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설정상 실제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Uncanny valley와는 조금 무관한 이야기지만 재작년에 id soft의 기대작 가 나왔을 때 인터뷰를 통해 제작자 존 카멕은 전편에 비해 현저히 느려진 게임 플레이에 관한 질문에 대해 비슷한 이유를 대며 해명을 한 적이 있었다. 즉, 오리지널 둠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래픽이 원시적이어서 만화 캐릭터 같이 생긴 주인공이 아무리 오두방정을 다 떨며 스크린상을 헤집고 뛰어다녀도 사람들이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둠3의 그래픽은 실사에 가까운 현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너무 빨리 뛰어다니거나 사방에 점프를 하고 다니면 비현실적인 요소가 오히려 더 부각되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수효과에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uncanny valley 현상은 영화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초의 풀 CGI 영화임을 자랑했던 파이널 판타지 영화판은 극도로 사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평이 있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으로 유명한 픽사의 경우 <인크레더블>에서 사실적인 배경 화면과는 달리 만화와 같이 2D 느낌을 주는 스타일라이즈된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 픽사측은 정밀한 묘사를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 uncanny valley 현상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적극적 해결책이었다고 해명을 한 바 있다.
한편 인크레더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한 워너브라더스의 경쟁작 <폴라 익스프레스>의 경우는, 3D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인해 영화의 주타겟이었던 어린이들이 일부 (특이 어린 아이들이) "무섭다"는 반응을 보이며 극장에서 나가겠다고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유명한 영화 평론가인 리차드 로퍼 역시 <폴라 익스프레스>를 관람하면서 무의식 중에 이 uncanny valley의 존재를 인식한 듯하다. 그는 자신의 영화평을 통해 영화에 대한 수많은 칭찬을 늘어놓던 도중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Now as much as I love this film, I have to say there's something creepy and haunting about some of the scenes. With their big eyes and sad faces, some of the children are kinda spooky-looking."
"제가 이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긴 합니다만 일부 장면들에선 좀 괴이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눈에 슬픈 얼굴을 한 어린 아이들[주인공들]의 모습이 왠지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실제 인물을 본떠 만든 밀랍 인형을 볼 때 우리는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라는 표현을 무의식 중에 사용하곤 한다. 왜 제임스 딘은 멋있어도 제임스 딘을 빼닮은 인형은 "섬뜩"할까? 로봇 기술이 발전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나날이 진보하는 가운데 인간이 자신을 닮은 피조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맞딱뜨릴 수밖에 없는 이 이상한 골짜기를 뛰어넘기 위해 앞으로 어떠한 돌파구를 마련해낼지 궁금해진다.


Uncanny Valley 관련 글:
- http://www.androidscience.com/theuncannyvalley/proceedings2005/uncannyvalley.html
- http://www.arclight.net/~pdb/nonfiction/uncanny-valley.html
- http://en.wikipedia.org/wiki/Uncanny_valley
- http://ja.wikipedia.org/wiki/%E4%B8%8D%E6%B0%97%E5%91%B3%E3%81%AE%E8%B0%B7%E7%8F%BE%E8%B1%A1
- http://robot01.com/contents/news_view.php?page=0&num=1404&search_field=&search_word=&bod_code=B00002
- http://www.slate.com/id/2102086/
- http://natsuo-omodaka.no-blog.jp/qualia/2004/09/post_16.html
- http://hotwired.goo.ne.jp/news/20051212201.html

모리 마사히로 관련 글:
- http://en.wikipedia.org/wiki/Masahiro_Mori
- http://robofesta-mie.com/cup.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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