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6일 일요일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

...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홍보부처를 두고 있다. 공식 명칭으로는 대개 기업 커뮤니케이션 부서라고들 한다. 이 부서에서는 신흥 봉건제후들이 여론에 주입시키고자 하는 세계관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이를 옹호하며 널리 알리고 정당화시키는 일을 주된 업무로 삼는다.

장-폴 마라는 벌서 2세기나 앞서서 오늘날 광고나 PR계의 말재주꾼들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상세하게 묘사했다. "여론이라는 것은 무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무지는 극단적인 독재가 싹틀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 사물에 대해서 건전하게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에만 집착할 뿐이다. 로마인들도 카이사르에게 그가 왕이라는 지위를 가졌을 때에는 거부했던 권한을 황제라고 이름을 바꾸니 아무 저항 없이 내어주지 않았던가? (.....) 말에 현혹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파렴치한 사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만 되어 있다면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반대로 칭송받아 마땅할 사물들이 아름답지 못한 말로 묘사되면 그것을 혐오한다. 그러므로 행정부의 일상적인 업무란 말의 뜻을 왜곡함으로써 민중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신량특별조사관이라는 나의 직책 때문에 나는 이들 신흥 봉건 제후들과 토론을 나눌 때가 종종 있다. 논리에서 밀리거나 자신들의 결정이 초래하는 참담한 결과로 화제가 옮겨갈 때마다 신흥 봉건제후들이 어김없이 내세우는 변명이 있다. 바로 '소통 부족'이다...



... 경쟁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사납고 맹렬하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는 경우란 없다. 매 순간이 치열한 전쟁의 연속이다. 정글의 법칙만이 지배할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늘 맹렬하고 냉소적이며 냉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얼마간의 공감을 느끼는 인류애라는 명분 때문에 이윤 극대화라는 절대 절명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건 곧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이와 같은 딜레마를 겪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적지 않다.

네슬레의 책임자인 페터 브라벡의 예를 들어보자.

에티오피아에서는 720만 명의 남녀노소가 기아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출품은 커피다. 커피야말로 에티오피아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3년 전부터 생산자들에게 지불되는 값이 급락하고 있다. 따라서 수백만 명의 농부들의 가정은 와해되거나 대도시 주변 빈민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들은 거리를 배회하다가 서서히 죽어간다.

브라벡은 세계 시장에서라면 얼마 안 되는 값에 구입할 수 있는 원두에 대해서 에티오피아 농부들의 딱한 사정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높은 값을 지불해야 할 것인가? 혹은 오늘날 무소불위의 네슬레를 있게 만든 이윤 극대화 원칙을 포기함으로써 그의 경쟁자들인 아처 다니엘스 미들랜드, 유니레버, 혹은 카길 들이 커피시장에서 네슬레를 거꾸러뜨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요제프 아커만은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은행인 도이체 방크의 회장이다. 그는 스위스 루체른 태생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다. 그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부채의 극심한 폐해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채에 대한 전략을 바꾸는 않는다. 만일 그가 일방적으로 채무 변제를 포기한다면, 이는 수천만 명의 삶을 구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세계 자본시장에서 도이체 방크의 위상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득을 보는가? 물론 그의 경쟁자들인 크레디 스위스 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맨해튼 은행 등이 덕을 보게 된다.

부채와 기아 덕분에 나날이 번영하고 있는 세계화된 자본주의 맥락에서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끈끈한 연대의식을 지닌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들이 세운 제국이 와해될 것이고, 반대로 그들이 연민이나 인류애 등을 지옥에 던져버리고 사납고 냉소적인 야수처럼 행동한다면 투자가 증대되고 이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속구칠 것이며, 발밑엔 시체가 즐비하게 널릴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이들 신흥 봉건제후들이 그들의 활약을 통해서 거두어들이는 엄청난 액수의 보수를 고려한다면, 연민의 길을 택해서 제국을 와해시키는 선택은 이들에게 결코 매력적일 수 없다...



... 다른 종(가령, 토마토나 감자, 염소 등)의 유전자 하나를 이식받은 쌀은 기후 변화에 강한 벼이삭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건조한 토양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거나 더 많은 이삭을 맺는다거나 살충제가 필요 없다거나 하는 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렇듯 유전자 변형이 이루어진 식물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곡물을 생산하게 된다는 양면을 지닌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바꿔 말해서 광우병만 봐도 이 문제는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식물의 유전자 변형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이식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식을 통해 이루어진 염색체가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보기엔 유전자 변형 식물이야말로 천문학적인 이윤을 보장해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다. 특허권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된 종자를 사용하는 농부가 지난해의 수확에서 다음 해의 수확을 위해 일정 비율의 종자를 남긴다면, 농부는 이 종자의 특허권을 가진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일종의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농부가 유전자 변형된 종자를 사용하되 그 종자가 번식이 불가능한 종자라면('터미네이터' 특허), 농부는 해마다 기업으로부터 새로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

유전자 변형 유기체의 생산과 보급은 자본주의 추종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생물과의 불공정한 경쟁을 근원부터 차단하겠다는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자연, 즉 생명은 식물이나 인간, 먹을거리, 공기, 물, 빛 등을 무료로 생산하고 얼마든지 재생산한다. 자본주의자들에게 무료로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공재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자들은 무료라는 것을 끔찍하게 혐오한다...



... 세계식량계획은 재난을 당한 지역에 수만 톤의 식량, 특히 옥수수를 긴급 지원했다. 이 옥수수의 상당 부분은 미국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100퍼센트 유전자 변형된 품종의 옥수수였다.

2002년 10월 12일, 잠비아 대통령은 국제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다. 상당수 잠비아 국민들이 식량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옥수수를 '독이 든 식량'이라고 비난하며 거부했던 것이다. 그는 세계 식량계획 측에 '독이 든 식량' 배분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나의 기자 회견이 끝나갈 무렵 아프리카의 한 젊은 여기자가 잠비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전형적인 스위스인답게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국제학계는 유전자 변형 생물이 공중보건에 야기할 수도 있는 위험을 놓고 양분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유전자 변형을 거쳐 만들어진 혼합 식량을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생물학자도 의사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이 문제에 관해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학 있으며, 따라서 유전자 변형 생산물의 유통을 금지하고 (유럽연합은 동물 사료용 혼합 콩의 유통만을 인정하고 있다)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워싱턴 행정부와 공개적인 갈등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 때문에 유럽연합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상태입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일에게 유전자 변형된 생물의 무독성을 의심할 권리가 있다면, 잠비아 대통령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겠죠. 따라서 나는 아프리카의 거부가 정당하다고 봅니다."...



... 유전자 변형 생물에 관한 갈등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걸려 있는 절박한 문제다. 미국 농가공 식품업계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자신들이 보유한 종자들과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제품들을 파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적지 않은 나라에서,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미국 업체들은 유전자 변형 생산품 금지 조항을 피해가기 위해 순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고 있다.

이들 업계의 선두주자가 바로 몬산토 사다. 백악관에서 이 회사의 입김은 대단하다. 세계유전자 변형 종자(관련 제품 포함) 시장의 개방이 몬산토 사의 최우선 과제다. 몬산토 사가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자 변형생물(GMO) 생산 기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7천만 헥타르의 GMO 경작지 중의 90퍼센트가 몬산토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 볼리비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볼리비아 정부는 세계은행의 압력에 못 이겨 공공 상수도 망을 민간 기업에 팔았다. 계약이 체결되자 민간 기업들은 서둘러 물값을 2배로 올렸다. 이는 대다수 볼리비아인들이 식품비보다 훨씬 비싼 물값을 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수도사업의 독점권을 민간 기업에게 이양할 경우, 사람들의 허가 없이는 마을 앞 공동우물에서조차도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다. 대규모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나 소규모 소작농들 모두 자기 땅에서 빗물을 받아 쓰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허가증을 사야만 한다.

그렇지만 볼리비아인들, 특히 에보 모랄레스에 의해 조직화된 인디언 주민들은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볼리비아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거센 저항 앞에서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민영화 법안을 철회했다(가장 격렬한 폭동은 코차밤바에서 일어났다. 이 도시에서 식수 사업자 권리를 따낸 회사는 미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인 벡텔 사였다.)

앞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네슬레는 가장 막강한 식수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수 사업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자다. 파키스탄의 경우를 보자.

몇 년 전 파키스탄의 언론에서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어졌다. 네슬레 측에서는 이 캠페인이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예방 캠페인'에서는 카리치나 물탄,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라왈핀디 등의 공공 상수도 시설을 통해서 공급되는 물이 비위생적이고 건강을 위협하므로 이를 저지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물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준에 합당한 물이었다.

이 '예방 캠페인' 소동이 있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네슬레는 파키스탄에서 낱개 병으로 포장된 생수 판매를 시작했다. 네슬레 사의 마케팅 귀재들은 이 생수에 '퓨어 라이프'라는 기가 막힌 이름을 붙였다.

닐스 로즈만은 그의 저서 『파키스탄의 식수 위기, 병에 담아 파는 식수 문제. 네슬레의 류어 라이프의 경우』에서 파키스탄 네슬레 사가 챙긴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익과 극단적인 냉소주의적 전략에 대해 파헤쳤다(2005년 이슬라마바드에서 출판)...



...이윤 극대화라고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희한하게도 가장 중요한 이 과제에 대해서만큼은 브라벡의 '경영 관리 원칙'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수도사라면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관행을 요구한다. 냉전시대에는 갑작스러운 가격 하락을 막고, 가격 하락으로 인해 생산자들이 공산주의 쪽으로 경도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상산자와 구매자 사이에 협약이 이루어져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된 오늘날에는 세계무역기구가 과거의 협약을 하나하나 무효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베베이 네슬레 왕국에 군림하는 수도사는 세계무역기구의 방식을 누구보다 열렬히 선호하는 사람이다...





-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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