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6일 일요일

김민수 "모던디자인비평"

누군가 이 책 전체를 통해 필자가 밝히고자 했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해보라고 주문한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그것은 디자인의 '반성적 성찰의 인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결국 필자가 이 책을 통해 논의했던 모던 디자인으로부터 포스트 모던과 해체로의 이탈 과정은 철학적으로 볼 때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또는 그것이 규정했던 규범 체계들에 대한 반성을 통한 '극복'(하버마스식의)과 '초월'(데리다와 푸코식의)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 이러한 이탈 과정을 눈여겨 보면서 필자는 그동안 적용되었던 디자인 실무와 교육에 대한 냉철한 반성적 성찰만이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디자인의 실무와 교육을 통해 적용되었던 상당히 많은 주된 가치들이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변화의 양상은 디자인의 개념 자체에 대한 수정으로까지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앞서 우리가 살펴 보았들이 결코 우연에 의해 초래된 결과가 아니라 뚜렷한 역사적, 정치 - 경제적, 사회 - 문화적 인과 관계들 속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디자인은 그와 같은 현재의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설득력있는 해석이나 그 자체를 평가하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이 책에서 필자가 모더니즘 이후의 포스트 모던과 해체주의 디자인을 그 철학적 견해에서부터 디자인 실행까지 연결시키면서 조명한 데 대해 그와 같은 외래적 현상들이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혹자들은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원래 '디자인'이란 개념 자체도 외래적으로 수입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한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은 왜 디자인의 개념 자체를 수입된 시점에서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서구 사회에서조차 그 개념을 포기 또는 수정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애써 도외시하고 있는가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역사 의식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이는 달리 말해 스스로를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결별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설사 오늘날의 디자인의 개념적 변화가 서구적 상황에서 발생된 현상이라 간주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치 - 경제적, 사회 - 문화적 변화 속에서 볼 때 결코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또한 우리가 과거의 통제된 유형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정보와 자본의 흐름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면, 모든 현상은 결코 어떤 특수한 문화 지형 내에서 고립적으로 발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시공간 상의 변화도 부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 어떤 섬에서 땅굴을 파고 옥쇄(玉碎)하다 살아 남아 몇 십년 뒤 땅 밖으로 기어나온 일본군이 자신은 아직도 '황국(皇國)을 지키는 전사'라고 울부짖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세계 문화적 보편성을 위해 우리 고유의 특수성을 희생시켜온 우리에게 현재 직면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분석되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분석의 방향이 어느 한쪽을 배격하면서 다른 한쪽만을 강조해야 하는 모습으로 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은 세계적 보편성과의 균형 감각을 유지할 때 그 참다운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 40년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만들어 놓은 국제적 '보편성'을 얻기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 그 과정에서 모든 문화적 '특수성'들이 '보편성의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유실되고 망각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근래에 들어 우리 고유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문화 저변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의 흥행이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접해졌듯이). 어찌 보면 이러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조장되기 시작한 것은 보편성이 어느 정도 획득되기 시작한 아주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디자인의 임무는 현재 이중적인 과제로 남는다. 즉 우리는 한편으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보편적인 디자인 어휘를 전개시켜야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서 어떠한 디자인을 어떻게 현대 디자인의 맥락으로 추구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요즘 세간에 유행하고 있는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표어만으로 간단히 해결될 성질은 아니다. 예를 들면 요즘 모 기업에서 개발된 "누룽지를 만들 수 있는 전자 밥통"과 "물걸레질하는 진공 소제기"와 같은 제품들이 우리와 다른 문화 공간 속에 곧바로 적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결국 국수주의적인 자기 도취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며, 반대로 외래 문화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반대로 자기 멸시와 허무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해석하는 태도에 한가지 문제가 있음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유달리 한국에서 알레르기 반응식으로 곧잘 매스컴을 통해 떠들어 대는 "문화 침투(cultural invasion)"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文化觀)'이 이 두 단어의 결합 속에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일상적 용례에서 우리가 "~에 침투하다 또는 침투해 들어가다"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원래 '침투'라는 말은 특정한 공간 또는 상황이 전제된 말이다. 침투라는 말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공간 또는 허약한 대상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며, 공간을 특정하게 한정지울 수 없을 만큼 원대하거나 강인한 것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로(특정 공간 속으로) 외계인이 침투하다"라는 말은 사용해도 "지구인이 우주에 침투하다" 라는 말은 별로 의미있는 말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병원균이 몸에 침투하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겨 항균력이 약해졌을 때이다. 이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침투가 문화라는 말과 결합되어 "문화 침투"란 말이 되었을 때 이 복합어는 어떤 이질적 문화가 침투하게 되는 대성으로서 '고정된, 정체된, 비역동적인, 허약한 문화 공간'을 지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 문화에 대해 어떤 이질 문화가 침투하고 있다고 호들갑 떨며 경고식의 말을 해대는 것은 우리 문화의 비역동적 정체성을 자인하는 말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갖고 있던 쪽박마저 깨질까봐 벌벌 떨고 있는 너무나 미약한, 주체적 자존심도 없는 존재들로 매도하게 되는 말이 된다. 그 말은 우리 문화를 정체된 허약함으로 규정지움으로써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결국에는 소인배임을 자처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제 때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내요시가 "한국과 그 예술"이라는 글에서 조선의 미(美)를 반도적인 지리적 특성과 그로 인한 비참한 역사로 각인된 것으로 파악해 "애상적인 비애의 미"로 서술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문화 침투란, 스스로를 우주적 공간으로 원대하게 여기고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 대해서는 절대로 적용될 수 없는 용어이다. 또한 그 문화가 주체적 자아를 갖고 있다면 설사 수퍼 헤비급의 이질적인 것이 침투한다고 해도 자체의 문화적 에너지로 용해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문화 침투라는 용어 속에서 스스로를 소인배로 격하시키게끔 유도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성 말살의 망령이 되살아남을 느끼곤 한다. 대한 민국 헌법 전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를 "한반도와 부속 영토로"규정짓고 있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를 정체적인 불변의 공간적 의미로 한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갖게된 문화 개념은 뜨겁게 살아 숨쉬는 오늘의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무덤에서 파낸 '골동' 문화밖에는 없는 것이다. 왜 문화는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손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점에 대해 필자가 지난 1986년 뉴욕 매디슨 애비뉴 59가의 IBM 갤러리에서 보았던 한 전시회에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도쿄, 형태와 정신(Tokyo, Form&Spirit)"이라는 전시회로 일본 문화 재단과 유수의 일본 기업들의 후원으로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사진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마련된 것이었다. 그 전시회는 일본의 전통성과 현대의 조형적 실험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였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필자의 뒤통수를 쳤던 것은 8폭짜리 병풍이었다. 그것은 칼을 들고 군무를 추고 있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수 놓은 것이었는데, 색이 좀 바래 누가 보아도 '에도 시대' 이전의 것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골동품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병풍을 눈여겨 보다가 그림의 하단부에 사무라이가 신고 있던 신발이 '나이키' 운동화임을 발견하고 필자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잠시 후 그것은 그저 웃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아아! 이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오가며 내일로 향해가는 사람들이구나. 두고두고 필자는 그 '나이키를 신은 사무라이'의 망령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은 우리가 이땅에서 애써 부인하고 그로 인해 편협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커진 나라이다. 일본의 위상이 훨씬 더 커진 원동력은 바로 그와 같이 과거를 오늘에서 정의하려는 노력과 그로 인해 '골동'을 그 자체로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로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문화적 역동성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옛 선조들이 일보에 전해준 고대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일본에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최면에 빠진 '골동' 문화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속성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우리는 영원히 '수비형'의 문화로 남아 있으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져왔던 이와 같은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에 일대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언제 침투할지 모를 외래 문화에 대해 언제까지 불한한 '수비형'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말이다. 왜 우리는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대응하고, 우리의 문화를 외부적으로 발산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 필자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우리 문화 내에서 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수비형의 자세를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상당히 철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안에 주체적 자아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주체적 자아라는 자기 - 정제력을 가진 여과체가 있을 때 또한 그러한 주체들에 의한 자발적인 참여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양질의 문화를 식별해 냄으로써 스스로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되는 자생력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문화를 위로부터 명령에 의해 하달된 것(top - down)이 아니라 자체의 여과 기능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된 문화(bottom - up culture)'라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학술적인 설명 이전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의 본질적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설사 어떠한 외래 문화들의 침투가 융단 폭격식으로 가해진다 해도 붕괴되기는 커녕 끊임없는 생성 과정을 통해 계속적으로 자체 문화의 폭을 증식시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보편과 특수 사이의 균형감각과 하께 자기 - 여과력의 기능이 우리의 문화 속에 있어 준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추구해온 디자인스럽게 보이는 '모조 디자인(pseudo - design)'의 차원을 벗어나 개념 설정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의 해석을 디자인에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앞서 보았던 베네통사의 고아고, 멤피스의 산업 디자인, 꼼드 갹송의 패션이 넓혀 놓은 '인식의 범위까지만' 디자인해야 하는가? 그러한 창의적인 작업들이 이 땅에 처음 소개될 때면 으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야!" 라고 애써 거부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리는 온통 그와 같은 것들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러한 창조의 주인공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이 허물어 버린 창조적 인식의 그늘을 더 좋아하는가 말이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우리의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이 그동안 어떠한 재평가도 없이 다시 바우하우스 또는 울름 조형대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서구식 커리큘럼을 '구색 맞추기식'으로 복제하고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어째서 이러한 디자인 운동들이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일말의 재고도 없이 받아 들여져 마치 그것들 아니면 교육이 망가지는 것처럼 소중시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우리의 디자인 교육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념적 오류와 그것으로 인해 각인된 디자인 교육의 방식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필자가 바우하우의 좌익 성향과 당시 독일의 철학적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뚜렷한 연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듯이, 사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은 당시의 나찌 독일을 가능하게 했던 기반 속에서 잉태되었던 것이다. 나찌의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t) 우익 정치 이념은 좌익 바우하우스를 폐교시키고 많은 모더니스트들을 미국으로 망명시킨 계기를 제공했지만, 이념 자체로 보았을 때 나찌의 정치 이념은 모던 디자인의 이념과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른바 나찌가 수백만 유태인 대량 학살의 명분으로 삼았던 게르만 민족의 단일한 '혈통적 순수성' 보존의 이념과 디자인에 있어 어떠한 개별적인 탐색과 표현성도 말살시킨 모던 디자인의 순수한 '기능적 순수함'의 이념 사이에는 은유적인 것 이상의 직접적인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똑같은 동전에 찍혀진 양면에 불과할 뿐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 특정 이데올로기가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이억만리 떨어진 이 땅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디자인 교육의 유일한 패러다임으로 언제나 찬양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우리는 현 시대에 새롭게 재편성되고 있는 철학적, 정치 - 경제적, 사회적 - 문화적 구조 위에서 그동안 추구해 왔던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디자인 자체의 비평적 기능을 파생시킴으로써 철저한 '자기 - 반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얻어진 결과들이 우리 모두에게 공유될 때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디자인이 어떠한 위상에서 어떤 목표로 향해 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상과 목표를 설정하려는 어떠한 자체의 논의도 없이 다만 그럴듯 해보이는, 또는 남들이 우려 먹다 버린, 방법론의 도입을 되풀이 함은 마치 키없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돛단배와 같지 않겠는가?


김민수,"모던디자인비평" (안그라픽스, 1994) 중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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