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6일 일요일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 1

...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부자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남반구가 북반구, 특히 북반구의 지배계층을 위해 돈을 댄다. 오늘날 북반구가 남반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부채를 제공하고 그에 대해서 받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흘러들어오는 자본의 양은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흘러들어가는 자본의 양을 초과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해마다 부자 나라의 지배계층에게 자신들이 투자나 협력 차관, 인도주의적 지원 또는 개발 지원 드의 형태로 받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한다.

2006년 북반구 선진 산업 국가들이 제3세계 122개국의 개발을 위해 지원한 돈은 580억 달러였다. 같은 해 제3세계 122개국은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황 명목으로 북반구 은행에 포진한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에게 5,010억 달러를 지급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 속에서 부채는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을 노예 상태로 만들어 복종시키기 위해서 기관총이나 네이팜탄, 탱크 다위는 필요 없다. 부채가 그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 부채는 두 부류의 인간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 다시 말해서 외국 채권자들과 해당 국가의 지배계층 구성원들이다. 우선 채권자들의 경우를 보자.

채권자들은 채무국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매우 엄격한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제3세계 국가들은 빌린 돈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이자율보다 5배에서 7배쯤 높게 책정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몇 개 되지도 않는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나 탄광, 실속 있는 공공서비스(전화 사업 등)을 민영화하거나 외국(채권자들 자신)에 판매할 것을 종용하며, 군대의 무장을 위해서 외국(채권자들의 나라)의 무기를 구입하도록 촉구하는 식이다.

부채는 또한 채무국 지배계층 구성원들에게도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남반구에 위치한 상당수 국가의 정부는 결국 자국민의 극소수, 이른바 '매판 상인(comprador)' 즉 콤프라도르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매판 상인이란 정확하게 누구를 지칭하는가? 두 가지 부류의 사회 계층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부류. 식민지 시대엔 외국 주인들이 원주민 보좌관들을 필요로 했다. 주인은 원주민 보좌관들에게 특혜를 베풀어주고, 그럴듯한 지위를 부여했으며, (소외된) 계급의식을 심어주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같은 계급의식은 식민지 시대가 끝나 주인이 떠나간 후에도 계속 남게 되었고, 이들은 식민지 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세워진 독립 국가의 신진 지도계급이 되었다.

두 번째 부류. 남반구 국가들의 대다수는 오늘날 경제적으로 외국자본과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외국의 열강들은 채무국 현지에서 지도자와 현지 간부들을 고용하며, 이들은 현지에서 일어나는 상거래를 위하여 현지 변호사들과 기자들에게 자금을 댄다. 이들은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주요 군 장성 및 경찰 수뇌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이 바로 매판 상인들의 두 번째 부류다.

콤프라도르는 '사들이는 사람'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콤프라도르 부르주아라고 하면, 새로운 봉건제후들에게 매수된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기들을 낳아준 민족이 아닌 남의 나라 출신 봉건제후들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이집트의 국가 원수인 호스니 무라바크는 부패와 배임으로 똘똘 뭉친 정권을 지휘하고 있다. 그가 펼치는 국내 정치나 지방행정은 전적으로 그의 후견인격인 미국 정부의 법령과 이익을 대변한다.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파키스탄의 지도자다. 미국의 정보조직이 그를 보호하고 지지한다. 그는 매일 워싱턴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다. 온두라스나 과테말라의 라티푼디움 소유주,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의 지도자 계급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이들의 이익은 현재 이들 나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국가의 기본적인 이해관계, 국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수요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 콤프라도르 계급은 너무나 오래전부터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애국심으로 포장된 이들의 발언이 너무도 공격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을 '당연한' 지배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들이 주인으로 모시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 옆에 붙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피지배적인 상황에 놓인 나라의 지배계층에게 국가의 부채는 많은 이권을 보장한다. 가령 멕시코,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콩고민주공화국, 방글라데시 등의 나라가 댐이며 도로, 항만 시설, 공항 등의 사회기반 시설 건설을 계획한다면? 이들 나라에 최소한의 학교와 병원이 필요하다면? 두 가지 해결책이 가능하다. 첫째, 누진세율에 따라 세금을 거둔다. 둘째, 외국 은행 차관단과 협상을 해서 차관을 얻는다.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도 안되지!

외채를 끌어다 쓴다고? 그보다 더 쉬운 일은 없지!

제3세계 국가 대다수는 거의 전적으로 콤프라도르 계급의 이해관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인 리듬으로 두 번째 해결책을 선택한다. 그때마다 외국 은행 차관단은 이들의 말 한마디에 얼른 돈을 내준다.

그런데 이 부채라는 것은 현지 지배계급 구성원들에게는 수많은 이익을 안겨준다. 거액의 부채를 끌어와서 건설한 사회기반 시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이들이다. 국가가 외채를 들여와서 제일 먼저 건설하는 것은 도로이며, 그 덕에 이들은 자신들의 거대 영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항만 시설을 건설하면 영지에서 수확한 면화, 커피, 설탕 드의 수출이 용이해진다. 육지 교통이나 항만 설비뿐 아니라 국내 항공 노선도 개설하게 되고 병영이나 구치소도 순차적으로 건설하게 된다...



... 한 나라가 북반구 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등의 채권 기관에 이자 지불이나 원금 상환을 거부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가?

지불을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 파산을 선고하는 공식적인 절차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국제법은 침묵을 고수한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볼 때, 지불 불능 상태의 국가는 전부 또는 일부 변제 불능 선고를 받은 민간 기업이나 개인과 독같은 대접을 받는다.

예를 들어보자. 약 20년 전에 알란 가르시아가 이끄는 페루 정부는 재앙에 가까운 자국의 재정 상태로는 브레턴우즈 기관들과 외국 민간 은행으로부터 얻은 외채에 대한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전체 외채 중에서 30퍼센트만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는?

어육 분을 싣고 항해 중이던 페루 선박 한 척이 함부르크 항구를 지날 무렵 독일 은행들로 구성된 채권단의 요청으로 독일의 사법 당국은 이 선박을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그뿐이 아니다. 당시 페루 공화국은 수준 높은 국제적 항공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페루 정부가 일방적으로 외체의 일부분에 대해서만 이자를 지급하고 원금도 일부분만 상환하겠노라고 발표한 직후부터 뉴욕이나 마드리드, 런던 등 세계 주요 공항에 착륙하는 페루 소속 비행기들은 해당 채권자들의 요청에 따라 발이 묶였다.

요컨대 자국만의 완전한 자치주의를 고수하며 폐쇄정책을 밀고 나갈 작정이 아닌 한, 오늘날 제3세계의 그 어떤 채무국도 고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채무 변제 불이행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럴 경우 모든 국제 교류의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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