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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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기저기 지식in ;;;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 진중권 “내 인생의 책”
저는 우선 고전을 권해요. 고전이라는 것이 괜히 고전이 아니잖아요. 저한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책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어요. 모든 예술이 거기 다 나온다고 보면 되요. 상상력이 장난이 아니죠. 예를 들어, 만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모험>은 루이스 캐롤의 일본판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제임스 조이스 같은 다 거기서 나온다고. 거기에 상상력의 원천이 있거든요.
유머 감각 있잖아요. 제가 정치풍자 같은 것 할 때 쓰는 유머감각 같은 것. 그건 마크 트웨인에게서 배웠어요. <톰소여의 모험>이죠.
애드거 앨런 포의 어렸을 때는 단축된 것을 읽었는데, <황금 풍뎅이>라는 걸 보면 암호 찾는 게 나와요. 그걸 보고서 어렸을 때 암호와 기호, 언어에 대한 관심과 자극을 받았구요.
애드거 앨런 포 단편선
상상력을 확 키워준 것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예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좋았다 정도였는데. <황금가지> 보면서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화와 종교, 철학을 기본이라고 하지만, 사실 신화 이전에 있는 게 주술이거든요. 신화만 해도 굉장히 합리적이고…그런데, 이건 그 이전의 얘기예요. 굉장히 풍부한 아이디어 얻을 수 있죠.
저에게 충격을 줬던 책이 있어요. 제가 쓴 <춤추는 죽음>이란 책을 쓰게 만든 토대가 된 책이죠. 바로 필립 아리에스가 쓴 <죽음 앞의 인간>이예요. 많은 작업을 하는 데 바탕이 되었는데. 이런 책 하나 쓰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책이 하나가 바로 이 책이예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도 그런 책이죠. 서양 사람들보면 젠틀해 보이고 매너 있어 보이잖아요. 중세 때 외향적이었던 서구 사람들이 어떻게 내성적으로 되었는지. 오늘 날의 젠틀한 서구인들이 어떻게 탄생했나에 관한 얘기예요. 중세 때만해도 방구도 뀌고, 트림도 끅끅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 하거든요. 예도 많고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근대성에 대해서 알 수 있죠.
여기까지가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만한 책들이고요.
이건 어려울 지도 모르겠는데, 발터 벤야민의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을 추천해요. 이건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지금 미디어의 시대잖아요. 생산 패러다임에서 정보 패러다임으로 확 철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 벤야민이예요. 미디어 혁명의 패러다임을 제공한 사람이죠.
이것과 <디지털 모자이크> 라는 책이 있어요. 스티븐 홀츠먼이란 사람. 원래 이 책 말고 이 전에 쓴 책이 <디지털 만트라스>라고 있는데, 그 책은 번역이 안되어 아쉽고요. 그 후속판이 번역이 된거예요. 이 책은 우리가 보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미학의 기초를 다룬 책이죠. 쉽고 재미있어요.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는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가 재미있었어요. 거기에 사방이라는 개념이 나오죠. 고 부분이 재미 있었고, 기억에 관한 얘기가 참 재미있어요.
소설은 몇 권 안 읽었지만,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정말 권하고 싶어요. 알렙…그 중에서도 특히 2,3,4 권이 좋은 것 같고. 5권 정도로 가면 아포리즘에 가까워 지거든요. 3권이 절정이예요. 중남미 특유의 매직 리얼리즘의 극치죠. 가짜 책, 없는 책을 인용하고. 미학 오디세이 3권은 보르헤스를 많이 인용했어요.
카프카는 아직 다 이해를 못했어요. 제대로 이해는 안 됐지만, 매력을 느껴요. 시간이 되면 카프카에 도전하고 싶어요. 카프카 책 보기
마지막으로는 성경이죠. 특히 구약성서는 상상력의 스케일이 틀려요. 그리스 신화만 해도 대충 있잖아요. 있는 상태에서 신들이 등장하잖나요. 근데 성경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로부터의 창조예요. 빛이 있으라 그러면서 쫙 갈라놓잖아요. 그 다음 나오는 판타지가 엄청나죠. 바다가 갈라지지 않나.. 불기둥이 솟아오르지 않나....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나 하늘과 땅으로 쫙 이어지는 야곱의 사다리 같은 것들...
성경을 종교의 관점이 아니라 문학의 관점, 예술의 관점,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 어떤 텍스트보다도 많은 것이 들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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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 유학하여 미학, 해석학, 언어철학을 공부하다 1999년 귀국하여 [아웃사이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밀란 쿤데라
이항 대립..
차이를 통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이 그 본질로써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남자는 남자의 본질로 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의 차이를 통해 그 의미를 가지고, 좋은 것은 좋은 것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나쁜 것과의 차이를 통해 좋다는 의미가 생긴다. 부드러운 것은 거친 것이 아니므로 부드러운 것이 되고,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므로 깨끗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든 것은 차이를 기본으로 만들어졌고 그 차이는 바로 문화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다.차이를 통해 의미가 발생한다는 소쉬르의 이론에 바탕을 둔 연구의 하나로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분석이 있다.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사회의 신화가 문화/자연, 선/악, 적군/아군, 흑/백 등과 같이 대립적인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이라고 한다. binary가 ‘두 가지, 쌍’이라는 의미이므로 두 가지 항목을 대립시켜 놓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므로 나와 남의 차이를 읽어 내고,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이 구별되는 것이다.과거 원시시대에 신화가 담당한 기능을 오늘날로 옮겨와 보면 매스미디어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텍스트들은 이항대립적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든 내러티브는 안정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꾸며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안정 상태란 현재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대중문화 텍스트는 지배 이념을 대변하고 있으며 사회변화를 막는다.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분석이 대중문화 연구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분석 방법으로 대중문화를 이항대립해 보면 그 속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지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신화분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광고 분석에 이용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레이모어다. 그는 광고를 기호체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광고는 한 작품뿐 아니라 같은 계통의 광고들끼리는 일정한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버터광고들을 모두 모아 놓고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이항대립을 완성시켰다.
서울 아트 가이드 (5월) '탁계석의 예술산책' 중
서울 아트 가이드 '탁계석의 예술산책' 중
< 클래식에서 사회성 주제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은 사회를 읽는 눈이 그만큼 부족하고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예술적 권위주의가 숨어 있다..... '우리의 소원', '고향의 봄' 노래하나가 갖는 힘은 그 어떤 정책이나 이념적인 강연보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위대함이 있다. 우리도 민중의 노래가 한때 있었지만 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가사나 노래의 예술성에서 그 만큼 공감이 덜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대한 작곡가들이여, 명망 높은 예술가들이여, 쉬우면서도 세계를 재패할 수 있는 명곡을, 작품을 좀 내어 놓으시라.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큰 음악은 반드시 쉽고 큰 예술은 필시 간단하다 하지 않던가. 예술성을 가지면서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하는 예술의 사회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
기호의 유형
도상적 기호(iconic sign) : 최근에 신세대가 선호하는 감성언어의 일종인 이모티콘은 전형적인 도상이다. 이러한 기호들은 각기 그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유사성에 착안한 것이다. 사진이 실물과 유사한 도상, 분자모형은 물질의 구조적 특징과 유사한 시각적 도상, 그리고 한국에서는 ‘멍멍’이 개 짖는 소리를 나타내는 음성적 도상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기호와 그 지시대상 사이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의미작용을 기능하게 하는 기호를 도상(icon)이라고 한다. 퍼스는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도상적 기호가 유용하게 활용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령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 아무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나, 나무의 사진을 보여주면 나무의 관념이 직접적으로 소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표적 기호(indexical sign) : 풍향계는 바람의 방향을 알리는 지표이고, 문을 노크하는 소리는 누군가가 와있다는 지표이며, 콧물과 재채기 그리고 미열 등은 감기 같은 질병의 지표이며, EQ가 정의적 능력의 지표이고, 연기가 불의 지표이며, 고급 승용차가 부의 지표로 통용되는 관행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퍼스는 기호와 그 지시대상 사이에 인과관계나 서열관계(sequential relation)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계가 있는 경우를 지표적 기호라고 한다.
지표(index)를 기호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퍼스의 기호학적 입장은 소쉬르의 기호 개념과 구별되는 뚜렷한 차이점이다. 소쉬르의 기호학에서 기표와 기의 간의 관계는 필연적 관계가 아니라 자의적 관계인 데 비해서, 퍼스의 기호학에서 지표는 대상을 필연적으로 지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진위의 문제가 아니라 기호의 본질을 규정하는 관점의 차이로 보아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퍼스의 기호학이 원래 인간과 사회 및 자연에 관한 탐구의 논리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고, 그래서 소쉬르의 기호학보다 기호의 외연이 넓기 때문이다.
상징적 기호(symbolic sign) : 도상이 유사성을 기반으로 하고, 지표가 인과성에 근거하여 의미작용을 일으키는 기호라면, 상징적 기호는 자의성이 그 특징이다. 상징적 기호와 그 지시대상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나 인과적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상징은 소쉬르의 기호이론에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처럼 전적으로 자의적 관행의 산물이다. 붉은 악마가 한국 축구 응원단을 상징하게 된 것도 필연적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의적 관행의 산물이다.
언어는 전형적인 상징적 기호에 속한다. 화판에 그린 소나무의 그림은 소나무의 도상적 기호이고, 저 소나무를 가리키는 내 손가락은 지표적 기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소나무’라고 표현하는 언어는 소나무에 대한 상징적 기호이다. 그 이유는 ‘소나무’라는 낱말을 발화할 때, 이 기표와 소나무 사이에 어떤 유사성도 없고, 어떤 내재적이고 필연적인 소나무다운 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로서의 소나무와 개념으로서의 소나무 사이의 관계는 사회의 자의성과 관행의 산물이다.
이상과 같이 기호와 그 지시대상 간의 유사성의 정도에 따라 퍼스는 기호를 도상과 지표 및 상징 등 세 가지 양식의 기호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어디까지나 개념적 구분이고 실제적으로 상호 배타적이지는 않다. 가령,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도서관의 ‘메뚜기’족이라고 하는 것은 톡톡 튀는 행태의 유사성에 근거한 비유라는 점에서 도상적 기호이긴 하나, 톡톡 튀는 행태를 벼룩이 아니라 메뚜기에 비유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의적이고 그래서 상징적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개 짖는 소리를 ‘멍멍’이라고 나타낼 때 이는 분명 음성적 도상이면서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 사회의 자의적 관행의 소산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상징적 측면을 가진 도상적 상징기호라 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통용되는 것은 도상적 상징, 지표적 상징, 혹은 상징적 지표와 같이 두 가지 이상의 기호양식이 중첩된 기호들이다.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
환상극 : 브레히트 연극이 우리에게 낯설게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종래의 소위 '환상극'이라고 불리는 전통극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연극의 기본 법칙은 우리가 무대 위에서 보고 있는 것은 실생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방 안쪽을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방의 4면 벽은 이상하게도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환영(幻影)은 파괴하는 그 어떤 장치도 허용되지 않는다. 무대장치, 조명, 분장, 그리고 연기 등 연극적 요소들은 이러한 환영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환상극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가끔 그 환상극이야말로 진정한 연극의 유일한 방편이라고 결론지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환상극은 연극 사조이ㅔ서 극히 단순한 역할을 해낼 뿐이다. 예컨대 무운시(無韻詩)와 독백과 단순화된 무대 양식을 지닌 셰익스피어 연극은 환상극과는 별 관계가 없다.
반(反)-환상극 : 현대의 많은 극작가들은 환상극의 한계를 인식하여 거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연극의 경우, 유진 오닐의 「이상한 간주곡」(Strange Interlude), 쏜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Our Town), 테네시 윌리암즈의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 그리고 아더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등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환상적 규범을 파기시키고 있다. 환상주의에 대한 서구의 반대론자들은 루이지 피란델로, 독일에서 브레히트와 함께 일한 어윈 피스카토르, 그리고 부조리 작가 베켓트, 이오네스코, 그리고 프랑스의 쟝 쥬네를 꼽을 수 있다.
구조 : 브레히트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전통극의 양식은 인위적이고 불필요한 제한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한다. 종전의 극은 하나의 단순한 행동을 취급하고 그것이 지니는 시공의 영역은 제한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면은 그것이 장면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하나의 대안으로서 브레히트는 '서사적' (敍事的) 구조를 제시한다. 즉 이것은 서사적이고 서술적 형태에 기초를 둔 구조로서, 자연스런 에피소드로 이루어지며, 거기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며 개개의 에피소드는 전체에 기여할 뿐 아니라 에피소드 그 자체로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서사적 구조는 전통극의 형식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과거의 시점에서 표현되는 이른바 과거의 사건을 서술적 기반을 빌어 다룬다. 종래의 전통극에서 다루는 가상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사극에서, 브레히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과거에 발생한 어떤 행위로 규정토록 유도하여 그 행위가 현재에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브레히트는 현재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이 실생활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른바 종래의 환상극의 구조적 패턴들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화 : '서사적' 구조는 본질적으로 브레히트 연극 이론의 유일한 부분이다. 이러한 서사적 구조의 뉘앙스는 무대화 작업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브레히트는 무대의 형태를 변경시킨다거나 객석과 무대와의 물리적 관계 (이를테면, 종래의 원형 극장에서 원형 무대가 객성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든가...) 를 배쳑하였다. 그가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관객과 현재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과의 관계였다. 관객은 최면술에 걸리어 연극을 '리얼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최면술에 의해 전통극이 끼친 영향의 일부는 객성이 조명이 꺼진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브레히트는 객석의 조명도 항시 켜진 상태 그대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야만이 관객은 현실을 의식하게 되고 지적으로 깨어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관객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보다는 냉철한 이성에 의해 그 것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브레히트의 주장에 의하면 무대 위에서 사용되는 소품들은 관객을 우롱하여 관객이 극장 안에 있다는 것을 잊게하는 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된다.
브레히트는 무대상의 인위적 조작을 거부한다. 예컨대, 밤 장면을 설정할 경우, 인공 조명을 사용하여 실제의 밤이라는 환상을 자아내게 해서는 안된다. 밤을 상징하는 인공의 달을 매달기만 하면 된다. 무대는 항시 현란한 조명을 흠뻑 받고 있어야만 관객은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다. 초기에 습장에 몰두하면서, 브레히트는 광원 그 자체는 항시 관객이 볼 수 있는 곳에 비치되어야 한도고 주장했다.
같은 취지의 반-환상극적 의도는 무대 공연의 여러 연극적 요소에 대한 브레히트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브레히트는 종전의 전통극의 양식에 맞추어 실제의 장솔르 재현하기 위해 시도되는 무대장치를 거부했다. 그는 단순화된 무대를 선호했으며, 무대는 어디까지나 실생활에서 따온 것이어야 하며 인위적이고 조작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단순화된 무대와 특정사물 - 이를테면, 「베짱어멈」속의 수레 - 의 리얼리티 사이의 대조 현상은 브레히트 연극의 핵심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로 인해 관객은 가상적 현실을 수동적으로 의식하기보다는 중요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게 도니다. 의상이나 분장과 같은 그러한 디테일에 대한 브레히트의 태도 또한 이러한 기본적 자세와 일치한다.
연기 : 다른 모든 연극에서처럼, 브레히트의 연극에서 그 핵심을 차지하는 요소는 배우이다. 브레히트의 연극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배우는 자신이 맡고 있는 역중 인물(성격)이 되지 않도록 하는 브레히트의 의도적 이념 때문이다. 배우의 임무는 성격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 성격을 '설명'하는 데 있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글에서 연기자를 일개의 구경꾼에 비유해 이러한 개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즉, 연기자는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사건을 설명하고 구경꾼 또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구경꾼은 어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 이를테면, 자동차에 치인 보행자 - 이 어떻게 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거나 실제의 '행동이나 연기'를 통해 보여 줄 필요를 느낀다. 우리는 구경꾼과 보행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의 구경꾼은 분명 보행자가 한 행위를 보여 준다. 구경꾼은 그 보행자의 걸음을 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거나 보여 준다. 연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연기자는 인물이 특정 장소에 이룩해 낸 행위를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Peter Lorre가 브레히트의 「인간은 인간이다 」(Mans ist Mann)를 처음으로 공연했을 때, 그는 Galy Gay의 행동을 보여 주었을 뿌 항시 Peter Lorre라는 그 인물 그 상태로 남아 있었다. 배울르 칭찬하느 ㄴ전통극 - "배우는 단순히 리어왕 역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배우는 리어왕이 되어야 한다" - 은 브레히트의 연극 세계에서는 설 곳이 없다.
소외효과 :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 중 가장 널리 논의되는 요소는 '소외'의 개념이다. 이 '소외'의 개념은 브레히트의 이론에서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이론의 요소들에도 내재하고 있다. 독일 원어로는 'verfremdung'이며 '낯설게 하기'의 뜻이다. 이 말의 가장 원초적인 의미는 관객이 새로운 고나점에서 사물을 관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관객이 이제까지 익숙해져 온 것에서 '낯설게' 만들거나 '소외'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소외의 개념은 결코 브레히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낭만 시인 Shelley는 시인의 임무를 규명하는 말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 사물, 그리고 상황을 마치 처음 보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다." 브레히트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이런 의미에서 어머니가 재혼할 때 어머니로부터 '소원'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머니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른 남자의 아내로 보게 되며, 전에는 어머니를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소외'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롭다는 것은 연극 예술의 초보적 원리에 한정된 것이지 그것이 보다 나은 연극을 위한 가치 체계를 수립하는 근본 원리는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완전히 익숙해지게 되었을 때, 그것이 항상 그렇게 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절로 빠져 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것의 필연성을 수용한다. 그러나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에게 제시될 때, 우리는 새로운 그 무엇이 반드시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여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배척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무언가로부터 '소원'될 때, 그것은 마치 무언가가 새롭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은 우리에게 낯설게 보이므로 우리는 그토록 새롭고 낯선 것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브레히트의 경우, 이것은 연극뿐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체계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을 '멀리하는' 예술가는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대안들이 있으며, 자본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것을 관찰하는 자들에게 인식시켜 준다. 브레히트의 생각에, 사회 개혁은 자신의 소위 '소외 효과'에 으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산주의 노선에 따라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브레히트의 이론은 극히 한정적이어서 비공산권 독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소외 효과와 다른 개념과의 상관 관계 : 지금까지 논의된 바, 브레히트의 고유한 극 구조, 무대화, 그리고 연기 그 모두가 다 소외의 개념과 관련을 맺고 있다. '소외효과'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의 구조, 무대화, 그리고 연기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브레히트 고유의 극 구조, 무대화, 그리고 연기술이 지금까지 유지된 것은 바로 그의 독특한 '소외효과' 때문일 것이다.
연극 목적 : 그의 초기 연극 작품에서, 브레히트는 연극의 목적은 "교훈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극을 통해서 관객은 보다 나은 세계의 건설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후에, 그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여 연극의 목적은 모든 예술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쾌락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플라톤의 이론을 수용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시대에 어울리는 '쾌락' 이란 우리가 먹는 과자에서 맛보는 그러한 종류의 쾌락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자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생겨나는 보다 심오한 쾌락이다. '쾌락'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브레히트는 초기의 '교훈주의'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오히려 그는 교유과 쾌락의 두 가지 요소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관객 : 종래의 환상극은 주로 감정 이입에 근거를 둔 이른바 반이성적으로 감정적 반응을 관객으로부터 요구한다. 연기자는 역중 인물을 대신하여 무대에 서게 되며 따라서 연기자는 역중 인물이 느끼고 있는 것을 느끼는 자이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정서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보다 비판적이고 지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관객은 감정 이입에 빠져들지 말고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 판단을 해야 한다.
게스투스(GESTUS) : 브레히트 연극 이론의 핵심어는 '게스투스'다. 불행하게도, 이 용어에 대치될 만한 영어 용어는 없다. (역자주 : Gestus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행동'이라 번역할 수 있다. 사회적 행동은 직업 혹은 계층에 따라서 고정화되어 있고 특정화되어 있는 행동의 패턴이라 할 수 있다. ) 브레히트가 적어도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사회적 관계를 외부적으로 표현할 경우다. 그러므로 '게스투스'는 하나의 행위와 말과 시각에 의해 어떤 관계를 들추어 낸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와 반-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 : 이러한 용어들을 이해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 브레히트는 종전의 환상극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했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연극을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며, 반-환상극을 상대적으로 "반-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 명명한 것이다.
- 윌리엄 캔니 著, 허은 옮김<가까이서 본 브레히트의 걸작들>중에서, 1996
[출처]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작성자 소낙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