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잡지에서 많이 쓰이는 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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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기저기 지식in ;;;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 진중권 “내 인생의 책”

저는 우선 고전을 권해요. 고전이라는 것이 괜히 고전이 아니잖아요. 저한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책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어요. 모든 예술이 거기 다 나온다고 보면 되요. 상상력이 장난이 아니죠. 예를 들어, 만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모험>은 루이스 캐롤의 일본판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제임스 조이스 같은 다 거기서 나온다고. 거기에 상상력의 원천이 있거든요.
유머 감각 있잖아요. 제가 정치풍자 같은 것 할 때 쓰는 유머감각 같은 것. 그건 마크 트웨인에게서 배웠어요. <톰소여의 모험>이죠.



애드거 앨런 포의 어렸을 때는 단축된 것을 읽었는데, <황금 풍뎅이>라는 걸 보면 암호 찾는 게 나와요. 그걸 보고서 어렸을 때 암호와 기호, 언어에 대한 관심과 자극을 받았구요.
애드거 앨런 포 단편선


상상력을 확 키워준 것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예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좋았다 정도였는데. <황금가지> 보면서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화와 종교, 철학을 기본이라고 하지만, 사실 신화 이전에 있는 게 주술이거든요. 신화만 해도 굉장히 합리적이고…그런데, 이건 그 이전의 얘기예요. 굉장히 풍부한 아이디어 얻을 수 있죠.

저에게 충격을 줬던 책이 있어요. 제가 쓴 <춤추는 죽음>이란 책을 쓰게 만든 토대가 된 책이죠. 바로 필립 아리에스가 쓴 <죽음 앞의 인간>이예요. 많은 작업을 하는 데 바탕이 되었는데. 이런 책 하나 쓰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책이 하나가 바로 이 책이예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도 그런 책이죠. 서양 사람들보면 젠틀해 보이고 매너 있어 보이잖아요. 중세 때 외향적이었던 서구 사람들이 어떻게 내성적으로 되었는지. 오늘 날의 젠틀한 서구인들이 어떻게 탄생했나에 관한 얘기예요. 중세 때만해도 방구도 뀌고, 트림도 끅끅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 하거든요. 예도 많고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근대성에 대해서 알 수 있죠.

여기까지가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만한 책들이고요.
이건 어려울 지도 모르겠는데, 발터 벤야민의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을 추천해요. 이건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지금 미디어의 시대잖아요. 생산 패러다임에서 정보 패러다임으로 확 철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 벤야민이예요. 미디어 혁명의 패러다임을 제공한 사람이죠.
이것과 <디지털 모자이크> 라는 책이 있어요. 스티븐 홀츠먼이란 사람. 원래 이 책 말고 이 전에 쓴 책이 <디지털 만트라스>라고 있는데, 그 책은 번역이 안되어 아쉽고요. 그 후속판이 번역이 된거예요. 이 책은 우리가 보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미학의 기초를 다룬 책이죠. 쉽고 재미있어요.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는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가 재미있었어요. 거기에 사방이라는 개념이 나오죠. 고 부분이 재미 있었고, 기억에 관한 얘기가 참 재미있어요.


소설은 몇 권 안 읽었지만,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정말 권하고 싶어요. 알렙…그 중에서도 특히 2,3,4 권이 좋은 것 같고. 5권 정도로 가면 아포리즘에 가까워 지거든요. 3권이 절정이예요. 중남미 특유의 매직 리얼리즘의 극치죠. 가짜 책, 없는 책을 인용하고. 미학 오디세이 3권은 보르헤스를 많이 인용했어요.

카프카는 아직 다 이해를 못했어요. 제대로 이해는 안 됐지만, 매력을 느껴요. 시간이 되면 카프카에 도전하고 싶어요. 카프카 책 보기



마지막으로는 성경이죠. 특히 구약성서는 상상력의 스케일이 틀려요. 그리스 신화만 해도 대충 있잖아요. 있는 상태에서 신들이 등장하잖나요. 근데 성경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로부터의 창조예요. 빛이 있으라 그러면서 쫙 갈라놓잖아요. 그 다음 나오는 판타지가 엄청나죠. 바다가 갈라지지 않나.. 불기둥이 솟아오르지 않나....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나 하늘과 땅으로 쫙 이어지는 야곱의 사다리 같은 것들...

성경을 종교의 관점이 아니라 문학의 관점, 예술의 관점,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 어떤 텍스트보다도 많은 것이 들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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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 유학하여 미학, 해석학, 언어철학을 공부하다 1999년 귀국하여 [아웃사이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망각 앙트완 드 고드마르 김화영 옮김 소개의 말 192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르노(Brno)에서 태어나 그의 첫 저서 『농담 La Plaisanterie』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 유명작가가 되다. 그 불역판 서문에서 아라공은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라고 격찬. 1968년 소련의 탱크가 프라하에 침공하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2권만이 쿤데라가 고국 체코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2차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하여 그의 처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제거되었고 그 자신은 글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는 역경을 만났다. 1975년 그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을 때 “프라하에서 서양은 그들 스스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늘날 프랑스인으로 귀화한 밀란 쿤데라는 그의 고국에서 금지되었던 소설 작품의 창작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해학과 지성, 반어와 철학으로 가득 찬 그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 하나로 군림한다. 사람들은 흔히 오늘날 소설이 쇠퇴기에 이르러 절명상태를 맞고 있다고들 한다. 쿤데라는 말한다. 그렇지 않다. 비록 몇 번의 기회를 놓치기도 했고 상처입기 쉽도록 약한 면이 없지 않지만 소설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독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세르반테스, 디드로, 카프카 이래 인간을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켜주고 맹목적인 발전, 기세등등한 기술문명, 그리고 국가의 전횡 등 파괴적 기세에 맞서 싸우는 것은 바로 소설이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가 그리고 있는 인간은 양면적이고 애매하고 패러독스, 우연, 모순 그 자체일 뿐이다. 그의 유명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어떤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우연히 서로 만났다가 사고로 함께 죽는다. 그들의 운명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과 우연한 사건들과 어쩌다가 받아들이게 된 구속들의 축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죽음을 향한 그 꼬불꼬불한 길,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완만한 상호간의 파괴는 영원한 애매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듯 어떤 내면의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60년대 체코와 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놓은 시련이 깔려 있다. 지금은 멀어져버린 체코이지만 쿤데라의 작품 한복판에 주인공인 양 요지부동으로 박혀 있는 체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신화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나라. 유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 본질이 더 잘 보이는 듯한 그 나라. 변함 없는 성실성과 배반,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들의 복합성, 그리고 또한 둘로 쪼개진 세계와 유럽의 드라마와 작가의 근원적 정신질환. 고드마르 당신이 아직 프라하에 살고 있을 때 쓴 초기의 작품들은 모두 소련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나라들의 분위기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프랑스로 망명하여 정착한 이후 당신의 소설들은 동서간의 왕래로 점철되어 있고 등장인물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과 떠난 사람들, 망각과 기억, 이곳과 저곳 사이로 나누어진 인상입니다. 언젠가 체코가 등장하지 않는 소설도 쓰게 될까요? 쿤데라 모르겠어요. 한 인간의 의식, 상상세계, 고정관념을 이루는 모든 것은 그의 생애의 전반기 동안에 이미 다 만들어져가지고 항상 없어지지 않는 채 남아 있어요. 그러므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테마들은 어떤 방식으로건 프라하와, 그리고 거기서 내가 겪은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어요. 다른 한편, 나는 점점 더 프라하를 프라하로서 보지 않고 유럽을 상징하는 어떤 상상의 도시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프라하가 유럽의 운명을 상징하는 상상의 모델같이 된 거지요. 그렇게 느끼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되었어요. 이미 『생은 다른 곳에La Vie est ailleurs』에서 나는 야로밀이라는 젊은 시인의 운명을 유럽의 시, 특히 랭보의 운명과 대조하고 있지요. 내가 보기에 야로밀은 유럽 시사의 그로테스크한 결말로 여겨졌어요. 내가 프라하를 얘기할 때는 바로 유럽을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파리에서 보면 프라하의 그런 면은 더욱 분명한 것 같아요. 더군다나 내 작품에서 작중화자는 프라하로부터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곳으로부터 말을 하고 있어요. 그의 생각은 자유롭게 파리에서 비엔나로, 프라하에서 제네바, 니체에서 데카르트로, 톨스토이에서 파르메니데스로 옮아가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프라하는 점점 더 상상의 도시로 변해갑니다. 내가 그 도시의 지리와 거리 이름들을 점점 더 잊어버리기 시작한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어요……. 고드마르 어떤 상황에서 프라하를 떠나게 되었나요? 쿤데라 1968년 소련 침공 이후 나는 프라하 영화학교의 교수 자리를 잃었어요. 그곳에서 문학과 시나리오를 가르쳤었지요. 그때까지 나는 『농담』과 『우스운 사랑』을 발표했었습니다. 그런데 체코 국내에서는 무슨 글이든 발표하는 것을 금지하더군요. 그래서 내 책들을 외국에서 낼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생은 다른 곳에』가 1973년에 메디치 상의 외국작품 부문에서 수상하게 되어 파리로 올 수 있었습니다. 1975년 렌느 대학교에서 내게 교환교수 자리를 주었지요. 아내와 나는 트렁크 몇 개, 책 몇 상자를 자동차에 싣고 떠났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이라곤 그게 전부였어요. 렌느에서 보낸 몇 년은 매우 행복했습니다. 프랑스는 지방을 통해서 발견해야 그 진정한 모습을 알아내기가 쉬워요. 언어와 습관도 더 빨리 배우게 되고요. 1978년에 우리는 파리에 정착했지요. 지금 나는 파리 에콜 프라티크 데 오트 제튀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고드마르 망명하기 전에 프랑스와 프랑스 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관계였나요? 쿤데라 전통적으로 체코는 프랑스 문화를 좋아하는 나라지요. 나는 프랑스 문화의 풍토 속에서 자랐어요. 내게 파리는 유럽 예술의 수도나 마찬가지고 프랑스 문학은 유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학들 중 하나지요. 나는 다행히도 훌륭한 현대 체코어로 번역된 라블레를 읽을 수 있었지요. 그러니까 한편에는 라블레, 몽테뉴, 디드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보들레르, 랭보 그리고 모든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있지요. 소련 점령과 함께 우리는 다른 모든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 어두운 시절 동안 나는 파리에서 온 수많은 친구들을 맞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 사람들의 방문으로 인하여 프랑스와 나 사이에는 매우 깊은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고 마침내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곳에 가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점차로 굳어진 겁니다. 고드마르 당신의 소설들은 프랑스에서 즉각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어요. 당신의 첫소설 『농담』에 붙인 아라공의 열광적인 서문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성공이 의외여서 놀랐나요? 쿤데라 정말 그랬어요.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1968년까지 나는 체코 국내의 소설가였을 뿐 아무것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작품들이 더러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고드마르 흔히들 프랑스가 피난처라고들 합니다. 이런 평판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쿤데라 30년대 미국소설을 잘 알게 된 것은 앙드레 말로 덕분이고 우리가 남미문학을 발견하게 된 것은 카이유와(Roger Caillois) 덕분이고 곰브로비치 같은 사람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나 가령 오늘날 무질 같은 작가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은 프랑스, 특히 모리스 나도(Maurice Nadeau)의 덕분입니다. 나의 경우 내 작품에 대한 가장 현명한 해석이 내려진 곳은 프랑스였어요. 여기서 비로소 내 작품은 정치성의 껍질을 벗고서 가장 문학적인 각도에서 이해될 수 있었지요. 파리는 오랫동안 유럽의 두뇌였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프랑스의 수도 이상의 그 무엇이 되었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제 파리는 사라져가고 있는 한 세계의 사라져가고 있는 중의 수도라고 여겨지는군요. 고드마르 1979년 『웃음과 망각의 책』 이후 당신은 체코 국적을 상실했고 1981년 프랑스 공화국의 새 대통령이 된 프랑스와 미테랑이 당신과 작가 훌리오 코르타사르에게 프랑스 국적을 주었지요……. 쿤데라 그래요. 지금 생각해도 놀라워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놀라움이에요……. 고드마르 언젠가 체코로 돌아갈 생각인가요? 쿤데라 설령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몹씨 망설여질 것 같군요. 실망과 쓰디쓴 맛을 보게 될까봐 너무 무서워요. 나는 1962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온 곰브로비치 생각을 자주 하곤 해요. 그는 폴란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러나 어쨌건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지금 내게 문제는 프랑스를 충분히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고드마르 당신의 신작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테레사와 토마스라는 남녀, 그리고 그들의 우연한 만남에서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무엇보다도 우선 어떤 사랑의 소설을 쓰자는 것이 목적이었나요? 쿤데라 테레사와 토마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사랑, 질투, 일편단심, 경박함, 배신…… 등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나는 여러 가지 제목들을 놓고 망설였어요. 『미경험의 별』을 선택할 뻔했지요. 어디선가 토마스는 이런 말을 해요. “사람의 삶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그 삶을 구성하는 사건들이 오직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야.” 앞에도 뒤에도 다시 반복되는 법이 없으니 자기 자신의 결정들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할 길이 없는 거예요. 사람의 삶은 대강 그린 그림일 뿐이에요. 근본적인 미경험, 미성숙이 특징인 거예요.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토마스라는 인물은 바로 이런 주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는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뒤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그는 잘하는 일인지 잘못하는 일인지를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많이 망설이다가 결국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정했지요. 그건 소설의 또다른 주제로서 토마스, 특히 그의 정부 사비나와 관련이 있어요. 사비나는 끝없는 방임의 생활을 영위해요. 방임에서 방임으로, 유적에서 유적으로, 배신에서 배신으로, 결국 절대고독에, 오랜 옛날부터 갈망했던 전체적인 가벼움에 이르지요. 심지어 죽음까지도 가벼움이라는 상징 속에 이루어져요. 그의 유골이 바람에 흩어져버리거든요……. 고드마르 ‘참을 수 없는’이란 형용사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쿤데라 그게 무슨 선언인 것은 아녜요. 나는 존재의 가벼움이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읽어요…… 애매한 데가 있지요. 소설이 맡고 있는 기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물의 애매성을 발견하게 하는 점이지요. 나는 책의 한 장 전체에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테레사와 토마스처럼, 혹은 프란츠와 사비나처럼 아주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이냐 저 사람이냐에 따라서 같은 말들이 어떻게 해서 전혀 다른 현실을 가리키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지요. 사실 저자와 독자 사이의 끊임없는 오해의 원인도 여기에 있지요. 흔히 독자는 작가에게 당신은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당신의 세계관은 어떤 겁니까? 확신의 부재가 유일한 지혜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모든 단언을 질문으로 바꾸어놓자는 것뿐인 소설가에겐 아주 당혹스러운 질문이지요. 소설가는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즉 수수께끼와 패러독스를 말입니다. 고드마르 애매성과 의혹의 적은 당신이 ‘키치’의 세계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지요. 미적인 확신과 순응주의의 왕국 말입니다. 그것은 결국 전체주의적 키치에 도달하고 말지요. 당신은 소설 속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키치 정신을 비판하고 있지요. 키치 정신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근원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다 시야에서 제외해버린다”고 당신은 썼지요. 쿤데라 ‘Kitsch’라는 말은 19세기 독일에서 생긴 말입니다. 그 의미가 점차로 변해와서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어떤 유의 미적 스타일, 싸구려 예술을 뜻할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것 훨씬 이상이지요. 그건 어떤 세계관에 뒷받침된 미학, 거의 철학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건 인식이 제외된 아름다움이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고 남에게 환심을 사려는 의지이며 총체적인 순응주의입니다. 나는 여기서 헤르만 브로흐의 유명한 이론을 원용하고 싶어요. 그는 『문학 창조와 인식』이라는 책에서 독일 낭만주의에 깊이 뿌리박힌, 그리고 바그너에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키치 정신에 대한 한판 전쟁을 벌이고 있어요. 내가 볼 때 키치는 오히려 차이코프스키 같아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고심한 나머지 때로는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지극히 관습적인, 효과만점의 음악, 예술에 있어서 일종의 데마고기죠. 이런 데마고기는 서구에도 있고 동구에도 있어요. 물론 전체주의 국가들은 이런 키치를 장려하죠. 개인주의, 회의주의, 아이러니 어느 것 하나 용납하지 않는 세계니까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야말로 키치 정신의 절정이지요. 전후 소련에서는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소련 사회는 이미 얼마나 진보했는지 여기서 근본적인 갈등은 선과 악의 갈등이 아니라 선과 최선 사이의 갈등이라고 설명하곤 했어요. 서구에서 키치는 특히 정치사상을 통해서 유포되었지요. 미국 선거운동 광경을 보세요……. 고드마르 정치가 키치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까? 쿤데라 정치가 키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고 있어요. 모든 정치운동은 키치에, 유혹하려는 의지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정치에 있어서 세상은 흑 아니면 백입니다. 애매성이라든가 모순이라든가 패러독스가 설 자리는 없어요. 그 어떤 정치가도 나는 저렇게도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게 아니라, 나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거예요. 고드마르 당신은 프란츠가 캄보디아의 베트남 주둔군으로 하여금 인류애의 차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사명을 완수하도록 종용하기 위하여 50여 명의 서구 지식인들과 함께 크메르 국경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장면을 매우 볼테르 풍으로 묘사함으로써 좌파의 키치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고 있지요. 거기서 사비나에게 완전히 푹 빠져 있는 스위스의 과학연구원인 프란츠는 볼테르의 주인공 캉디드처럼 서구 좌파의 이를테면 대장정 같은 장면을 목격하게 되지요.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공산군들에게 마구 달려드는 수많은 사진기자들을 앞세우고 미국의 스타들이 결성한 특공대가 나서는 장면 말입니다. 쿤데라 그 캄보디아 장면에서 나는 좌파의 키치를 보여주게 됩니다. 역사란 거대한 전진, 끝없는 진보라고 믿는 좌파 말입니다. 갑자기 크메르 국경에서 프란츠는, 그리고 그를 통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커다란 패러독스들 중 하나를 의식하게 됩니다. 언제나 앞으로 전진만 하려고 한 나머지 결국은 종말에 이른다는 패러독스 말입니다. 오늘날 유럽에, 그리고 그 유럽의 사상인 좌파에게 일어난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구는 저 혼자서 세계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사면초가가 되어가지고 세계사는 서구를 빼놓고 혹은 서구를 거슬러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구 좌파의 환상은 무너지고 캄보디아에서의 그 대장정은 바로 그 붕괴를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편에는 서양의 광고, 매스컴의 장치가 제아무리 용감한 것이라 하더라도 일체의 모든 행위를 키치로 변질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스펙터클이 그 마지막 패러독스에 이릅니다. 즉 앞으로의 도망, 앞으로의 전진이 이제는 더이상 불가능해졌습니다. 꼭꼭 닫힌 채 말이 없는 채 버티고 있는 적대적인 경계선뿐인 것입니다. 고드마르 그런 거 모두 매우 논쟁적인 것 아닙니까? 쿤데라 천만에요. 그 누구하고든 논쟁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러나 소설은 실제로 논쟁적인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본래부터 사물의 정체를 드러내 보이고 우리들이 가진 확신들과 가면들 뒤에 숨겨진 것을 노출시키겠다는 야심을 가진 것이 소설이니까요. 고드마르 토마스와 그의 아들 시몬은 둘 다 소련의 침공 이후 체코 정부 당국과 여러 가지로 안 좋은 일을 당했습니다. 유명한 외과의사인 토마스는 사회적으로 낙오한 지식인으로 전락합니다. 1968년 이후 체코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죠. 그리고 그의 아들 시몬은 시골에 정착하여 독실한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이건 체코에도 폴란드형의 종교현상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쿤데라 그렇게는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체코에도 진정한 종교적 반작용이 없지 않습니다만. 폴란드에서 가톨릭교는 민족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반면에 체코의 민족 정체성은 일종의 종교적 회의주의입니다. 우리나라는 17세기에 강제로 ‘다시 가톨릭화’되었지요. 그 때문에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가 다소간 억압을 받았으므로 일부 체코 사람들의 전통적인 반교권주의적 반작용은 사라졌어요. 세속인들과 종교인들 사이에 어떤 상호이해가 생긴 겁니다. 공산주의적 전체주의는 유럽 특유의 합리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무신론 전통과 기독교 전통을 다 같이 위협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얀 파코카의 멋진 표현처럼 “상한 사람들간의 동지애”가 생긴 거죠. 고드마르 당신의 여주인공 테레사는 원래 카페의 여급이었다가 사진작가로 변신하지만 소련 침공 때의 사진을 너무 많이 찍었기 때문에 그 역시 사회적으로 강등되어 다시 여급 신분으로 되돌아옵니다. 그 전에 쓴 소설에서 여주인공 타미나는 이미 카페의 여급이었죠. 이건 우연일까요? 쿤데라 내가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당신이 그걸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카페 여급의 이미지가 나를 강박적으로 사로잡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이건 소설창작에 있어서 무의식이 작용한다는 사실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도 결국은 자신을 드러내게 되고 말아요. 그렇긴 해도 나보고 개인적으로 소설가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아주 싫어하는 사람, 그걸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러나 결국 우리들의 강박관념들은 심술궂게도 우리에게 달라붙어서 못살게 구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고드마르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볼 때 소설창작에 있어서 우연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쿤데라 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노르망디의 시골에서 썼어요. 우리는 마당에다가 돼지 두 마리를 키우는 어떤 농부를 종종 찾아가곤 했지요. 우리가 가면 그 두 마리 돼지는 언제나 쫓아나오면서 내게 대단한 호감을 보였어요. 그렇게 해서 보헤미아의 어떤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돼지와 관련된 인물이 등장하게 된 거죠. 난 그 인물을 아주 좋아해요. 그건 바로 노르망디 지방에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농부를 만나서 알게 된 때문이죠. 우연은 마침내 필연이 되었어요. 그 돼지가 없다면 소설의 끝에서 테레사와 토마스가 물러나 살게 된 그 마을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그 동물은 마을의 모티프가 되었어요. 어떤 현실에 완전히 자신을 맡긴 채 그 속에 푹 파묻히지 않고서는 소설 속에서 그 현실을 묘사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단들만으로도 하나의 소설적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해요. 때로는 이 돼지처럼 한두 가지의 모티프만 있어도 충분하거든요. 그러나 일화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대답해본다면, 작가에게 일어나는 우연의 일치에 대한 감각은 글을 써나가는 가운데 깨어난다고 생각해요. 사실 작가들은 누구나 늘 우연의 문제를 제시해왔습니다. 삶이란 우연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삶이 곧 우연이죠. 난 『안나 카레리나』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에 대해서 여러 번 말했었어요. 가령 책의 서두를 보세요. 그 여자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역에서 브론스키를 만나는데 바로 그때 어떤 역부 하나가 그만 기관차에 치이게 되죠. 그런데 소설의 맨 끝에서 그 여자는 기차바퀴 밑에 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실패한 일생을 마감합니다. 이런 대칭관계는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껴지죠. 그러나 현실을 한번 관찰해보세요. 우리들의 삶 속에도 마찬가지의 대칭이, 마찬가지 우연의 일치들이 존재하는 겁니다. 어떤 사건은 그 우발적인 성격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그것에 아름다움과 시적 힘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점에 별로 주목하지 않아요.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죠. 그냥 하루하루 살고 밤이 되면 잊어버려요. 우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존재의 망각 속에서 살고 있어요. 삶에 대한 그런 감각, 우연의 일치들에 대한 그러한 주의, 그것이 또한 소설감각이죠. 고드마르 당신은 전에 낸 작품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결정적으로 완성하게 된 어떤 테크닉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어요. 같은 이야기에 여러 시선이 던져지고 있는 것처럼, 동일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변주인 동시에 대위법인 기법 같은데요……. 쿤데라 그 테크닉은 처음엔 그냥 무의식적인 것이었는데 나중에 당신 말처럼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실험을 해보게 되었어요. 그 원칙을 설명해보면 이런 거예요. 즉 같은 작품 속에서, 인물이나 인과관계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은, 게다가 각기 문학적 장르가 다른(에세이, 이야기, 자서전, 우화, 꿈)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들려주는 거예요. 이런 잡다한 요소들을 하나로 묶자면 그야말로 어떤 연금술이 필요하게 되죠. 저마다 제각각인 이런 요소들을 결국은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끌어간 하나의 단일한 전체로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 말입니다. 통일성은 대부분 형이상학적인 성격의 반복적 주제와 의문들에 의해서 산출됩니다. 이같은 글쓰기 방식은, 나의 경우, 뿌리가 매우 깊은 것이지요. 내가 처음 쓰기 시작한 산문들에 이미 그 싹이 보이고 있으니까요. 고드마르 이처럼 동일한 현실이 매번 다른 모습으로 해석되어 나타난다든가 사건들이 반복된다든가 소설가가 자기 자신의 소설 속에서 이리저리 왕래하며 서술할 수 있는 것은 책 전체에 걸쳐서 동일한 내레이터가 일관되게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와 유희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쿤데라 바로 그겁니다. 이미 책의 초입에서부터 내레이터가 존재하고 있고, 그리하여 책은 철학적인 성찰로부터 시작됩니다. 소설에는 대체로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해볼 수 있어요. 서술적 소설(발자크, 뒤마), 묘사적 소설(플로베르), 반성적 소설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번째 경우, 내레이터는 생각을 하고 의문들을 제기하는 역할을 맡죠. 그리하여 서술은 바로 이런 반성적 성찰에 종속되는 겁니다. 플로베르의 경우에는 내레이터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렇지만 반성적 소설에서는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죠. 소설을 철학에 연결시키는 게 내 야심입니다. 그러나 오해가 있어서는 안 돼요. 나는 철학자가 하는 식이 아니라 소설가가 하는 식으로 철학을 하겠다는 겁니다. 나는 철학적 소설이라는 말을 안 좋아해요. 그건 주의주장이나 편견이나 증명욕구 같은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한 표현입니다. 난 뭘 증명하려는 게 아녜요. 난 그저 존재란 무엇인가? 질투란 무엇인가? 가벼움이란? 현기증이란? 약점이란? 사랑의 흥분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을 검토해보려는 것뿐입니다. 고드마르 당신의 소설은 아주 짧은 장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가장 긴 장도 10여 페이지에 불과하죠. 왜죠? 쿤데라 난 각각의 장이 한 편의 시처럼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을 좋아해요. 각각의 장이 단순히 서술적 사슬 속에서 하나의 고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게 되었으면 해요. 아니 그 이상이에요. 그같은 선택은 나의 소설미학과 일치합니다. 각각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장들은 독자가 이야기의 흐름에 정신없이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한 권의 책 속에 서스펜스가 너무 많으면 그건 제풀에 소모되고 소비되는 거예요. 소설은 빠른 속도를 싫어해요. 독서는 느릿느릿해야 하고 독자는 한 페이지, 한 문단, 심지어는 한 문장의 매혹에 사로잡혀야 돼요. 고드마르 책 속에서 당신은 소설과 자서전, 저자와 인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당신은 이렇게 쓰고 있어요. “내 소설의 인물들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인물들을 사랑하고 마찬가지로 두려워한다. 그 각각의 인물들은 나 자신이 비켜갔을 뿐인 경계선들을 과감히 넘었다. 내 관심은 바로 그들이 넘어선 경계선이다. 경계선을 넘어버리면 나의 자아는 끝이다. 그 너머에서부터는 소설이 의문을 던지는 신비가 시작된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세계라는 덫 속에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사다.” 쿤데라 너무나 많은 오늘날의 소설들은 가면을 쓴 고백록이나 자서전에 불과해요. 나는 그런 식의 소설관과는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늘 “당신은 이러이러한 사건을 경험했죠?……” 하고 말해요. 천만에요, 그렇지 않아요, 하고 내가 대답하면 사람들은 또 반문해요. 당신의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그걸 실제로 경험한 게 분명해요. 처음에 이런 짜증나는 질문을 받으면서 뭘 몰라서 그러는 거겠거니 했어요. 그러나 가만 생각해본 결과 이건 오늘날의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소설을 쓰는 일종의 유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서전이 소설 속으로 마구 밀려들어오고 있고 누구나 다 글을 쓰고 싶어해요. 현대인이 열렬히 원하는 게 바로 자기 이야기 하기이고 자기 표현이죠. 녹음기에다가 자기 얘기를 쏟아넣고 싶어하는 이 열광적 취미를 사람들은 무슨 성스러운 것이나 되는 양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이 시대가 드러내 보이는 가장 그로테스크하고 가장 비천한 권력의지, 즉 타인에게 자기를 강요하고자 하는 의지에 불과해요. 그런 건 다 소설과는 무관한 겁니다. 물론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우리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지요. 소설은 개인적인 정념들에서 태어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탄력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삶과 이어진 탯줄을 끊어버리는 순간,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이 아니라 그냥 삶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입니다. 질투에 대하여 글을 쓰는 소설가는 설사 그가 질투 속에 푹 빠져 있다 할지라도 질투를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실존적 문제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을 상상하고 내겐 수많은 실험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인물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한 권의 소설은 그것이 전혀 자전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극도로 개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자신이 그려낸 인물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가능성들을 보게 되고,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는 존재,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존재를 만나게 되죠. 그건 여성인물일 수도 있고 남성인물일 수도 있어요. 자서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요. 고드마르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소설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인가요? 쿤데라 우리는 미디어의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어요. 이미 50여 년 전에 가령 로베르트 무질처럼 가장 명석한 작가들은 문화의 목소리가 저널리즘의 소음 속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들의 생각은 옳았어요. 미디어의 정신은 현대 유럽이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은 문화의 정신과는 배치되는 것이지요. 문화는 개인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 데 미디어는 획일성을 지향해요. 문화는 만사와 만물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데 비하여 미디어는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요. 문화는 긴 질문인 데 비하여 미디어는 만사에 신속한 해답을 제공하지요. 문화는 기억의 파수꾼인데 비하여 미디어는 뉴스의 사냥꾼이죠. 오늘날에는 소설가를 기쁘게 해주려고 사람들은 “당신의 책은 일대 사건입니다” 하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사건이란 뭐죠? 너무나도 중요한 나머지 미디어의 관심을 사로잡는 뉴스를 뜻하죠. 그런데 우리가 소설을 쓰는 것은 무슨 사건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가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보기 위해서죠. 순전히 뉴스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 오래 가는 그 무엇인가가 아직도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요? 일간지, 주간지 심지어 잡지라도 펴보세요. 이러저러한 시사적 뉴스에 바싹 매달리지 않고는 거기에다가 글을 발표할 수가 없어요. 당신이 어떤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책이 이번주에 출간되기 때문이죠. 일주일만 지나면 그 작가는 벌써 인터뷰 감이 못 되는 겁니다. 시효가 지난 거죠. 그는 이미 뉴스거리가 아니거든요. 뉴스를 벗어나면 구원도 없다 이겁니다. 뉴스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망각의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문화적 계속성이 노상강도사건이나 럭비게임 같은 일련의 덧없고 고립된 사건들로 변질되고 마는 ‘망각체계’를 창조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드마르 대단히 비관적이시군요. 당신 소설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쿤데라 아닙니다. 난 비관적도 아니고 낙관적도 아닙니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가설일 뿐이죠. 난 소설가입니다. 소설가는 너무 단정적인 태도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지요. 그는 최대한의 설득력을 가지고 자기 인물들의 ‘상대적’ 진실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그 진실과 동일시하지 않아요. 바보만이 만사에 대한 해답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소설은 만사에 대해서 다 의문을 품는다는 점에서 현명한 장르입니다. 돈키호테가 자기집 대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서자 세상은 그의 눈앞에서 온갖 질문들로 변해버렸습니다. 세르반테스가 그의 후손들에게 남긴 메시지는, 소설가란 그의 독자들에게 세상을 하나의 질문으로 이해하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라는 겁니다. 신성불가침의 확신들 위에 세워진 세계 속에서는 소설이 살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은 그저 그같은 확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거야말로 소설정신에 대한 배반이고 세르반테스에 대한 배반이죠. 레닌주의건 이슬람이건 그 무엇이건 전체주의적인 세계는 답의 세계일 뿐 질문의 세계가 아닙니다. 매스 미디어 정신에 온통 침투된 세계 역시 불행하게도 답의 세계일 뿐 질문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런 세계 속에서는 세르반테스의 유산인 소설이 설 자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항 대립..

이항 대립 - 이것은 저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다

차이를 통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이 그 본질로써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남자는 남자의 본질로 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의 차이를 통해 그 의미를 가지고, 좋은 것은 좋은 것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나쁜 것과의 차이를 통해 좋다는 의미가 생긴다. 부드러운 것은 거친 것이 아니므로 부드러운 것이 되고,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므로 깨끗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든 것은 차이를 기본으로 만들어졌고 그 차이는 바로 문화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다.차이를 통해 의미가 발생한다는 소쉬르의 이론에 바탕을 둔 연구의 하나로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분석이 있다.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사회의 신화가 문화/자연, 선/악, 적군/아군, 흑/백 등과 같이 대립적인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이라고 한다. binary가 ‘두 가지, 쌍’이라는 의미이므로 두 가지 항목을 대립시켜 놓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므로 나와 남의 차이를 읽어 내고,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이 구별되는 것이다.과거 원시시대에 신화가 담당한 기능을 오늘날로 옮겨와 보면 매스미디어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텍스트들은 이항대립적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든 내러티브는 안정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꾸며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안정 상태란 현재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대중문화 텍스트는 지배 이념을 대변하고 있으며 사회변화를 막는다.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분석이 대중문화 연구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분석 방법으로 대중문화를 이항대립해 보면 그 속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지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신화분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광고 분석에 이용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레이모어다. 그는 광고를 기호체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광고는 한 작품뿐 아니라 같은 계통의 광고들끼리는 일정한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버터광고들을 모두 모아 놓고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이항대립을 완성시켰다.

서울 아트 가이드 (5월) '탁계석의 예술산책' 중

서울 아트 가이드 '탁계석의 예술산책' 중


< 클래식에서 사회성 주제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은 사회를 읽는 눈이 그만큼 부족하고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예술적 권위주의가 숨어 있다..... '우리의 소원', '고향의 봄' 노래하나가 갖는 힘은 그 어떤 정책이나 이념적인 강연보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위대함이 있다. 우리도 민중의 노래가 한때 있었지만 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가사나 노래의 예술성에서 그 만큼 공감이 덜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대한 작곡가들이여, 명망 높은 예술가들이여, 쉬우면서도 세계를 재패할 수 있는 명곡을, 작품을 좀 내어 놓으시라.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큰 음악은 반드시 쉽고 큰 예술은 필시 간단하다 하지 않던가. 예술성을 가지면서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하는 예술의 사회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

기호의 유형

■ 기호의 유형

도상적 기호(iconic sign) : 최근에 신세대가 선호하는 감성언어의 일종인 이모티콘은 전형적인 도상이다. 이러한 기호들은 각기 그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유사성에 착안한 것이다. 사진이 실물과 유사한 도상, 분자모형은 물질의 구조적 특징과 유사한 시각적 도상, 그리고 한국에서는 ‘멍멍’이 개 짖는 소리를 나타내는 음성적 도상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기호와 그 지시대상 사이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의미작용을 기능하게 하는 기호를 도상(icon)이라고 한다. 퍼스는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도상적 기호가 유용하게 활용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령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 아무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나, 나무의 사진을 보여주면 나무의 관념이 직접적으로 소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표적 기호(indexical sign) : 풍향계는 바람의 방향을 알리는 지표이고, 문을 노크하는 소리는 누군가가 와있다는 지표이며, 콧물과 재채기 그리고 미열 등은 감기 같은 질병의 지표이며, EQ가 정의적 능력의 지표이고, 연기가 불의 지표이며, 고급 승용차가 부의 지표로 통용되는 관행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퍼스는 기호와 그 지시대상 사이에 인과관계나 서열관계(sequential relation)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계가 있는 경우를 지표적 기호라고 한다.
지표(index)를 기호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퍼스의 기호학적 입장은 소쉬르의 기호 개념과 구별되는 뚜렷한 차이점이다. 소쉬르의 기호학에서 기표와 기의 간의 관계는 필연적 관계가 아니라 자의적 관계인 데 비해서, 퍼스의 기호학에서 지표는 대상을 필연적으로 지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진위의 문제가 아니라 기호의 본질을 규정하는 관점의 차이로 보아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퍼스의 기호학이 원래 인간과 사회 및 자연에 관한 탐구의 논리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고, 그래서 소쉬르의 기호학보다 기호의 외연이 넓기 때문이다.
상징적 기호(symbolic sign) : 도상이 유사성을 기반으로 하고, 지표가 인과성에 근거하여 의미작용을 일으키는 기호라면, 상징적 기호는 자의성이 그 특징이다. 상징적 기호와 그 지시대상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나 인과적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상징은 소쉬르의 기호이론에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처럼 전적으로 자의적 관행의 산물이다. 붉은 악마가 한국 축구 응원단을 상징하게 된 것도 필연적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의적 관행의 산물이다.
언어는 전형적인 상징적 기호에 속한다. 화판에 그린 소나무의 그림은 소나무의 도상적 기호이고, 저 소나무를 가리키는 내 손가락은 지표적 기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소나무’라고 표현하는 언어는 소나무에 대한 상징적 기호이다. 그 이유는 ‘소나무’라는 낱말을 발화할 때, 이 기표와 소나무 사이에 어떤 유사성도 없고, 어떤 내재적이고 필연적인 소나무다운 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로서의 소나무와 개념으로서의 소나무 사이의 관계는 사회의 자의성과 관행의 산물이다.
이상과 같이 기호와 그 지시대상 간의 유사성의 정도에 따라 퍼스는 기호를 도상과 지표 및 상징 등 세 가지 양식의 기호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어디까지나 개념적 구분이고 실제적으로 상호 배타적이지는 않다. 가령,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도서관의 ‘메뚜기’족이라고 하는 것은 톡톡 튀는 행태의 유사성에 근거한 비유라는 점에서 도상적 기호이긴 하나, 톡톡 튀는 행태를 벼룩이 아니라 메뚜기에 비유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의적이고 그래서 상징적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개 짖는 소리를 ‘멍멍’이라고 나타낼 때 이는 분명 음성적 도상이면서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 사회의 자의적 관행의 소산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상징적 측면을 가진 도상적 상징기호라 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통용되는 것은 도상적 상징, 지표적 상징, 혹은 상징적 지표와 같이 두 가지 이상의 기호양식이 중첩된 기호들이다.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



환상극 : 브레히트 연극이 우리에게 낯설게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종래의 소위 '환상극'이라고 불리는 전통극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연극의 기본 법칙은 우리가 무대 위에서 보고 있는 것은 실생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방 안쪽을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방의 4면 벽은 이상하게도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환영(幻影)은 파괴하는 그 어떤 장치도 허용되지 않는다. 무대장치, 조명, 분장, 그리고 연기 등 연극적 요소들은 이러한 환영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환상극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가끔 그 환상극이야말로 진정한 연극의 유일한 방편이라고 결론지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환상극은 연극 사조이ㅔ서 극히 단순한 역할을 해낼 뿐이다. 예컨대 무운시(無韻詩)와 독백과 단순화된 무대 양식을 지닌 셰익스피어 연극은 환상극과는 별 관계가 없다.

반(反)-환상극 : 현대의 많은 극작가들은 환상극의 한계를 인식하여 거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연극의 경우, 유진 오닐의 「이상한 간주곡」(Strange Interlude), 쏜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Our Town), 테네시 윌리암즈의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 그리고 아더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등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환상적 규범을 파기시키고 있다. 환상주의에 대한 서구의 반대론자들은 루이지 피란델로, 독일에서 브레히트와 함께 일한 어윈 피스카토르, 그리고 부조리 작가 베켓트, 이오네스코, 그리고 프랑스의 쟝 쥬네를 꼽을 수 있다.

구조 : 브레히트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전통극의 양식은 인위적이고 불필요한 제한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한다. 종전의 극은 하나의 단순한 행동을 취급하고 그것이 지니는 시공의 영역은 제한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면은 그것이 장면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하나의 대안으로서 브레히트는 '서사적' (敍事的) 구조를 제시한다. 즉 이것은 서사적이고 서술적 형태에 기초를 둔 구조로서, 자연스런 에피소드로 이루어지며, 거기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며 개개의 에피소드는 전체에 기여할 뿐 아니라 에피소드 그 자체로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서사적 구조는 전통극의 형식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과거의 시점에서 표현되는 이른바 과거의 사건을 서술적 기반을 빌어 다룬다. 종래의 전통극에서 다루는 가상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사극에서, 브레히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과거에 발생한 어떤 행위로 규정토록 유도하여 그 행위가 현재에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브레히트는 현재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이 실생활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른바 종래의 환상극의 구조적 패턴들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화 : '서사적' 구조는 본질적으로 브레히트 연극 이론의 유일한 부분이다. 이러한 서사적 구조의 뉘앙스는 무대화 작업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브레히트는 무대의 형태를 변경시킨다거나 객석과 무대와의 물리적 관계 (이를테면, 종래의 원형 극장에서 원형 무대가 객성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든가...) 를 배쳑하였다. 그가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은 관객과 현재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과의 관계였다. 관객은 최면술에 걸리어 연극을 '리얼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최면술에 의해 전통극이 끼친 영향의 일부는 객성이 조명이 꺼진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브레히트는 객석의 조명도 항시 켜진 상태 그대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야만이 관객은 현실을 의식하게 되고 지적으로 깨어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관객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보다는 냉철한 이성에 의해 그 것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브레히트의 주장에 의하면 무대 위에서 사용되는 소품들은 관객을 우롱하여 관객이 극장 안에 있다는 것을 잊게하는 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된다.
브레히트는 무대상의 인위적 조작을 거부한다. 예컨대, 밤 장면을 설정할 경우, 인공 조명을 사용하여 실제의 밤이라는 환상을 자아내게 해서는 안된다. 밤을 상징하는 인공의 달을 매달기만 하면 된다. 무대는 항시 현란한 조명을 흠뻑 받고 있어야만 관객은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다. 초기에 습장에 몰두하면서, 브레히트는 광원 그 자체는 항시 관객이 볼 수 있는 곳에 비치되어야 한도고 주장했다.
같은 취지의 반-환상극적 의도는 무대 공연의 여러 연극적 요소에 대한 브레히트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브레히트는 종전의 전통극의 양식에 맞추어 실제의 장솔르 재현하기 위해 시도되는 무대장치를 거부했다. 그는 단순화된 무대를 선호했으며, 무대는 어디까지나 실생활에서 따온 것이어야 하며 인위적이고 조작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단순화된 무대와 특정사물 - 이를테면, 「베짱어멈」속의 수레 - 의 리얼리티 사이의 대조 현상은 브레히트 연극의 핵심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로 인해 관객은 가상적 현실을 수동적으로 의식하기보다는 중요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게 도니다. 의상이나 분장과 같은 그러한 디테일에 대한 브레히트의 태도 또한 이러한 기본적 자세와 일치한다.

연기 : 다른 모든 연극에서처럼, 브레히트의 연극에서 그 핵심을 차지하는 요소는 배우이다. 브레히트의 연극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배우는 자신이 맡고 있는 역중 인물(성격)이 되지 않도록 하는 브레히트의 의도적 이념 때문이다. 배우의 임무는 성격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 성격을 '설명'하는 데 있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글에서 연기자를 일개의 구경꾼에 비유해 이러한 개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즉, 연기자는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사건을 설명하고 구경꾼 또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구경꾼은 어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 이를테면, 자동차에 치인 보행자 - 이 어떻게 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거나 실제의 '행동이나 연기'를 통해 보여 줄 필요를 느낀다. 우리는 구경꾼과 보행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의 구경꾼은 분명 보행자가 한 행위를 보여 준다. 구경꾼은 그 보행자의 걸음을 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거나 보여 준다. 연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연기자는 인물이 특정 장소에 이룩해 낸 행위를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Peter Lorre가 브레히트의 「인간은 인간이다 」(Mans ist Mann)를 처음으로 공연했을 때, 그는 Galy Gay의 행동을 보여 주었을 뿌 항시 Peter Lorre라는 그 인물 그 상태로 남아 있었다. 배울르 칭찬하느 ㄴ전통극 - "배우는 단순히 리어왕 역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배우는 리어왕이 되어야 한다" - 은 브레히트의 연극 세계에서는 설 곳이 없다.

소외효과 :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 중 가장 널리 논의되는 요소는 '소외'의 개념이다. 이 '소외'의 개념은 브레히트의 이론에서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이론의 요소들에도 내재하고 있다. 독일 원어로는 'verfremdung'이며 '낯설게 하기'의 뜻이다. 이 말의 가장 원초적인 의미는 관객이 새로운 고나점에서 사물을 관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관객이 이제까지 익숙해져 온 것에서 '낯설게' 만들거나 '소외'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소외의 개념은 결코 브레히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낭만 시인 Shelley는 시인의 임무를 규명하는 말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 사물, 그리고 상황을 마치 처음 보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다." 브레히트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이런 의미에서 어머니가 재혼할 때 어머니로부터 '소원'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머니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른 남자의 아내로 보게 되며, 전에는 어머니를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소외'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롭다는 것은 연극 예술의 초보적 원리에 한정된 것이지 그것이 보다 나은 연극을 위한 가치 체계를 수립하는 근본 원리는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완전히 익숙해지게 되었을 때, 그것이 항상 그렇게 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절로 빠져 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것의 필연성을 수용한다. 그러나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에게 제시될 때, 우리는 새로운 그 무엇이 반드시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여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배척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무언가로부터 '소원'될 때, 그것은 마치 무언가가 새롭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은 우리에게 낯설게 보이므로 우리는 그토록 새롭고 낯선 것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브레히트의 경우, 이것은 연극뿐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체계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을 '멀리하는' 예술가는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대안들이 있으며, 자본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것을 관찰하는 자들에게 인식시켜 준다. 브레히트의 생각에, 사회 개혁은 자신의 소위 '소외 효과'에 으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산주의 노선에 따라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브레히트의 이론은 극히 한정적이어서 비공산권 독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소외 효과와 다른 개념과의 상관 관계 : 지금까지 논의된 바, 브레히트의 고유한 극 구조, 무대화, 그리고 연기 그 모두가 다 소외의 개념과 관련을 맺고 있다. '소외효과'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의 구조, 무대화, 그리고 연기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브레히트 고유의 극 구조, 무대화, 그리고 연기술이 지금까지 유지된 것은 바로 그의 독특한 '소외효과' 때문일 것이다.

연극 목적 : 그의 초기 연극 작품에서, 브레히트는 연극의 목적은 "교훈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극을 통해서 관객은 보다 나은 세계의 건설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후에, 그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여 연극의 목적은 모든 예술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쾌락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플라톤의 이론을 수용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시대에 어울리는 '쾌락' 이란 우리가 먹는 과자에서 맛보는 그러한 종류의 쾌락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자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생겨나는 보다 심오한 쾌락이다. '쾌락'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브레히트는 초기의 '교훈주의'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오히려 그는 교유과 쾌락의 두 가지 요소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관객 : 종래의 환상극은 주로 감정 이입에 근거를 둔 이른바 반이성적으로 감정적 반응을 관객으로부터 요구한다. 연기자는 역중 인물을 대신하여 무대에 서게 되며 따라서 연기자는 역중 인물이 느끼고 있는 것을 느끼는 자이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정서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보다 비판적이고 지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관객은 감정 이입에 빠져들지 말고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 판단을 해야 한다.

게스투스(GESTUS) : 브레히트 연극 이론의 핵심어는 '게스투스'다. 불행하게도, 이 용어에 대치될 만한 영어 용어는 없다. (역자주 : Gestus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행동'이라 번역할 수 있다. 사회적 행동은 직업 혹은 계층에 따라서 고정화되어 있고 특정화되어 있는 행동의 패턴이라 할 수 있다. ) 브레히트가 적어도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사회적 관계를 외부적으로 표현할 경우다. 그러므로 '게스투스'는 하나의 행위와 말과 시각에 의해 어떤 관계를 들추어 낸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와 반-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 : 이러한 용어들을 이해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 브레히트는 종전의 환상극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했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연극을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며, 반-환상극을 상대적으로 "반-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 명명한 것이다.

- 윌리엄 캔니 著, 허은 옮김<가까이서 본 브레히트의 걸작들>중에서, 1996
[출처]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작성자 소낙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