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의 '개전'을 다녀오다. 개들이 왕왕 울부짖는 '개판'다운 전시회. '개'를 이해해보고, '개와 인간'을 뒤집어보고, '개'의 입장에서 이야기해고, '개'를 다시 만들어보았던 전시회. 한가지 소재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작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음.
'개전' 앞줄에 적혀있는 글들
<교사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학생은 훌륭하다'는 확신과 믿음이고,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학생은 훌륭하다'는 확신과 믿음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자세와 노력이다>
<교육은 학생들의 새로운 자기(나)를 발견하게 하는 중요한 혁명이 되어야 한다>
<프로젝트의 중요한 사명은 지금까지 없었던 '이미지 생산'과 '의미생산'을 통해 사회에 대한 말걸기이다>
<세상앞에 우뚝서는 연습을 하려면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난을 자청함으로써 가능하다>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김민수 "모던디자인비평"
누군가 이 책 전체를 통해 필자가 밝히고자 했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해보라고 주문한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그것은 디자인의 '반성적 성찰의 인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결국 필자가 이 책을 통해 논의했던 모던 디자인으로부터 포스트 모던과 해체로의 이탈 과정은 철학적으로 볼 때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또는 그것이 규정했던 규범 체계들에 대한 반성을 통한 '극복'(하버마스식의)과 '초월'(데리다와 푸코식의)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 이러한 이탈 과정을 눈여겨 보면서 필자는 그동안 적용되었던 디자인 실무와 교육에 대한 냉철한 반성적 성찰만이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디자인의 실무와 교육을 통해 적용되었던 상당히 많은 주된 가치들이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변화의 양상은 디자인의 개념 자체에 대한 수정으로까지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앞서 우리가 살펴 보았들이 결코 우연에 의해 초래된 결과가 아니라 뚜렷한 역사적, 정치 - 경제적, 사회 - 문화적 인과 관계들 속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디자인은 그와 같은 현재의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설득력있는 해석이나 그 자체를 평가하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이 책에서 필자가 모더니즘 이후의 포스트 모던과 해체주의 디자인을 그 철학적 견해에서부터 디자인 실행까지 연결시키면서 조명한 데 대해 그와 같은 외래적 현상들이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혹자들은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원래 '디자인'이란 개념 자체도 외래적으로 수입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한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은 왜 디자인의 개념 자체를 수입된 시점에서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서구 사회에서조차 그 개념을 포기 또는 수정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애써 도외시하고 있는가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역사 의식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이는 달리 말해 스스로를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결별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설사 오늘날의 디자인의 개념적 변화가 서구적 상황에서 발생된 현상이라 간주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치 - 경제적, 사회 - 문화적 변화 속에서 볼 때 결코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또한 우리가 과거의 통제된 유형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정보와 자본의 흐름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면, 모든 현상은 결코 어떤 특수한 문화 지형 내에서 고립적으로 발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시공간 상의 변화도 부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 어떤 섬에서 땅굴을 파고 옥쇄(玉碎)하다 살아 남아 몇 십년 뒤 땅 밖으로 기어나온 일본군이 자신은 아직도 '황국(皇國)을 지키는 전사'라고 울부짖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세계 문화적 보편성을 위해 우리 고유의 특수성을 희생시켜온 우리에게 현재 직면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분석되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분석의 방향이 어느 한쪽을 배격하면서 다른 한쪽만을 강조해야 하는 모습으로 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은 세계적 보편성과의 균형 감각을 유지할 때 그 참다운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 40년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만들어 놓은 국제적 '보편성'을 얻기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 그 과정에서 모든 문화적 '특수성'들이 '보편성의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유실되고 망각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근래에 들어 우리 고유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문화 저변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의 흥행이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접해졌듯이). 어찌 보면 이러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조장되기 시작한 것은 보편성이 어느 정도 획득되기 시작한 아주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디자인의 임무는 현재 이중적인 과제로 남는다. 즉 우리는 한편으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보편적인 디자인 어휘를 전개시켜야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서 어떠한 디자인을 어떻게 현대 디자인의 맥락으로 추구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요즘 세간에 유행하고 있는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표어만으로 간단히 해결될 성질은 아니다. 예를 들면 요즘 모 기업에서 개발된 "누룽지를 만들 수 있는 전자 밥통"과 "물걸레질하는 진공 소제기"와 같은 제품들이 우리와 다른 문화 공간 속에 곧바로 적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결국 국수주의적인 자기 도취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며, 반대로 외래 문화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반대로 자기 멸시와 허무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해석하는 태도에 한가지 문제가 있음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유달리 한국에서 알레르기 반응식으로 곧잘 매스컴을 통해 떠들어 대는 "문화 침투(cultural invasion)"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文化觀)'이 이 두 단어의 결합 속에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일상적 용례에서 우리가 "~에 침투하다 또는 침투해 들어가다"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원래 '침투'라는 말은 특정한 공간 또는 상황이 전제된 말이다. 침투라는 말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공간 또는 허약한 대상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며, 공간을 특정하게 한정지울 수 없을 만큼 원대하거나 강인한 것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로(특정 공간 속으로) 외계인이 침투하다"라는 말은 사용해도 "지구인이 우주에 침투하다" 라는 말은 별로 의미있는 말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병원균이 몸에 침투하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겨 항균력이 약해졌을 때이다. 이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침투가 문화라는 말과 결합되어 "문화 침투"란 말이 되었을 때 이 복합어는 어떤 이질적 문화가 침투하게 되는 대성으로서 '고정된, 정체된, 비역동적인, 허약한 문화 공간'을 지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 문화에 대해 어떤 이질 문화가 침투하고 있다고 호들갑 떨며 경고식의 말을 해대는 것은 우리 문화의 비역동적 정체성을 자인하는 말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갖고 있던 쪽박마저 깨질까봐 벌벌 떨고 있는 너무나 미약한, 주체적 자존심도 없는 존재들로 매도하게 되는 말이 된다. 그 말은 우리 문화를 정체된 허약함으로 규정지움으로써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결국에는 소인배임을 자처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제 때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내요시가 "한국과 그 예술"이라는 글에서 조선의 미(美)를 반도적인 지리적 특성과 그로 인한 비참한 역사로 각인된 것으로 파악해 "애상적인 비애의 미"로 서술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문화 침투란, 스스로를 우주적 공간으로 원대하게 여기고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 대해서는 절대로 적용될 수 없는 용어이다. 또한 그 문화가 주체적 자아를 갖고 있다면 설사 수퍼 헤비급의 이질적인 것이 침투한다고 해도 자체의 문화적 에너지로 용해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문화 침투라는 용어 속에서 스스로를 소인배로 격하시키게끔 유도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성 말살의 망령이 되살아남을 느끼곤 한다. 대한 민국 헌법 전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를 "한반도와 부속 영토로"규정짓고 있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를 정체적인 불변의 공간적 의미로 한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갖게된 문화 개념은 뜨겁게 살아 숨쉬는 오늘의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무덤에서 파낸 '골동' 문화밖에는 없는 것이다. 왜 문화는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손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점에 대해 필자가 지난 1986년 뉴욕 매디슨 애비뉴 59가의 IBM 갤러리에서 보았던 한 전시회에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도쿄, 형태와 정신(Tokyo, Form&Spirit)"이라는 전시회로 일본 문화 재단과 유수의 일본 기업들의 후원으로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사진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마련된 것이었다. 그 전시회는 일본의 전통성과 현대의 조형적 실험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였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필자의 뒤통수를 쳤던 것은 8폭짜리 병풍이었다. 그것은 칼을 들고 군무를 추고 있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수 놓은 것이었는데, 색이 좀 바래 누가 보아도 '에도 시대' 이전의 것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골동품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병풍을 눈여겨 보다가 그림의 하단부에 사무라이가 신고 있던 신발이 '나이키' 운동화임을 발견하고 필자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잠시 후 그것은 그저 웃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아아! 이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오가며 내일로 향해가는 사람들이구나. 두고두고 필자는 그 '나이키를 신은 사무라이'의 망령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은 우리가 이땅에서 애써 부인하고 그로 인해 편협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커진 나라이다. 일본의 위상이 훨씬 더 커진 원동력은 바로 그와 같이 과거를 오늘에서 정의하려는 노력과 그로 인해 '골동'을 그 자체로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로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문화적 역동성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옛 선조들이 일보에 전해준 고대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일본에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최면에 빠진 '골동' 문화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속성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우리는 영원히 '수비형'의 문화로 남아 있으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져왔던 이와 같은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에 일대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언제 침투할지 모를 외래 문화에 대해 언제까지 불한한 '수비형'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말이다. 왜 우리는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대응하고, 우리의 문화를 외부적으로 발산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 필자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우리 문화 내에서 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수비형의 자세를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상당히 철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안에 주체적 자아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주체적 자아라는 자기 - 정제력을 가진 여과체가 있을 때 또한 그러한 주체들에 의한 자발적인 참여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양질의 문화를 식별해 냄으로써 스스로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되는 자생력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문화를 위로부터 명령에 의해 하달된 것(top - down)이 아니라 자체의 여과 기능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된 문화(bottom - up culture)'라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학술적인 설명 이전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의 본질적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설사 어떠한 외래 문화들의 침투가 융단 폭격식으로 가해진다 해도 붕괴되기는 커녕 끊임없는 생성 과정을 통해 계속적으로 자체 문화의 폭을 증식시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보편과 특수 사이의 균형감각과 하께 자기 - 여과력의 기능이 우리의 문화 속에 있어 준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추구해온 디자인스럽게 보이는 '모조 디자인(pseudo - design)'의 차원을 벗어나 개념 설정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의 해석을 디자인에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앞서 보았던 베네통사의 고아고, 멤피스의 산업 디자인, 꼼드 갹송의 패션이 넓혀 놓은 '인식의 범위까지만' 디자인해야 하는가? 그러한 창의적인 작업들이 이 땅에 처음 소개될 때면 으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야!" 라고 애써 거부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리는 온통 그와 같은 것들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러한 창조의 주인공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이 허물어 버린 창조적 인식의 그늘을 더 좋아하는가 말이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우리의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이 그동안 어떠한 재평가도 없이 다시 바우하우스 또는 울름 조형대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서구식 커리큘럼을 '구색 맞추기식'으로 복제하고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어째서 이러한 디자인 운동들이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일말의 재고도 없이 받아 들여져 마치 그것들 아니면 교육이 망가지는 것처럼 소중시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우리의 디자인 교육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념적 오류와 그것으로 인해 각인된 디자인 교육의 방식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필자가 바우하우의 좌익 성향과 당시 독일의 철학적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뚜렷한 연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듯이, 사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은 당시의 나찌 독일을 가능하게 했던 기반 속에서 잉태되었던 것이다. 나찌의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t) 우익 정치 이념은 좌익 바우하우스를 폐교시키고 많은 모더니스트들을 미국으로 망명시킨 계기를 제공했지만, 이념 자체로 보았을 때 나찌의 정치 이념은 모던 디자인의 이념과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른바 나찌가 수백만 유태인 대량 학살의 명분으로 삼았던 게르만 민족의 단일한 '혈통적 순수성' 보존의 이념과 디자인에 있어 어떠한 개별적인 탐색과 표현성도 말살시킨 모던 디자인의 순수한 '기능적 순수함'의 이념 사이에는 은유적인 것 이상의 직접적인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똑같은 동전에 찍혀진 양면에 불과할 뿐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 특정 이데올로기가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이억만리 떨어진 이 땅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디자인 교육의 유일한 패러다임으로 언제나 찬양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우리는 현 시대에 새롭게 재편성되고 있는 철학적, 정치 - 경제적, 사회적 - 문화적 구조 위에서 그동안 추구해 왔던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디자인 자체의 비평적 기능을 파생시킴으로써 철저한 '자기 - 반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얻어진 결과들이 우리 모두에게 공유될 때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디자인이 어떠한 위상에서 어떤 목표로 향해 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상과 목표를 설정하려는 어떠한 자체의 논의도 없이 다만 그럴듯 해보이는, 또는 남들이 우려 먹다 버린, 방법론의 도입을 되풀이 함은 마치 키없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돛단배와 같지 않겠는가?
김민수,"모던디자인비평" (안그라픽스, 1994) 중 <맺음말>
이 책에서 필자가 모더니즘 이후의 포스트 모던과 해체주의 디자인을 그 철학적 견해에서부터 디자인 실행까지 연결시키면서 조명한 데 대해 그와 같은 외래적 현상들이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혹자들은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원래 '디자인'이란 개념 자체도 외래적으로 수입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한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은 왜 디자인의 개념 자체를 수입된 시점에서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서구 사회에서조차 그 개념을 포기 또는 수정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애써 도외시하고 있는가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역사 의식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이는 달리 말해 스스로를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결별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설사 오늘날의 디자인의 개념적 변화가 서구적 상황에서 발생된 현상이라 간주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치 - 경제적, 사회 - 문화적 변화 속에서 볼 때 결코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또한 우리가 과거의 통제된 유형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정보와 자본의 흐름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면, 모든 현상은 결코 어떤 특수한 문화 지형 내에서 고립적으로 발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시공간 상의 변화도 부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 어떤 섬에서 땅굴을 파고 옥쇄(玉碎)하다 살아 남아 몇 십년 뒤 땅 밖으로 기어나온 일본군이 자신은 아직도 '황국(皇國)을 지키는 전사'라고 울부짖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세계 문화적 보편성을 위해 우리 고유의 특수성을 희생시켜온 우리에게 현재 직면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분석되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분석의 방향이 어느 한쪽을 배격하면서 다른 한쪽만을 강조해야 하는 모습으로 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은 세계적 보편성과의 균형 감각을 유지할 때 그 참다운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 40년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만들어 놓은 국제적 '보편성'을 얻기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 그 과정에서 모든 문화적 '특수성'들이 '보편성의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유실되고 망각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근래에 들어 우리 고유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문화 저변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의 흥행이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접해졌듯이). 어찌 보면 이러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조장되기 시작한 것은 보편성이 어느 정도 획득되기 시작한 아주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디자인의 임무는 현재 이중적인 과제로 남는다. 즉 우리는 한편으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보편적인 디자인 어휘를 전개시켜야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서 어떠한 디자인을 어떻게 현대 디자인의 맥락으로 추구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요즘 세간에 유행하고 있는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표어만으로 간단히 해결될 성질은 아니다. 예를 들면 요즘 모 기업에서 개발된 "누룽지를 만들 수 있는 전자 밥통"과 "물걸레질하는 진공 소제기"와 같은 제품들이 우리와 다른 문화 공간 속에 곧바로 적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결국 국수주의적인 자기 도취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며, 반대로 외래 문화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반대로 자기 멸시와 허무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해석하는 태도에 한가지 문제가 있음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유달리 한국에서 알레르기 반응식으로 곧잘 매스컴을 통해 떠들어 대는 "문화 침투(cultural invasion)"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文化觀)'이 이 두 단어의 결합 속에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일상적 용례에서 우리가 "~에 침투하다 또는 침투해 들어가다"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원래 '침투'라는 말은 특정한 공간 또는 상황이 전제된 말이다. 침투라는 말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공간 또는 허약한 대상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며, 공간을 특정하게 한정지울 수 없을 만큼 원대하거나 강인한 것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로(특정 공간 속으로) 외계인이 침투하다"라는 말은 사용해도 "지구인이 우주에 침투하다" 라는 말은 별로 의미있는 말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병원균이 몸에 침투하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겨 항균력이 약해졌을 때이다. 이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침투가 문화라는 말과 결합되어 "문화 침투"란 말이 되었을 때 이 복합어는 어떤 이질적 문화가 침투하게 되는 대성으로서 '고정된, 정체된, 비역동적인, 허약한 문화 공간'을 지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 문화에 대해 어떤 이질 문화가 침투하고 있다고 호들갑 떨며 경고식의 말을 해대는 것은 우리 문화의 비역동적 정체성을 자인하는 말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갖고 있던 쪽박마저 깨질까봐 벌벌 떨고 있는 너무나 미약한, 주체적 자존심도 없는 존재들로 매도하게 되는 말이 된다. 그 말은 우리 문화를 정체된 허약함으로 규정지움으로써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결국에는 소인배임을 자처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제 때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내요시가 "한국과 그 예술"이라는 글에서 조선의 미(美)를 반도적인 지리적 특성과 그로 인한 비참한 역사로 각인된 것으로 파악해 "애상적인 비애의 미"로 서술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문화 침투란, 스스로를 우주적 공간으로 원대하게 여기고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 대해서는 절대로 적용될 수 없는 용어이다. 또한 그 문화가 주체적 자아를 갖고 있다면 설사 수퍼 헤비급의 이질적인 것이 침투한다고 해도 자체의 문화적 에너지로 용해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문화 침투라는 용어 속에서 스스로를 소인배로 격하시키게끔 유도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성 말살의 망령이 되살아남을 느끼곤 한다. 대한 민국 헌법 전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를 "한반도와 부속 영토로"규정짓고 있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를 정체적인 불변의 공간적 의미로 한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갖게된 문화 개념은 뜨겁게 살아 숨쉬는 오늘의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무덤에서 파낸 '골동' 문화밖에는 없는 것이다. 왜 문화는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손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점에 대해 필자가 지난 1986년 뉴욕 매디슨 애비뉴 59가의 IBM 갤러리에서 보았던 한 전시회에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도쿄, 형태와 정신(Tokyo, Form&Spirit)"이라는 전시회로 일본 문화 재단과 유수의 일본 기업들의 후원으로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사진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마련된 것이었다. 그 전시회는 일본의 전통성과 현대의 조형적 실험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였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필자의 뒤통수를 쳤던 것은 8폭짜리 병풍이었다. 그것은 칼을 들고 군무를 추고 있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수 놓은 것이었는데, 색이 좀 바래 누가 보아도 '에도 시대' 이전의 것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골동품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병풍을 눈여겨 보다가 그림의 하단부에 사무라이가 신고 있던 신발이 '나이키' 운동화임을 발견하고 필자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잠시 후 그것은 그저 웃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아아! 이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오가며 내일로 향해가는 사람들이구나. 두고두고 필자는 그 '나이키를 신은 사무라이'의 망령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은 우리가 이땅에서 애써 부인하고 그로 인해 편협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커진 나라이다. 일본의 위상이 훨씬 더 커진 원동력은 바로 그와 같이 과거를 오늘에서 정의하려는 노력과 그로 인해 '골동'을 그 자체로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로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문화적 역동성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옛 선조들이 일보에 전해준 고대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일본에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최면에 빠진 '골동' 문화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속성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우리는 영원히 '수비형'의 문화로 남아 있으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져왔던 이와 같은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에 일대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언제 침투할지 모를 외래 문화에 대해 언제까지 불한한 '수비형'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말이다. 왜 우리는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대응하고, 우리의 문화를 외부적으로 발산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 필자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우리 문화 내에서 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수비형의 자세를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상당히 철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안에 주체적 자아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주체적 자아라는 자기 - 정제력을 가진 여과체가 있을 때 또한 그러한 주체들에 의한 자발적인 참여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양질의 문화를 식별해 냄으로써 스스로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되는 자생력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문화를 위로부터 명령에 의해 하달된 것(top - down)이 아니라 자체의 여과 기능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된 문화(bottom - up culture)'라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학술적인 설명 이전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의 본질적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설사 어떠한 외래 문화들의 침투가 융단 폭격식으로 가해진다 해도 붕괴되기는 커녕 끊임없는 생성 과정을 통해 계속적으로 자체 문화의 폭을 증식시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보편과 특수 사이의 균형감각과 하께 자기 - 여과력의 기능이 우리의 문화 속에 있어 준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추구해온 디자인스럽게 보이는 '모조 디자인(pseudo - design)'의 차원을 벗어나 개념 설정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의 해석을 디자인에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앞서 보았던 베네통사의 고아고, 멤피스의 산업 디자인, 꼼드 갹송의 패션이 넓혀 놓은 '인식의 범위까지만' 디자인해야 하는가? 그러한 창의적인 작업들이 이 땅에 처음 소개될 때면 으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야!" 라고 애써 거부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리는 온통 그와 같은 것들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러한 창조의 주인공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이 허물어 버린 창조적 인식의 그늘을 더 좋아하는가 말이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우리의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이 그동안 어떠한 재평가도 없이 다시 바우하우스 또는 울름 조형대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서구식 커리큘럼을 '구색 맞추기식'으로 복제하고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어째서 이러한 디자인 운동들이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일말의 재고도 없이 받아 들여져 마치 그것들 아니면 교육이 망가지는 것처럼 소중시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우리의 디자인 교육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념적 오류와 그것으로 인해 각인된 디자인 교육의 방식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필자가 바우하우의 좌익 성향과 당시 독일의 철학적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뚜렷한 연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듯이, 사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은 당시의 나찌 독일을 가능하게 했던 기반 속에서 잉태되었던 것이다. 나찌의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t) 우익 정치 이념은 좌익 바우하우스를 폐교시키고 많은 모더니스트들을 미국으로 망명시킨 계기를 제공했지만, 이념 자체로 보았을 때 나찌의 정치 이념은 모던 디자인의 이념과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른바 나찌가 수백만 유태인 대량 학살의 명분으로 삼았던 게르만 민족의 단일한 '혈통적 순수성' 보존의 이념과 디자인에 있어 어떠한 개별적인 탐색과 표현성도 말살시킨 모던 디자인의 순수한 '기능적 순수함'의 이념 사이에는 은유적인 것 이상의 직접적인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똑같은 동전에 찍혀진 양면에 불과할 뿐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 특정 이데올로기가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이억만리 떨어진 이 땅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디자인 교육의 유일한 패러다임으로 언제나 찬양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우리는 현 시대에 새롭게 재편성되고 있는 철학적, 정치 - 경제적, 사회적 - 문화적 구조 위에서 그동안 추구해 왔던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디자인 자체의 비평적 기능을 파생시킴으로써 철저한 '자기 - 반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얻어진 결과들이 우리 모두에게 공유될 때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디자인이 어떠한 위상에서 어떤 목표로 향해 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상과 목표를 설정하려는 어떠한 자체의 논의도 없이 다만 그럴듯 해보이는, 또는 남들이 우려 먹다 버린, 방법론의 도입을 되풀이 함은 마치 키없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돛단배와 같지 않겠는가?
김민수,"모던디자인비평" (안그라픽스, 1994) 중 <맺음말>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그래픽 디자이너-네빌 브로디
neville brody는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라퍼이다. 처음에는 회화를 공부했으나 1976년부터 3년간 런던 인쇄 대학(London college of printing)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졸업 후 몇 개의 음반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그의 세계를 펼치기 시작하였다.그 후 그는 1980,90년대 혁신적인 레이아웃,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독창적인 발상과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으로 주목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네빌 브로디는 디자인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한편 담배, 주류 등 그가 생각하는 도덕적 관념에서 벗어난 업종의 클라이언트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브로디의 작업은 이제 전자 기술적 정보전달 communication 전 영역에 의문과 창조어린 새로운 시각 언어 혁명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 시대 포스트 모더니즘 디자인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주 클라이언트는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미국 등에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DMC라는 TV를 위한 디자인 회사를 차렸고 일본에서는CD_ROMPublishers Digitalogue와 가까이 일했다. 지금은 일본,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다국적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타이포그라퍼로 전자디자인의 역할을 연구하고 창조해내는 새로운 비주얼언어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대별 작업 활동
1981년~ 1986년 페이스 The face의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면서 펑크 Punk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을 전개하여 독창적인 활자체의 개발, 관습적 타이포그라피의 개혁, 혁신적인 레이아웃 등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1987년 City Limits라는 런던 주간 가이드 표지 디자인을 했다. 1985년 런던에 그의 스튜디오를 열었으며, 1987년에 아레나(Areana)에 합세, 다시 한 번 혁신적인 편집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후 "브로디 현상"으로까지 불리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1988년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네빌 브로디의 그래픽 언어(The graphic Language of Neville Brody, 1988)라는 저서가 간행되었다.
1989년~1992년 독일의 템포 (Tempo), 프랑스의 악투엘 (Actuel), 이탈리아의 ''렐 앤 퍼 퓌 (Lel and Per Lui)의 잡지사에서 그의 뛰어난 타이포그라피를 보였다. 그리고 실험 글자 type 잡지인를 통해 다시 한 번 브로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1990년 그는 실험적 잡지인 FUZE를 발간했던 Stuart Jensen과 함께 Font Works를 열었으며, Fontshop International의 제작자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 케이블채널 Premiere와 오스트리아 주 방송국 ORF. 전자 이미지작업의 변천은 Brody가 디지털 타입에 열중했음을 반영한다.
1994년를 발간하여 그의 끊임없는 디자인 열정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작업 스타일
1. 텍스트를 무시하고, 북잡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아상블라주-지푸라기, 폐품 등을 이용한 기법-작품들)
2. 활자체의 깔끔한 선을 부각시켜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텍스트에 채움.(이미지와 활자 모두 사용하기 시작)
3. 글자를 비틀고 폰트를 뒤섞었으며, 부호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사용 (현란한 그래픽 등을 사용하여 포스트 모던한 활자체를 만들어 냄)
시대에 저항하는 기하학적 실험 작업
미묘한 형상들이 제공하는 난해성, 그러면서도 외면해 버리고 싶지 않은 독특한 작품 세계의 연출, 이것이 바로 젊은 작가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매력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시대적 한계성을 감지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독특한 언어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타이포그래피 그 자체가 갖는 어려움일 수 있다. 오늘날처럼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차원에로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창조성의 빛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그래픽디자인에 대해 전문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네빌 브로디의 작품에 접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묘한 파편 모습의 난해성은 접근하기 어려운 수렁으로서 우리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빌 브로디의 작품들을 아무런 언급 없이 지나쳐 버릴 순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이미 첫눈에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적잖은 파문을 던져주는 까닭에 그러하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그래픽 디자인의 획을 향해 확고히 정진,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본질적인 각성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방법론을 대거 출현시켰다. 우리는 뛰어난 <데 스틸(De Still)>사진작가 피에츠바르트(Piet Zwart)의 엄격하면서도 비타협적이고 논쟁적인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디자인에서 기억해야 될 것은 이미지의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메시지다."
그는 1928년 예술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고자하는 시도에서 말하고 있다. 덧붙여 그는 "모든 시대는 필연적으로 그 시대만이 가지고 있는 반역을 생산하는 요건을 지니고 있다"며 네빌 브로디의 혁명적 작품의 필요성에 대해 논평을 가했다. 타이포그래피만큼 전환기적 흐름과 단절되어 있는 분야는 없다. 캐롤링 왕조 시대의 소문자 발명은 서체의 발전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더 이상 형태의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딕에서 르네상스, 이탤릭, 게르마닉, 그리고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로마자와 딱딱한 산세리프체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단순한 장식의 변화로 일관된 흐름을 타고 진행되었다. 국제적으로 동일화된 평범한 서체와 자연스럽게 흘려 쓰는 흘림체의 경향이 있었고 흔치 않은 일로 가끔 관념과 리듬을 깨뜨린 기하학적 형태가 나와 당혹감을 안겨주었을 뿐 실지로 새로운 글자체의 격변은 없었다. 심지어 단어 (word) 자체가 사인으로 취급되었다.
규칙이란 근래에 등장한 강박관념이다. 앤톤 스테노브스키(Anton Stenkowski)를 시초로, 그 다음엔 신 그래픽 그룹이 구조적 그래픽을 산업적 커뮤니케이션에 적용시켰다. 조세프 뮬러 브로크만(Josef Miiler-Brockmann)의 구성적 그리드는 부자연스런 알람 시스템의 부분들을 구체화시켰다. 하지만 규칙을 내세운 부적당한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중지되었다.
얼마동안 그래픽 디자인은 그 원리와 기준에 캘빈주의를 적용, 금욕적이고 엄정한 논리에 의존해왔다. 때문에 그것은 종종 창의성과 신선미를 상실한 형식적 복잡함으로 시대를 역행해 왔다. 이는 방법론적 통일성과 어떤 면에서는 의도의 통일성 문제이다. 그 시대가 다양한 경험의 전이, 수많은 요구조건의 제시, 확고한 감성, 사용 언어의 상이함, 그리고 불필요하게 상호 공격적이고 무의식적인 새롭고도 흥미 있는 시각적 형상들을 도외시해 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도외시된 한 경우가 바로 영국의 새 세대로 가장 잘 알려진 청년 브로디이다.
그의 독특하고 비범하면서 복잡함과 난해함이 서로 얽힌 작품엔 여타의 시대에 대한 도전과 침략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서체로 마치 "칼날 위를 달리는 사람"과 같은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타이포그래피는 의도적으로 추한 중간색 또는 형태를 결여한 독소적인 모습의 단어를 사용한다. 즉 만자와 화살의 교차 사인, 터무니없는 독재자의 심벌 같이 그려진 마크 등으로 이 모든 것들은 먼지와 쓰레기들을 전달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과도한 표현이긴 하지만 문화적 흐름, 즉 은둔적으로 당대의 그래픽 작업에 있어서의 예술적 아이디어만 조직하려는 기성세대의 성향에 반발하여 진실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 모델에 의해 진실성을 상실한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행동에 의한 자극 받음으로써 틀에 박힌 구세대의 작업에 반대하는 것이다.
시대별 작업 활동
1981년~ 1986년 페이스 The face의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면서 펑크 Punk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을 전개하여 독창적인 활자체의 개발, 관습적 타이포그라피의 개혁, 혁신적인 레이아웃 등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1987년 City Limits라는 런던 주간 가이드 표지 디자인을 했다. 1985년 런던에 그의 스튜디오를 열었으며, 1987년에 아레나(Areana)에 합세, 다시 한 번 혁신적인 편집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후 "브로디 현상"으로까지 불리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1988년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네빌 브로디의 그래픽 언어(The graphic Language of Neville Brody, 1988)라는 저서가 간행되었다.
1989년~1992년 독일의 템포 (Tempo), 프랑스의 악투엘 (Actuel), 이탈리아의 ''렐 앤 퍼 퓌 (Lel and Per Lui)의 잡지사에서 그의 뛰어난 타이포그라피를 보였다. 그리고 실험 글자 type 잡지인
1994년
작업 스타일
1. 텍스트를 무시하고, 북잡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아상블라주-지푸라기, 폐품 등을 이용한 기법-작품들)
2. 활자체의 깔끔한 선을 부각시켜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텍스트에 채움.(이미지와 활자 모두 사용하기 시작)
3. 글자를 비틀고 폰트를 뒤섞었으며, 부호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사용 (현란한 그래픽 등을 사용하여 포스트 모던한 활자체를 만들어 냄)
시대에 저항하는 기하학적 실험 작업
미묘한 형상들이 제공하는 난해성, 그러면서도 외면해 버리고 싶지 않은 독특한 작품 세계의 연출, 이것이 바로 젊은 작가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매력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시대적 한계성을 감지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독특한 언어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타이포그래피 그 자체가 갖는 어려움일 수 있다. 오늘날처럼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차원에로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창조성의 빛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그래픽디자인에 대해 전문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네빌 브로디의 작품에 접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묘한 파편 모습의 난해성은 접근하기 어려운 수렁으로서 우리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빌 브로디의 작품들을 아무런 언급 없이 지나쳐 버릴 순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이미 첫눈에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적잖은 파문을 던져주는 까닭에 그러하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그래픽 디자인의 획을 향해 확고히 정진,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본질적인 각성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방법론을 대거 출현시켰다. 우리는 뛰어난 <데 스틸(De Still)>사진작가 피에츠바르트(Piet Zwart)의 엄격하면서도 비타협적이고 논쟁적인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디자인에서 기억해야 될 것은 이미지의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메시지다."
그는 1928년 예술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고자하는 시도에서 말하고 있다. 덧붙여 그는 "모든 시대는 필연적으로 그 시대만이 가지고 있는 반역을 생산하는 요건을 지니고 있다"며 네빌 브로디의 혁명적 작품의 필요성에 대해 논평을 가했다. 타이포그래피만큼 전환기적 흐름과 단절되어 있는 분야는 없다. 캐롤링 왕조 시대의 소문자 발명은 서체의 발전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더 이상 형태의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딕에서 르네상스, 이탤릭, 게르마닉, 그리고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로마자와 딱딱한 산세리프체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단순한 장식의 변화로 일관된 흐름을 타고 진행되었다. 국제적으로 동일화된 평범한 서체와 자연스럽게 흘려 쓰는 흘림체의 경향이 있었고 흔치 않은 일로 가끔 관념과 리듬을 깨뜨린 기하학적 형태가 나와 당혹감을 안겨주었을 뿐 실지로 새로운 글자체의 격변은 없었다. 심지어 단어 (word) 자체가 사인으로 취급되었다.
규칙이란 근래에 등장한 강박관념이다. 앤톤 스테노브스키(Anton Stenkowski)를 시초로, 그 다음엔 신 그래픽 그룹이 구조적 그래픽을 산업적 커뮤니케이션에 적용시켰다. 조세프 뮬러 브로크만(Josef Miiler-Brockmann)의 구성적 그리드는 부자연스런 알람 시스템의 부분들을 구체화시켰다. 하지만 규칙을 내세운 부적당한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중지되었다.
얼마동안 그래픽 디자인은 그 원리와 기준에 캘빈주의를 적용, 금욕적이고 엄정한 논리에 의존해왔다. 때문에 그것은 종종 창의성과 신선미를 상실한 형식적 복잡함으로 시대를 역행해 왔다. 이는 방법론적 통일성과 어떤 면에서는 의도의 통일성 문제이다. 그 시대가 다양한 경험의 전이, 수많은 요구조건의 제시, 확고한 감성, 사용 언어의 상이함, 그리고 불필요하게 상호 공격적이고 무의식적인 새롭고도 흥미 있는 시각적 형상들을 도외시해 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도외시된 한 경우가 바로 영국의 새 세대로 가장 잘 알려진 청년 브로디이다.
그의 독특하고 비범하면서 복잡함과 난해함이 서로 얽힌 작품엔 여타의 시대에 대한 도전과 침략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서체로 마치 "칼날 위를 달리는 사람"과 같은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타이포그래피는 의도적으로 추한 중간색 또는 형태를 결여한 독소적인 모습의 단어를 사용한다. 즉 만자와 화살의 교차 사인, 터무니없는 독재자의 심벌 같이 그려진 마크 등으로 이 모든 것들은 먼지와 쓰레기들을 전달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과도한 표현이긴 하지만 문화적 흐름, 즉 은둔적으로 당대의 그래픽 작업에 있어서의 예술적 아이디어만 조직하려는 기성세대의 성향에 반발하여 진실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 모델에 의해 진실성을 상실한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행동에 의한 자극 받음으로써 틀에 박힌 구세대의 작업에 반대하는 것이다.
Uncanny Valley

일본의 유명한 로봇 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는 1970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不氣味の谷 현상이라는 것을 소개하였다. 영어로는 uncanny valley라고 불리며 우리말로는 "불쾌한 골짜기"나 "이상한 골짜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이론의 골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로봇의 움직임이나 생김새가 인간의 모습에 근접하면 근접할 수록 더 호감을 갖지만 인간과 너무 비슷하면 오히려 혐오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예 완전히 흡사하면 괜찮지만 어중간하게 비슷했다간 되려 극도의 반발심을 유발한다. 악수를 한 상대방의 손이 의수임을 알아차렸을 때 순간적으로 드는 당혹감과 섬뜩함도 이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공업용 로봇들과는 달리 한국과 일본 등에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정용 로봇의 모습을 보면 모두 다 한결같이 인간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몸통 위에 머리가 달려 있고 두 개의 팔이 달려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로봇에겐 사실상 머리도 필요없고 얼굴도 필요없다. 어차피 입을 벌리며 말을 할 것도 아니고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로봇에게 입이 왜 필요한가? 팔이 두 개밖에 없는 것보단 세 개, 네 개 달리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두 팔을 고집하는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인간을 닮은 로봇에 가장 친근함을 느낀다고 한다. 상상해 보라. 병든 노인을 간호해 주는 간병 로봇이 발이 수십 개 달린 지네 모양으로 생겼다든지 어린 아이를 돌봐 주는 베이비시터 로봇이 거미 모양으로 생겼다면 느낌이 과연 어떠할지? 태권 V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사마귀처럼 생겼었다면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로봇의 보행수단으로서 지네나 곤충처럼 생긴 발이 실제로 이동성이나 안정성 면에서 훨씬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로봇 공학자들이 인간과 같은 이족 보행 로봇을 만드는데 온갖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로 로봇이 인간을 닮으면 닮을 수록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괴이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놓는 한 가설에 의하면 인간과의 공통점이 적은 로봇의 경우에는 인간과 닮은 부분이 부각되어 보이지만 거의 흡사할 정도로 닮은 로봇은 닮은 부분보다 오히려 닮지 않은 점들이 눈에 더 잘 띄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위화감을 조성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더 나아가서 인간과 지나치게 흡사한 로봇의 경우 생긴 것은 비록 사람 같아 보여도 무표정함, 풀린 눈동자, 차가운 피부 등의 미묘한 특성들 때문에 사람의 시체를 연상시키면서 오히려 거부감, 두려움, 섬뜩함 등의 감정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이 uncanny valley 현상은 비단 로봇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uncanny valley 현상은 비단 로봇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올 봄 2006 E3 게임 컨벤션에서 Quantic Dream사가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인 인간의 묘사이지만 아주 미묘하게 어색한 점들이 왠지 더욱 돋보이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유럽에서 만든 게임이다 보니 주인공역을 맡은 여자 성우의 영어 발음에 액센트가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왠지 캐릭터에게 약간의 정신 장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설정상 실제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Uncanny valley와는 조금 무관한 이야기지만 재작년에 id soft의 기대작 가 나왔을 때 인터뷰를 통해 제작자 존 카멕은 전편에 비해 현저히 느려진 게임 플레이에 관한 질문에 대해 비슷한 이유를 대며 해명을 한 적이 있었다. 즉, 오리지널 둠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래픽이 원시적이어서 만화 캐릭터 같이 생긴 주인공이 아무리 오두방정을 다 떨며 스크린상을 헤집고 뛰어다녀도 사람들이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둠3의 그래픽은 실사에 가까운 현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너무 빨리 뛰어다니거나 사방에 점프를 하고 다니면 비현실적인 요소가 오히려 더 부각되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수효과에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uncanny valley 현상은 영화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초의 풀 CGI 영화임을 자랑했던 파이널 판타지 영화판은 극도로 사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평이 있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으로 유명한 픽사의 경우 <인크레더블>에서 사실적인 배경 화면과는 달리 만화와 같이 2D 느낌을 주는 스타일라이즈된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 픽사측은 정밀한 묘사를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 uncanny valley 현상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적극적 해결책이었다고 해명을 한 바 있다.
특수효과에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uncanny valley 현상은 영화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초의 풀 CGI 영화임을 자랑했던 파이널 판타지 영화판은 극도로 사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평이 있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으로 유명한 픽사의 경우 <인크레더블>에서 사실적인 배경 화면과는 달리 만화와 같이 2D 느낌을 주는 스타일라이즈된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 픽사측은 정밀한 묘사를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 uncanny valley 현상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적극적 해결책이었다고 해명을 한 바 있다.
한편 인크레더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한 워너브라더스의 경쟁작 <폴라 익스프레스>의 경우는, 3D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인해 영화의 주타겟이었던 어린이들이 일부 (특이 어린 아이들이) "무섭다"는 반응을 보이며 극장에서 나가겠다고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유명한 영화 평론가인 리차드 로퍼 역시 <폴라 익스프레스>를 관람하면서 무의식 중에 이 uncanny valley의 존재를 인식한 듯하다. 그는 자신의 영화평을 통해 영화에 대한 수많은 칭찬을 늘어놓던 도중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Now as much as I love this film, I have to say there's something creepy and haunting about some of the scenes. With their big eyes and sad faces, some of the children are kinda spooky-looking."
"제가 이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긴 합니다만 일부 장면들에선 좀 괴이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눈에 슬픈 얼굴을 한 어린 아이들[주인공들]의 모습이 왠지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Now as much as I love this film, I have to say there's something creepy and haunting about some of the scenes. With their big eyes and sad faces, some of the children are kinda spooky-looking."
"제가 이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긴 합니다만 일부 장면들에선 좀 괴이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눈에 슬픈 얼굴을 한 어린 아이들[주인공들]의 모습이 왠지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실제 인물을 본떠 만든 밀랍 인형을 볼 때 우리는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라는 표현을 무의식 중에 사용하곤 한다. 왜 제임스 딘은 멋있어도 제임스 딘을 빼닮은 인형은 "섬뜩"할까? 로봇 기술이 발전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나날이 진보하는 가운데 인간이 자신을 닮은 피조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맞딱뜨릴 수밖에 없는 이 이상한 골짜기를 뛰어넘기 위해 앞으로 어떠한 돌파구를 마련해낼지 궁금해진다.
Uncanny Valley 관련 글:
- http://www.androidscience.com/theuncannyvalley/proceedings2005/uncannyvalley.html
- http://www.arclight.net/~pdb/nonfiction/uncanny-valley.html
- http://en.wikipedia.org/wiki/Uncanny_valley
- http://ja.wikipedia.org/wiki/%E4%B8%8D%E6%B0%97%E5%91%B3%E3%81%AE%E8%B0%B7%E7%8F%BE%E8%B1%A1
- http://robot01.com/contents/news_view.php?page=0&num=1404&search_field=&search_word=&bod_code=B00002
- http://www.slate.com/id/2102086/
- http://natsuo-omodaka.no-blog.jp/qualia/2004/09/post_16.html
- http://hotwired.goo.ne.jp/news/20051212201.html
모리 마사히로 관련 글:
- http://en.wikipedia.org/wiki/Masahiro_Mori
- http://robofesta-mie.com/cup.htm
Uncanny Valley 관련 글:
- http://www.androidscience.com/theuncannyvalley/proceedings2005/uncannyvalley.html
- http://www.arclight.net/~pdb/nonfiction/uncanny-valley.html
- http://en.wikipedia.org/wiki/Uncanny_valley
- http://ja.wikipedia.org/wiki/%E4%B8%8D%E6%B0%97%E5%91%B3%E3%81%AE%E8%B0%B7%E7%8F%BE%E8%B1%A1
- http://robot01.com/contents/news_view.php?page=0&num=1404&search_field=&search_word=&bod_code=B00002
- http://www.slate.com/id/2102086/
- http://natsuo-omodaka.no-blog.jp/qualia/2004/09/post_16.html
- http://hotwired.goo.ne.jp/news/20051212201.html
모리 마사히로 관련 글:
- http://en.wikipedia.org/wiki/Masahiro_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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