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6일 일요일
선거로 집권했으니 독재정부가 아니라고?
원문: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691786&pageIndex=1&searchKey=daumname&searchValue=케네디언&sortKey=depth&limitDate=0&agree=F
- 케네디언, 09.06.13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 정부를 과거 독재정권에 비유하며 강력히 비판한데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선거로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권을 어떻게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하느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 반박을 듣자마자 코웃음이 나왔다. 과거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숱하게 '독재정권'이나 '빨갱이 정권'이라고 공격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은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권이 아니었나. 더구나 지금까지 역사는 선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독재정권이나 독재에 준하는 정권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나치 히틀러도 사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했고, 페루의 일본계 후지모리 대통령도 합법적 선거를 통해 권위주의식 집권했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사실상 방송을 통제하고 기득권세력에 특혜를 주는 부패정권의 대명사가 됐다.
사실 필자는 2007년 대선 결과에 대해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진 격”이라고 통탄한 적이 있다. 자산과 소득 양극화에 부동산값 폭등, 비정규직 비율 55%, 청년 실업 200만, 출산율 바닥, 자살율과 근로시간, 산재사고 OECD 최고라는 대한민국의 엽기적인 현실을 생각할 때 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솔직히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된 형태로 말이다. 사실 현 정부는 아마추어도 이만저만한 아마추어가 아니며,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점에서 사기꾼 기질이 유전자에 각인된 정부라고 본다. 이들을 단순히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실용정부’나 중도 우파 정부라고 본다면 그것은 오해요, 착각이다.
이들은 과격한 ‘우파 기득권 혁명세력’이다. 물론 지금 같은 경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엉터리 저질 집단이기는 한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들과 지지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관철시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는 점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 자신들 세력을 결집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하고, 미네르바 등 네티즌 논객을 구속하고 용산참화의 희생자들에게 사과는커녕 물리력을 휘두르고, 서울광장까지 봉쇄하며 시민들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를 가로막는 태도를 보면서 이들은 정상적 판단력을 가진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대폭로(The Great Unraveling)'이라는 책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를 ‘혁명 세력(A Revolutionary Power)’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처음에 경제 문제에 대해 글을 쓰다가 점점 정치 문제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급진적인 정치 운동이 부상하고 점증하는 지배력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급진 우익이 백악관과 의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사법부와 미디어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게 된 현실에 대해 그는 매우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바로 이 책의 도입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닉슨 행정부 시절 냉혈적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박사학위 논문 ‘되찾은 세계(A World Restored)’에서 1930년대의 전체주의 정권들에 대한 유화적 대응책의 실패를 비판한다. 이때 그는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 치하의 정치 세력들을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1930년대의 전체주의 세력에도 같은 규정을 한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이 박사학위 논문을 읽다가 부시 행정부 또한 기존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오랫동안 확립된 미국의 정치 및 사회적 제도들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우리들 모두가 당연시하는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충 등을 단순히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본적인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력 사용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적이 없는 이라크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 대표적이며, 시리아, 이란, 북한 등도 ‘악의 축’으로 묶어 같은 방식으로 다루려 했다. 미국 헌법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였던 정교 분리를 내팽개치고 ‘성경적 세계관’을 확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정통성은 민주적 절차에서 나온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지도 의심스럽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 나라를 이끌도록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들 혁명세력이 원하는 나라는 이렇다.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 없으며, 국가의 뜻을 해외에 관철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며, 학교에서 진화를 가르치지 말고 종교를 가르쳐야 하고, 선거는 형식적 치장물에 불고한 나라’ 말이다.
폴 크루그먼은 감세와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어, 이들 혁명세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지 설명한다. 우선, 감세는 90년대부터 공화당의 핵심 의제였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단순히 감세를 원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미국 조세체계의 분쇄를 목표로 했다. 이들은 제한된 승리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세력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세수 초과 환급을 명목으로 세금을 깎고, 세수 부족으로 전환됐을 때는 경기 부양책으로 세금을 깎고, 경기 부양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자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깎았다. 이라크 선제 공격론도 90년대초부터 폴 울포위츠, 딕 체니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강화돼 왔다. 따라서 그것은 9.11테러라는 당면한 상황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 혐의로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핵개발 프로그램(이후 ‘대량 살상 무기’라는 표현으로 확장하지만)을 이유로 갖다 붙였다. 나중에 이것조차도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끌어댔다. 감세나 이라크전뿐만 아니라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 보건정책,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모든 경우에 부시 행정부는 그다지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정책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온건주의자들을 안심하게 했다. 그리고 매번 온건주의자들은 (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히틀러에 대해 영국 수상 리처드 챔벌린이 구사했던 식의) 유화주의 전략을 따랐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통찰이 옳았다며 그의 말을 인용한다. “안정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혁명세력을 맞닥뜨렸을 때 당시 발생하는 것을 어지간해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세력을 저지하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말로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것이라고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정책, 시장친화적인 부유세의 하나인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반공 기독교이념에 사로잡힌 철저한 대북 대결 구도 전개(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주인처럼 떠받드는 미국으로부터 왕따당하는 얼간이들이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대통령과 소망교회 출신의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강부자/고소영 내각’,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원전 대규모 건설 계획을 밝히고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 등 대규모 토건사업을 펼치며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반환경정부, 공교육을 사교육화하고, 사교육시장을 극대화해서 어린 학생들을 더욱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에 내모는 교육정책, 미분양 물량 매입과 건설 물량 퍼주기로 ‘건설업자 복지’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기존의 복지 예산은 삭감하는 거꾸로 정책, 전 세계가 부동산 거품 붕괴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전매제한과 양도세 감면, 재건축 규제 완화 등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정부, 금융 재규제를 논의하는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로 금산분리 완화 추진, 공익 증진이 아니라 재벌 사업거리 확대를 위한 공기업 민영화 추진, 민주화 이후 진전돼온 천부인권적, 민주적 권리 및 제도 뒤집기 정책-군의문사위 해체, 국가인권위 조직 축소, 집단 소송제와 서울광장 봉쇄 등을 통한 집회결사의 자유 및 인터넷 명예훼손죄 도입 시도 등으로 표현의 자유 제한, 권위주의 정권식 방송 통제 및 낙하산 인사 파견, ‘건국 60년’ 표현을 통한 헌법에 규정된 임시정부 정통성 부인과 뉴라이트 등 친일우파 집단의 득세, 친일우파적 시각에서 역사 교과서 수정 시도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게 불과 이들이 집권한지 1년 반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한 마디로 합법적 권력을 배경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범죄를 끈질기게 저지르는 사악한 패악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당초 목표를 얼마나 노골적으로, 그러면서도 철저히 추구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사실 현 정부는 부시행정부와 같은 ‘우파 혁명세력’ 정도로 끝나는 정권이 아니다. 아예 시장원리를 깡그리 무시하며 기득권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정권이다. 현재 한국 국민 수준에서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저질 불량정부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여타 다른 상황도 미국에 비해 훨씬 더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거의 대다수가 민주당이나 무당파 성향으로 서민층 복지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우익 성향에 자신들의 복지만을 열렬히 옹호한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제대로 된 신문들이고 저질 언론인 폭스뉴스 등은 주류라고 보기 어렵지만, 한국에서는 거대 기득권 신문들이 가장 영향력 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현 정부의 힘을 등에 업고 방송에까지 진출하려 하고 있다. 부시행정부 당시 미국에는 민주당이라는 매우 오래된 강력한 야당이 있었으나, 지금 한국에는 존재감과 정체성이 희미한 민주당과 소수 정당밖에 없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고 본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보다 훨씬 더 엉터리여서 대중들이 그들의 진정한 속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조중동 등 주류 신문들의 거짓말이 들통 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반면 20, 30대 젊은 세대들을 주축으로 인터넷상의 집단지성을 통해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금의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세력들에서 희망을 보지도 않는다. 지금의 시대착오적 이념에 빠져 있는 엉터리 급진 기득권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서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분노할 뿐이다. 그리고 기득권 중심의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적용되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폴 크루그먼이 책에서 인용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부시 행정부 당시 CBS의 60분 진행자인 앤디 루니의 말이다. “단 하나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미국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이라고. 필자는 이 말에 조금 살을 덧붙이고자 한다. “단 하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한국 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할 역량이 있는 정치세력이 성장해 집권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 케네디언, 09.06.13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 정부를 과거 독재정권에 비유하며 강력히 비판한데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선거로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권을 어떻게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하느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 반박을 듣자마자 코웃음이 나왔다. 과거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숱하게 '독재정권'이나 '빨갱이 정권'이라고 공격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은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권이 아니었나. 더구나 지금까지 역사는 선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독재정권이나 독재에 준하는 정권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나치 히틀러도 사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했고, 페루의 일본계 후지모리 대통령도 합법적 선거를 통해 권위주의식 집권했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사실상 방송을 통제하고 기득권세력에 특혜를 주는 부패정권의 대명사가 됐다.
사실 필자는 2007년 대선 결과에 대해 “배가 고프다고 쓰레기통을 뒤진 격”이라고 통탄한 적이 있다. 자산과 소득 양극화에 부동산값 폭등, 비정규직 비율 55%, 청년 실업 200만, 출산율 바닥, 자살율과 근로시간, 산재사고 OECD 최고라는 대한민국의 엽기적인 현실을 생각할 때 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솔직히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된 형태로 말이다. 사실 현 정부는 아마추어도 이만저만한 아마추어가 아니며,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점에서 사기꾼 기질이 유전자에 각인된 정부라고 본다. 이들을 단순히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실용정부’나 중도 우파 정부라고 본다면 그것은 오해요, 착각이다.
이들은 과격한 ‘우파 기득권 혁명세력’이다. 물론 지금 같은 경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엉터리 저질 집단이기는 한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들과 지지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관철시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는 점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위 이후 자신들 세력을 결집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하고, 미네르바 등 네티즌 논객을 구속하고 용산참화의 희생자들에게 사과는커녕 물리력을 휘두르고, 서울광장까지 봉쇄하며 시민들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를 가로막는 태도를 보면서 이들은 정상적 판단력을 가진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대폭로(The Great Unraveling)'이라는 책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를 ‘혁명 세력(A Revolutionary Power)’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처음에 경제 문제에 대해 글을 쓰다가 점점 정치 문제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급진적인 정치 운동이 부상하고 점증하는 지배력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급진 우익이 백악관과 의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사법부와 미디어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게 된 현실에 대해 그는 매우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바로 이 책의 도입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닉슨 행정부 시절 냉혈적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박사학위 논문 ‘되찾은 세계(A World Restored)’에서 1930년대의 전체주의 정권들에 대한 유화적 대응책의 실패를 비판한다. 이때 그는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 치하의 정치 세력들을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1930년대의 전체주의 세력에도 같은 규정을 한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이 박사학위 논문을 읽다가 부시 행정부 또한 기존 체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혁명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오랫동안 확립된 미국의 정치 및 사회적 제도들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우리들 모두가 당연시하는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충 등을 단순히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본적인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력 사용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적이 없는 이라크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 대표적이며, 시리아, 이란, 북한 등도 ‘악의 축’으로 묶어 같은 방식으로 다루려 했다. 미국 헌법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였던 정교 분리를 내팽개치고 ‘성경적 세계관’을 확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정통성은 민주적 절차에서 나온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지도 의심스럽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 나라를 이끌도록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들 혁명세력이 원하는 나라는 이렇다.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 없으며, 국가의 뜻을 해외에 관철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며, 학교에서 진화를 가르치지 말고 종교를 가르쳐야 하고, 선거는 형식적 치장물에 불고한 나라’ 말이다.
폴 크루그먼은 감세와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어, 이들 혁명세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지 설명한다. 우선, 감세는 90년대부터 공화당의 핵심 의제였다. 이들 혁명 세력들은 단순히 감세를 원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미국 조세체계의 분쇄를 목표로 했다. 이들은 제한된 승리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세력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세수 초과 환급을 명목으로 세금을 깎고, 세수 부족으로 전환됐을 때는 경기 부양책으로 세금을 깎고, 경기 부양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자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깎았다. 이라크 선제 공격론도 90년대초부터 폴 울포위츠, 딕 체니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강화돼 왔다. 따라서 그것은 9.11테러라는 당면한 상황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 혐의로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핵개발 프로그램(이후 ‘대량 살상 무기’라는 표현으로 확장하지만)을 이유로 갖다 붙였다. 나중에 이것조차도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끌어댔다. 감세나 이라크전뿐만 아니라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 보건정책,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모든 경우에 부시 행정부는 그다지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정책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온건주의자들을 안심하게 했다. 그리고 매번 온건주의자들은 (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히틀러에 대해 영국 수상 리처드 챔벌린이 구사했던 식의) 유화주의 전략을 따랐다. 폴 크루그먼은 헨리 키신저의 통찰이 옳았다며 그의 말을 인용한다. “안정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혁명세력을 맞닥뜨렸을 때 당시 발생하는 것을 어지간해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세력을 저지하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말로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것이라고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부유층을 위한 감세정책, 시장친화적인 부유세의 하나인 종부세의 유명무실화, 반공 기독교이념에 사로잡힌 철저한 대북 대결 구도 전개(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주인처럼 떠받드는 미국으로부터 왕따당하는 얼간이들이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대통령과 소망교회 출신의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강부자/고소영 내각’,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원전 대규모 건설 계획을 밝히고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 등 대규모 토건사업을 펼치며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반환경정부, 공교육을 사교육화하고, 사교육시장을 극대화해서 어린 학생들을 더욱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에 내모는 교육정책, 미분양 물량 매입과 건설 물량 퍼주기로 ‘건설업자 복지’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기존의 복지 예산은 삭감하는 거꾸로 정책, 전 세계가 부동산 거품 붕괴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전매제한과 양도세 감면, 재건축 규제 완화 등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정부, 금융 재규제를 논의하는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로 금산분리 완화 추진, 공익 증진이 아니라 재벌 사업거리 확대를 위한 공기업 민영화 추진, 민주화 이후 진전돼온 천부인권적, 민주적 권리 및 제도 뒤집기 정책-군의문사위 해체, 국가인권위 조직 축소, 집단 소송제와 서울광장 봉쇄 등을 통한 집회결사의 자유 및 인터넷 명예훼손죄 도입 시도 등으로 표현의 자유 제한, 권위주의 정권식 방송 통제 및 낙하산 인사 파견, ‘건국 60년’ 표현을 통한 헌법에 규정된 임시정부 정통성 부인과 뉴라이트 등 친일우파 집단의 득세, 친일우파적 시각에서 역사 교과서 수정 시도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게 불과 이들이 집권한지 1년 반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한 마디로 합법적 권력을 배경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범죄를 끈질기게 저지르는 사악한 패악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당초 목표를 얼마나 노골적으로, 그러면서도 철저히 추구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사실 현 정부는 부시행정부와 같은 ‘우파 혁명세력’ 정도로 끝나는 정권이 아니다. 아예 시장원리를 깡그리 무시하며 기득권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정권이다. 현재 한국 국민 수준에서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저질 불량정부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여타 다른 상황도 미국에 비해 훨씬 더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거의 대다수가 민주당이나 무당파 성향으로 서민층 복지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우익 성향에 자신들의 복지만을 열렬히 옹호한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제대로 된 신문들이고 저질 언론인 폭스뉴스 등은 주류라고 보기 어렵지만, 한국에서는 거대 기득권 신문들이 가장 영향력 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현 정부의 힘을 등에 업고 방송에까지 진출하려 하고 있다. 부시행정부 당시 미국에는 민주당이라는 매우 오래된 강력한 야당이 있었으나, 지금 한국에는 존재감과 정체성이 희미한 민주당과 소수 정당밖에 없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고 본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보다 훨씬 더 엉터리여서 대중들이 그들의 진정한 속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조중동 등 주류 신문들의 거짓말이 들통 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반면 20, 30대 젊은 세대들을 주축으로 인터넷상의 집단지성을 통해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금의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세력들에서 희망을 보지도 않는다. 지금의 시대착오적 이념에 빠져 있는 엉터리 급진 기득권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서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분노할 뿐이다. 그리고 기득권 중심의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적용되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폴 크루그먼이 책에서 인용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부시 행정부 당시 CBS의 60분 진행자인 앤디 루니의 말이다. “단 하나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미국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이라고. 필자는 이 말에 조금 살을 덧붙이고자 한다. “단 하나 진정으로 좋은 뉴스는 한국 역사에서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는 것,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할 역량이 있는 정치세력이 성장해 집권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IGX]읽어볼만한 경제 브리핑
원문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695616
<드디어 시작했네요>, iGX, 09.06.16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에 살고 있으며 대학을 중퇴 후 현재 백수인 30대 초반의
대한민국의 별볼일 없는 젊은이 입니다.
요새 더워지는 날씨에 다들 잘 계시는지요.
뭐 저는 제 자신이 그렇게 까지 비참한(?) 인생이라고 생각진 않습니다만
어쨌건 외관 스펙상 제가 제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88만원 짜리네요 ㅋ.
따라서 앞으로 제가 쓰게 될 글들은 그냥 코웃음 치면서 읽고 넘어가셔도
무방하시겠습니다.
우선 아는건 개뿔도 없지만 대충 제가 생각하는 바를 좀 얘기해 볼까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잖아요ㅋ -_-; 읽고 틀렸다 싶으신 부분은 지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선 현재 주식 장세는 유동성 장세라고 하죠.
쉽게 말해서 일명 '돈빨'입니다.
고객 예탁금은 하루가 다르게 빠지고 있고,
그래도 아직 현재 남은 예탁금 수준은 작년 지수 2000천 고점과
많이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정작, 지수는 1400선에서 힘겹게 공방중입니다.
이는 곧, 지금은 주식에 들어갈때가 아니라는 뜻이죠.
기관은 겉으로는 사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루도 쉬지 않고
현물을 팔아대고 있고,
외국인이 주식을 사고 있다고는 하지만 ETF 포함한
외국인 포지션을 살펴보면 외국인 또한 주식을
줄기차게 갖다 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결국 대하락의 정점에서 점점 개미들만 남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외국인이 어제부터 대놓고 팔기 시작했네요. 연기금이 받쳤다고는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기관들 죄다 팔았습니다.
이제 대한 민국 주가는 신나게 가는(?) 일만 남았네요.
어디로 냐구요? 지하 벙커로 가야죠.
아마 거기엔 우리의 신 이메가님께서 우릴 기다리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언론이나 특히 증권사 브리핑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는지 진짜 나쁜 쉑히들
개미들 뼛골까지 빨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주식 투자를 해야 될 때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3분기되면 기업 실적이 좋아질꺼라면서.
이런 개...(죄송합니다 -_- 요새 애널리포트만 보면 욕부터 나와서요.)
주식은 선행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쉽게 말해서 주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고 칩시다.
이 컴퓨터가 '5년후에 삼성 주식이 5백만원이 될 것입니다.' 라고
정확히 예견했다면,
삼성 주식은 바로 다음 날 5백만원이 될 겁니다.
따라서 3분기 어닝 시즌에 어닝 서프라이즈가 어쩌고 저쩌고...
실적이 제 아무리 좋아진다고 해도 현재 주가에 이는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3분기에 제 아무리 실적이 좋게 나온들 주가가
폭발적으로 가긴 힘들다고 봅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죠.
그리고 진짜로 기관애들 욕나올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목표치 상향 조정해 놓은 리포트 속속 내놓고 주가떨어지면 저가매수기회가 어쩌네 저쩌네...
(그러면서 지들은 왜 파는건데? 아무리 지들이 관리하는 예탁금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대놓고 주가떨어질테니 사지 마세요. 이딴 소리는 못할망정, 사세요! 사세요!
더 갈 수 있습니다. 이딴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할 거 아닙니까. 차라리 입다물면 양심적이라는 소리라도 듣지.
진짜 겉다르고 속다른 쇼키들 입니다.)
꼴에 암것도 배운 것도 없이 별 학력도 없는 제 눈에도
왜 주가는 필연적으로 왕창 맛갈 수 밖에 없다고 보일까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3분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비스수지(-), 소득수지(-), 경상이전 수지(-), 수입...
죄다 적자를 내는 요인들만 득시글 한 상황에서 수출 감소 폭보다
수입 감소폭이 더 커서 현재 그나마 흑자를 내고 있는데
한국 은행 발표에따르면 선방하던 수출 감소폭이 앞으로
더 커질것이라고 합니다.
(뭐 당연한 얘기죠. 소비국이 죽었으니. 미국을 대체하는 소비국으로
중국이 거론되고있지만, 지금 현 상황에선 절대 중국이 우리나라 제품을
미국보다 더 많이 사주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수출이 호전될지, 악화될지는 두 번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답 나온거죠. 한국 생산자 물가지수가 마이너스인것도 쉽게 생각해서
아직도 우리 상황은 경제 상황상 과잉공급이거나 기업들이 물건 만들 생각을
안한다는 겁니다. 미국 소비자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기껏해야 69...
아직 멀었죠. 기저효과를 무시한채 발표되는 수많은 회복 지표에
속으면 안된다는게 제 같잖은 견해입니다. --;; )
게다가 환율과 더불어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인
WTI 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죠.
배럴당 75불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엊그제 70불. 두바이유도 오름세로 돌아선지 한참 되었습니다.
이제 딱 5불정도 남았네요.
그렇다고 지금 경기 하락을 전제로 지금 환투기
(혹은 투자 = 통화 리스크에 따른 분배 자산 투자를 꼭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만 지금은 환율을 가지고
자산을 운용하시는 것은 투기입니다. 왜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하실려고 미국 달러 사신 분들이 간혹 보이는데요.
지금 환율로 인한 재테크는 매우 위험합니다. 간단합니다. 달러가 미친 듯이 풀렸기 때문이죠.
예전처럼 우리나라 경기 하락 = 환율 상승의 공식이 백프로 적용되기가 힘든 상황이란 얘깁니다.
쉽게 말해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은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합니다. 미국 금리 올릴때 우리 금리 안올리면
안그래도 맛갈 경제 아마 일주일도 안되서 쭈~욱 뻗어버릴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합니다만,
그때되면 환율 상승에 대한 배팅은 미국이 달러를 더 많이 쪽 빨아들이드냐 우리 나라가 원화를 더 많이 쪽 빨아들이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가와 환율의 비대칭 공식이 성립 할 수도 성립 안 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환율도 돈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는데 왜 투자하는게 잘못된거냐?
굉장히 위험하단 얘기죠. 알 수 없는 싸움입니다. 돈은 원칙적으로 리스크를 헷징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볼 때
대규모 투기 자본이 아니고서야 지금 개미가 환율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잃어도 상관없는' 돈이 아니라면
위험한 투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몰빵을 좋아하시죠. 한 순간에 갑니다.
당연, 주가는 환율관 상관없이 맛이 가고 있겠군요. 만약 환투기에 돈이 묶이지 않으셨다면 주가가 바닥을 칠 때 들어가신다면
더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으실 겁니다. 지금 환투기하지 마세요. 설혹 환투기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 옆에 보여도
눈길조차 주지마세요. 운빨 입니다.
나중에 원자재 펀드(원유 곡물, 특히 옥수수 중심), 주식 투자해서 수익률 역전해 드리면 되는겁니다.
덧붙여, 현재 한국 경제가 펀더멘털 기조가 튼튼하고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동네 뻥튀기 아저씨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초고단수 '뻥이요!' 기사들에 관해서...
세계 무역의 현주소를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는
건화물 운임지수인 BDI 지수가 요새 상승하고 있다고들 하죠.
하나 이는 쉽게 말해서 중국이 그동안 원자재를 '사재기'하느라 오른겁니다.
(BDI 원자재, 중간재를 싣고 나르는 선박들 지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증가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무역이 살아나서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중국이 원자재 사재기를 끝내자 요 며칠새
이 지수는 고꾸라지고 있습니다.
완성품을 수출하는 선진국형 지수를 뜻하는 HR 지수가 BDI 지수와
더불어 동반상승하지 않았음이 그 근거입니다.
선진국은 죽어나가고 있단 얘기죠.
게다가, 전 세계가 굶어 죽겠는 마당에서 국가들이 지네들
보호무역을 강화했으면 강화했지
(미국만해도 며칠 전 바이 아메리카 조항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전 세계 무역이 살아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회복세가 감지되고
있다는 장밋빛 뉴스들은 사실관 맞지 않다는 거죠.
제가 한참 부족해서 잘못 판단하는 것일수 있습니다만,
여튼 저는 그렇게 봅니다.
게다가 보너스,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재정적자가 심화되어
세출을 줄인다는 뉴스가 오늘자로 떴습니다.
쉽게 말해서 경제 부양을 위해 장전해둔 총알이 이제 다 떨어졌다는 거죠.
이는 곧 세입을 늘이겠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서민들한테 불리한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더 걷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다고 합니다.
윤 재경부 장관께서 재정확장 기조를 계속하시겠다고 하시던데 도대체 어디서 돈이나서
이런 정책이 계속될지 많이 우려됩니다.
게다가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릴것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분명 한은총재까지 선진국(미국이겠죠)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금리인상을 따라가겠다고 말씀하셨던게 기억나네요.
현재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간다면 백프로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부동산 버블 꺼지는건 한 순간이겠죠.
단타로 현재 시중에 도는 자금이 서로 재건축(주식으로 치자면 일명 초단타)
쪽에서 폭탄돌리기를 하는 마당에
오늘 재건축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기사 또한 떴습니다.
진짜 지금은 위험한 꼭지라는 소립니다.
(1929년도 미국 대공황때도 진짜 대공황이 오기전에 반짝 상승이 있었다가
롤러코스터같은 직하강이 있었다는걸 잊으시면 안되겠습니다.
그 때도 정확히 주가가 고점대비 딱 절반을 회복하고 미친듯이 고꾸라 졌습니다. 절반에서 다시 6/5이 빠졌죠.
고점찍고- 반 회복하고 - 다시 1/6 로 급하강. 그 때 절반 회복했을때의 분위기는 현재 지금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고 합니다.
경제다 다시 살아난다, 경기 저점을 찍었다, 펀더먼털의 회복, 이 따구 얘기가 전 신문을 도배했다 이거죠. 그러고 정확하게
다우 지수는 300포인트에서 44포인트까지 별 반등도 주지 않고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제조업이 살아나지 않았는데
금융 버블이나 돈 발르기로 경제는 절대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지금이 딱 돈 발르고 경제 살아난다고 다들 눈 반짝이며
기다리는 상황이죠. 지금 전 세계 , 특히 우리 나라는 정확히 벼랑을 향해 발 하나를 내딛었습니다.
그게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믿어 마지 않으면서 말이죠.)
국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기준 금리마저 올라가기 시작하면 경기,
특히 주가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은 진짜 불을 보듯 뻔한 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제조업 지수때문에 미국 다우지수는 급락을 시작했습니다. 이게 재앙의 전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한건 "이제 곧 시작한다." 입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금융가지고 잘먹고 살았으면서
어떻게 제조업 지수를 기대한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애널들은 제조업 지수 향상에 기대를
걸었다고 하죠. 외계인이나 국내 기관이나 개찐 도찐인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더 간다고 그래도 수많은 악재에
뒷머리채를 휘어잡힌채 뛰는 주가가 가면 얼마나 더 가겠습니까.
다시 주가가 재차 커다란 재하락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미국 오바마 정권의
미국 50주 고속도로 대 건설과 궤적을 같이하는
4대강(갠적으로는 결국 대운하가 될 것으로 봅니다만)으로 대표되는,
금융허브, U-city 등등의 건설 산업이 경기 회복을 주도하면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성공 가부는 원자재, 특히 석유 가격과 앞서 말씀드린 환율이 관건이 되겠네요.)
이 때가 진짜 주식을 살 때죠. 만약, 이때 이메가 정부가 복지 예산을 줄이고
대기업 중심(쉽게 말해 부자만세 정책)의 경제 주도 전략을 세웠다면
향후 5년~10년정도 안에 부자 대열에 끼지 못하면 삶이 비참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대통령때 현재 정권에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사뭇 궁금하네요.
하지만, 진짜 경제가 바닥을 쳤을때 현 정권이 복지 정책에 힘을 쏟고 제조업과
우리 나라의 석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짜 말로만 녹색성장이 아닌
진짜 녹색 성장과 중산층 형성, 소득 재분배에 기여한 튼실한 경제 성장을 이뤄낸다면
아마 집권말 국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져 있을 겁니다.
다만...4대강 관련 편성된 예산을 보면... 뭐라 더 얘기하기가 힘드네요.
오늘자 신문에 세수 증대를 위해 간접세(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세금냄.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 불리한 세금)를
늘리고 복지 예산을 줄일꺼라는 기사를 보고, 또 녹색성장을 외치지만 건설업에 승부를 띄우는 듯한 현 정권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민주주의의 퇴보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 경제 말살의 시대가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부자가 많으면 투자만 늡니다. 부자들이 절대적인 소비만 많지, 그들의 소득대비 소비는 절대 많지 않습니다.
이는 곧 공급 과잉으로 이어지고 현 정권 방향대로 다시 경기가 회복되어 경기 호황을 맞게 된다면
그 후의 대공황의 규모는 뭐...어떻게 표현이 안되네요. 지금이 대공황의 전초전인데...
요는,
지금 진짜 주식 들어갈 생각이 있으시면 접으시고,
들어가셨으면 빨리 발을 손절하고 나오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투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스스로가 직접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만큼
제 같잖은 의견은 참고만 하십쇼.
서른살이 넘도록 인생 88만원짜리 대학도 못나온 백수가 뭘 알겠습니까.
계속해서...
기업 실적에 관해 더 얘기해 보자면,
증권사들의 3분기 기업 실적이 좋아질 거라는 전망(?, 도대체 뭘 가지고 전망한다는건지.)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경기에 일반 서민보다 더욱 민감한
기업들은 이미 더 빨리 알고 있습니다.
일례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회복할 기미는 커녕 그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이 사내에 쌓아두는 현금 사내유보율 또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죠.
대한 민국에서 부채비율 좀 적으면서 우량한 재무구조를 가지는 기업들
재무제표 몇 개만 들여다봐도 금방 답 나옵니다.
쉽게 말해서 진짜 경기 침체 때 살아 남아보겠다는 겁니다.
바닥 찍고 반등시까지만 살아 남으면 새로 열릴 신세계의 달콤한 과실은 죄다 지들꺼라 이거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상 당연한 얘기입니다.
(갠적으로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 도덕성을 묻는건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건
국회의원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을 조져야죠. 하지만 친일파 미청산, 혼맥으로 얽혀진 정경 유착이
어느 나라보다 견고한 모국가 - 어디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요샌 툭만하면 잡혀가니까 --; - 에서
이게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 힘없는 개미들이 할 수 있는 건 진짜 엿같지만 국가가 잘해주면 정말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네 큰손들 따라서 부를 열심히 축적하여 그들의 파이를 나눠먹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같이 힘을 길러서 씨부려야지, 힘도 없이 씨부리면 또 무시당합니다. 참, 서글픈 얘기죠. 젠장.)
중간에 글이 또 멋대로 흘렀습니다만,
경기가 바닥을 찍었다는 말도 안되는 기사들...
이런 웃긴 글들을 보면서 답답했던 제 마음을 달래보고자 자기 기분에 취해 글쓰면서 좀 흥분한
감이 없잖아 있네요. 원래는 이런 글 길게 남길 의도가 아녔는데 말이죠. --;;
여튼, 결국 우리 경제가 바닥을 찍고 한반도 전면전이란 최악수만 없이
마거릿 대처와 레이거 노믹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경제 살리기가 시작되면...
(쉽게 말해서 삽푸기 운동으로 시작되는 경제 재건입니다.)
그 땐 진짜 열심히 돈 벌어야 됩니다.
일도 열심히하고, 투기도(응?) 열심히 해서....제기랄. ㅠㅠ
(정말 좋은 세상 좀 왔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왜 우리는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안됩니까.)
새 시대의 대한민국은 국민간 빈부격차가 넘사벽을 이루는
세상이 될지 중산층이 행복한 새 시대가 될지 역시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솔직히 신자유주의 체제라면 생각만해도 답답하네요.)
저같은 서민한테는 진짜 먹고 사는게 정말 심각한 문젭니다. -_-
여튼 요는, 지금까지 같잖은 제 개똥 철학에서 비롯한 잡소리는 다 집어치우고.
지금 경제 좀 살아난다는 낚시(?)성 기사에 낚이지 말자. 입니다.
다들 성공하는 인생, 즐거운 투자, 행복한 부자되시길 바랍니다.
3~4년 후에 저도 부자되서 다시 글 올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때는 진짜 천박한 졸부들 고기 파이 좀 뺏어보렵니다.
저는 뭐 스펙이나 태생이나, 여러보모 기본이 천민이라 돈 벌어도
별반 다르지 않을려나요. ㅋ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행복하십쇼!
<드디어 시작했네요>, iGX, 09.06.16
안녕하세요. 현재 서울에 살고 있으며 대학을 중퇴 후 현재 백수인 30대 초반의
대한민국의 별볼일 없는 젊은이 입니다.
요새 더워지는 날씨에 다들 잘 계시는지요.
뭐 저는 제 자신이 그렇게 까지 비참한(?) 인생이라고 생각진 않습니다만
어쨌건 외관 스펙상 제가 제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88만원 짜리네요 ㅋ.
따라서 앞으로 제가 쓰게 될 글들은 그냥 코웃음 치면서 읽고 넘어가셔도
무방하시겠습니다.
우선 아는건 개뿔도 없지만 대충 제가 생각하는 바를 좀 얘기해 볼까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잖아요ㅋ -_-; 읽고 틀렸다 싶으신 부분은 지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선 현재 주식 장세는 유동성 장세라고 하죠.
쉽게 말해서 일명 '돈빨'입니다.
고객 예탁금은 하루가 다르게 빠지고 있고,
그래도 아직 현재 남은 예탁금 수준은 작년 지수 2000천 고점과
많이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정작, 지수는 1400선에서 힘겹게 공방중입니다.
이는 곧, 지금은 주식에 들어갈때가 아니라는 뜻이죠.
기관은 겉으로는 사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루도 쉬지 않고
현물을 팔아대고 있고,
외국인이 주식을 사고 있다고는 하지만 ETF 포함한
외국인 포지션을 살펴보면 외국인 또한 주식을
줄기차게 갖다 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결국 대하락의 정점에서 점점 개미들만 남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외국인이 어제부터 대놓고 팔기 시작했네요. 연기금이 받쳤다고는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기관들 죄다 팔았습니다.
이제 대한 민국 주가는 신나게 가는(?) 일만 남았네요.
어디로 냐구요? 지하 벙커로 가야죠.
아마 거기엔 우리의 신 이메가님께서 우릴 기다리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언론이나 특히 증권사 브리핑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는지 진짜 나쁜 쉑히들
개미들 뼛골까지 빨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주식 투자를 해야 될 때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3분기되면 기업 실적이 좋아질꺼라면서.
이런 개...(죄송합니다 -_- 요새 애널리포트만 보면 욕부터 나와서요.)
주식은 선행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쉽게 말해서 주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고 칩시다.
이 컴퓨터가 '5년후에 삼성 주식이 5백만원이 될 것입니다.' 라고
정확히 예견했다면,
삼성 주식은 바로 다음 날 5백만원이 될 겁니다.
따라서 3분기 어닝 시즌에 어닝 서프라이즈가 어쩌고 저쩌고...
실적이 제 아무리 좋아진다고 해도 현재 주가에 이는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3분기에 제 아무리 실적이 좋게 나온들 주가가
폭발적으로 가긴 힘들다고 봅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죠.
그리고 진짜로 기관애들 욕나올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목표치 상향 조정해 놓은 리포트 속속 내놓고 주가떨어지면 저가매수기회가 어쩌네 저쩌네...
(그러면서 지들은 왜 파는건데? 아무리 지들이 관리하는 예탁금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대놓고 주가떨어질테니 사지 마세요. 이딴 소리는 못할망정, 사세요! 사세요!
더 갈 수 있습니다. 이딴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할 거 아닙니까. 차라리 입다물면 양심적이라는 소리라도 듣지.
진짜 겉다르고 속다른 쇼키들 입니다.)
꼴에 암것도 배운 것도 없이 별 학력도 없는 제 눈에도
왜 주가는 필연적으로 왕창 맛갈 수 밖에 없다고 보일까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3분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비스수지(-), 소득수지(-), 경상이전 수지(-), 수입...
죄다 적자를 내는 요인들만 득시글 한 상황에서 수출 감소 폭보다
수입 감소폭이 더 커서 현재 그나마 흑자를 내고 있는데
한국 은행 발표에따르면 선방하던 수출 감소폭이 앞으로
더 커질것이라고 합니다.
(뭐 당연한 얘기죠. 소비국이 죽었으니. 미국을 대체하는 소비국으로
중국이 거론되고있지만, 지금 현 상황에선 절대 중국이 우리나라 제품을
미국보다 더 많이 사주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수출이 호전될지, 악화될지는 두 번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답 나온거죠. 한국 생산자 물가지수가 마이너스인것도 쉽게 생각해서
아직도 우리 상황은 경제 상황상 과잉공급이거나 기업들이 물건 만들 생각을
안한다는 겁니다. 미국 소비자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기껏해야 69...
아직 멀었죠. 기저효과를 무시한채 발표되는 수많은 회복 지표에
속으면 안된다는게 제 같잖은 견해입니다. --;; )
게다가 환율과 더불어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인
WTI 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죠.
배럴당 75불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엊그제 70불. 두바이유도 오름세로 돌아선지 한참 되었습니다.
이제 딱 5불정도 남았네요.
그렇다고 지금 경기 하락을 전제로 지금 환투기
(혹은 투자 = 통화 리스크에 따른 분배 자산 투자를 꼭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만 지금은 환율을 가지고
자산을 운용하시는 것은 투기입니다. 왜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하실려고 미국 달러 사신 분들이 간혹 보이는데요.
지금 환율로 인한 재테크는 매우 위험합니다. 간단합니다. 달러가 미친 듯이 풀렸기 때문이죠.
예전처럼 우리나라 경기 하락 = 환율 상승의 공식이 백프로 적용되기가 힘든 상황이란 얘깁니다.
쉽게 말해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은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합니다. 미국 금리 올릴때 우리 금리 안올리면
안그래도 맛갈 경제 아마 일주일도 안되서 쭈~욱 뻗어버릴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합니다만,
그때되면 환율 상승에 대한 배팅은 미국이 달러를 더 많이 쪽 빨아들이드냐 우리 나라가 원화를 더 많이 쪽 빨아들이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가와 환율의 비대칭 공식이 성립 할 수도 성립 안 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환율도 돈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는데 왜 투자하는게 잘못된거냐?
굉장히 위험하단 얘기죠. 알 수 없는 싸움입니다. 돈은 원칙적으로 리스크를 헷징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볼 때
대규모 투기 자본이 아니고서야 지금 개미가 환율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잃어도 상관없는' 돈이 아니라면
위험한 투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몰빵을 좋아하시죠. 한 순간에 갑니다.
당연, 주가는 환율관 상관없이 맛이 가고 있겠군요. 만약 환투기에 돈이 묶이지 않으셨다면 주가가 바닥을 칠 때 들어가신다면
더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으실 겁니다. 지금 환투기하지 마세요. 설혹 환투기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 옆에 보여도
눈길조차 주지마세요. 운빨 입니다.
나중에 원자재 펀드(원유 곡물, 특히 옥수수 중심), 주식 투자해서 수익률 역전해 드리면 되는겁니다.
덧붙여, 현재 한국 경제가 펀더멘털 기조가 튼튼하고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동네 뻥튀기 아저씨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초고단수 '뻥이요!' 기사들에 관해서...
세계 무역의 현주소를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는
건화물 운임지수인 BDI 지수가 요새 상승하고 있다고들 하죠.
하나 이는 쉽게 말해서 중국이 그동안 원자재를 '사재기'하느라 오른겁니다.
(BDI 원자재, 중간재를 싣고 나르는 선박들 지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증가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무역이 살아나서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중국이 원자재 사재기를 끝내자 요 며칠새
이 지수는 고꾸라지고 있습니다.
완성품을 수출하는 선진국형 지수를 뜻하는 HR 지수가 BDI 지수와
더불어 동반상승하지 않았음이 그 근거입니다.
선진국은 죽어나가고 있단 얘기죠.
게다가, 전 세계가 굶어 죽겠는 마당에서 국가들이 지네들
보호무역을 강화했으면 강화했지
(미국만해도 며칠 전 바이 아메리카 조항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전 세계 무역이 살아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회복세가 감지되고
있다는 장밋빛 뉴스들은 사실관 맞지 않다는 거죠.
제가 한참 부족해서 잘못 판단하는 것일수 있습니다만,
여튼 저는 그렇게 봅니다.
게다가 보너스,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재정적자가 심화되어
세출을 줄인다는 뉴스가 오늘자로 떴습니다.
쉽게 말해서 경제 부양을 위해 장전해둔 총알이 이제 다 떨어졌다는 거죠.
이는 곧 세입을 늘이겠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서민들한테 불리한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더 걷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다고 합니다.
윤 재경부 장관께서 재정확장 기조를 계속하시겠다고 하시던데 도대체 어디서 돈이나서
이런 정책이 계속될지 많이 우려됩니다.
게다가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릴것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분명 한은총재까지 선진국(미국이겠죠)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금리인상을 따라가겠다고 말씀하셨던게 기억나네요.
현재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간다면 백프로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부동산 버블 꺼지는건 한 순간이겠죠.
단타로 현재 시중에 도는 자금이 서로 재건축(주식으로 치자면 일명 초단타)
쪽에서 폭탄돌리기를 하는 마당에
오늘 재건축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기사 또한 떴습니다.
진짜 지금은 위험한 꼭지라는 소립니다.
(1929년도 미국 대공황때도 진짜 대공황이 오기전에 반짝 상승이 있었다가
롤러코스터같은 직하강이 있었다는걸 잊으시면 안되겠습니다.
그 때도 정확히 주가가 고점대비 딱 절반을 회복하고 미친듯이 고꾸라 졌습니다. 절반에서 다시 6/5이 빠졌죠.
고점찍고- 반 회복하고 - 다시 1/6 로 급하강. 그 때 절반 회복했을때의 분위기는 현재 지금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고 합니다.
경제다 다시 살아난다, 경기 저점을 찍었다, 펀더먼털의 회복, 이 따구 얘기가 전 신문을 도배했다 이거죠. 그러고 정확하게
다우 지수는 300포인트에서 44포인트까지 별 반등도 주지 않고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제조업이 살아나지 않았는데
금융 버블이나 돈 발르기로 경제는 절대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지금이 딱 돈 발르고 경제 살아난다고 다들 눈 반짝이며
기다리는 상황이죠. 지금 전 세계 , 특히 우리 나라는 정확히 벼랑을 향해 발 하나를 내딛었습니다.
그게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믿어 마지 않으면서 말이죠.)
국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기준 금리마저 올라가기 시작하면 경기,
특히 주가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은 진짜 불을 보듯 뻔한 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제조업 지수때문에 미국 다우지수는 급락을 시작했습니다. 이게 재앙의 전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한건 "이제 곧 시작한다." 입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금융가지고 잘먹고 살았으면서
어떻게 제조업 지수를 기대한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애널들은 제조업 지수 향상에 기대를
걸었다고 하죠. 외계인이나 국내 기관이나 개찐 도찐인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더 간다고 그래도 수많은 악재에
뒷머리채를 휘어잡힌채 뛰는 주가가 가면 얼마나 더 가겠습니까.
다시 주가가 재차 커다란 재하락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미국 오바마 정권의
미국 50주 고속도로 대 건설과 궤적을 같이하는
4대강(갠적으로는 결국 대운하가 될 것으로 봅니다만)으로 대표되는,
금융허브, U-city 등등의 건설 산업이 경기 회복을 주도하면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성공 가부는 원자재, 특히 석유 가격과 앞서 말씀드린 환율이 관건이 되겠네요.)
이 때가 진짜 주식을 살 때죠. 만약, 이때 이메가 정부가 복지 예산을 줄이고
대기업 중심(쉽게 말해 부자만세 정책)의 경제 주도 전략을 세웠다면
향후 5년~10년정도 안에 부자 대열에 끼지 못하면 삶이 비참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대통령때 현재 정권에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사뭇 궁금하네요.
하지만, 진짜 경제가 바닥을 쳤을때 현 정권이 복지 정책에 힘을 쏟고 제조업과
우리 나라의 석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짜 말로만 녹색성장이 아닌
진짜 녹색 성장과 중산층 형성, 소득 재분배에 기여한 튼실한 경제 성장을 이뤄낸다면
아마 집권말 국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져 있을 겁니다.
다만...4대강 관련 편성된 예산을 보면... 뭐라 더 얘기하기가 힘드네요.
오늘자 신문에 세수 증대를 위해 간접세(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세금냄.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 불리한 세금)를
늘리고 복지 예산을 줄일꺼라는 기사를 보고, 또 녹색성장을 외치지만 건설업에 승부를 띄우는 듯한 현 정권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민주주의의 퇴보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 경제 말살의 시대가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듭니다.
부자가 많으면 투자만 늡니다. 부자들이 절대적인 소비만 많지, 그들의 소득대비 소비는 절대 많지 않습니다.
이는 곧 공급 과잉으로 이어지고 현 정권 방향대로 다시 경기가 회복되어 경기 호황을 맞게 된다면
그 후의 대공황의 규모는 뭐...어떻게 표현이 안되네요. 지금이 대공황의 전초전인데...
요는,
지금 진짜 주식 들어갈 생각이 있으시면 접으시고,
들어가셨으면 빨리 발을 손절하고 나오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투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스스로가 직접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만큼
제 같잖은 의견은 참고만 하십쇼.
서른살이 넘도록 인생 88만원짜리 대학도 못나온 백수가 뭘 알겠습니까.
계속해서...
기업 실적에 관해 더 얘기해 보자면,
증권사들의 3분기 기업 실적이 좋아질 거라는 전망(?, 도대체 뭘 가지고 전망한다는건지.)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경기에 일반 서민보다 더욱 민감한
기업들은 이미 더 빨리 알고 있습니다.
일례로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회복할 기미는 커녕 그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이 사내에 쌓아두는 현금 사내유보율 또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죠.
대한 민국에서 부채비율 좀 적으면서 우량한 재무구조를 가지는 기업들
재무제표 몇 개만 들여다봐도 금방 답 나옵니다.
쉽게 말해서 진짜 경기 침체 때 살아 남아보겠다는 겁니다.
바닥 찍고 반등시까지만 살아 남으면 새로 열릴 신세계의 달콤한 과실은 죄다 지들꺼라 이거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상 당연한 얘기입니다.
(갠적으로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 도덕성을 묻는건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건
국회의원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을 조져야죠. 하지만 친일파 미청산, 혼맥으로 얽혀진 정경 유착이
어느 나라보다 견고한 모국가 - 어디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요샌 툭만하면 잡혀가니까 --; - 에서
이게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 힘없는 개미들이 할 수 있는 건 진짜 엿같지만 국가가 잘해주면 정말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네 큰손들 따라서 부를 열심히 축적하여 그들의 파이를 나눠먹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같이 힘을 길러서 씨부려야지, 힘도 없이 씨부리면 또 무시당합니다. 참, 서글픈 얘기죠. 젠장.)
중간에 글이 또 멋대로 흘렀습니다만,
경기가 바닥을 찍었다는 말도 안되는 기사들...
이런 웃긴 글들을 보면서 답답했던 제 마음을 달래보고자 자기 기분에 취해 글쓰면서 좀 흥분한
감이 없잖아 있네요. 원래는 이런 글 길게 남길 의도가 아녔는데 말이죠. --;;
여튼, 결국 우리 경제가 바닥을 찍고 한반도 전면전이란 최악수만 없이
마거릿 대처와 레이거 노믹스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경제 살리기가 시작되면...
(쉽게 말해서 삽푸기 운동으로 시작되는 경제 재건입니다.)
그 땐 진짜 열심히 돈 벌어야 됩니다.
일도 열심히하고, 투기도(응?) 열심히 해서....제기랄. ㅠㅠ
(정말 좋은 세상 좀 왔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왜 우리는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안됩니까.)
새 시대의 대한민국은 국민간 빈부격차가 넘사벽을 이루는
세상이 될지 중산층이 행복한 새 시대가 될지 역시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솔직히 신자유주의 체제라면 생각만해도 답답하네요.)
저같은 서민한테는 진짜 먹고 사는게 정말 심각한 문젭니다. -_-
여튼 요는, 지금까지 같잖은 제 개똥 철학에서 비롯한 잡소리는 다 집어치우고.
지금 경제 좀 살아난다는 낚시(?)성 기사에 낚이지 말자. 입니다.
다들 성공하는 인생, 즐거운 투자, 행복한 부자되시길 바랍니다.
3~4년 후에 저도 부자되서 다시 글 올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때는 진짜 천박한 졸부들 고기 파이 좀 뺏어보렵니다.
저는 뭐 스펙이나 태생이나, 여러보모 기본이 천민이라 돈 벌어도
별반 다르지 않을려나요. ㅋ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행복하십쇼!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미술로 보는 20세기>중 '사르트르와 자코메티'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 또는 인간의 의식은 '무(無)'이다. '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인간 의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 존재 방식의 특수성을 가리키기 위한 것이다. 의식은 사물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은 대상으로 파악되는 순간, 의식이 아니다. 경험과 판단의 주체이지 객체가 아닌 까닭이다. 반면에 사르트르에게 '존재'라는 말은 의식 주체로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물을 가리킨다. 대상 일반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다시 전자를 대자(對自), 후자를 즉자(卽自)라고 불렀다. 인간은 사과나 개, 건물 등의 사물처럼 경험의 대상으로 파악될 수 없다. 사과나 개, 건물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존재, 그것 자체로서 충족된 존재다. 인간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늘 결핍돼 있다는 뜻이다. 의식은 늘 무언가를 바란다. 인간은 이렇듯 결핍돼 있으면서 충족된 존재를 경험하고 지향한다. 나아가 신이 되기를 꿈꾼다. 신은 대자이면서 동시에 즉자다. 세계의 모든 존재가 대자와 즉자로 구별될 때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양자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요청한다. 그러므로 완전자(신)는 의식이며서 동시에 대상이어야 한다. 인간은 그 지점을 꿈꾼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비록 의식이 무언가를 늘 지향하지만 결코 완전한 만족을 얻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곧 의식이면서 동시에 대상인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먹고 싶은 저 사과는 맛있는 사과일지언정 그 자체가 동시에 나의 의식일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은 다시 '무'가 된다.
이러한 인간의 절망적인 위치를 자코메티는 <장 주네의 초상>에서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장 주네는 사르트르 못지 않게 자코메티와 가까웠던 실존주의 문인이다. 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자코메티는 모델의 눈동자 부근을 흐리게 처리해 마치 안구가 사라진 듯 묘사하는 한편 대머리를 강조해 해골의 인상을 강하게 살렸다. 앞서 소녀를 그리다가 그의 응시에서 실존을 발견했던 자코메티의 경험을 상기한다면, 모델을 포함해 모든 것을 동일한 색상으로 삭막하게 처리하고 인물의 눈동자만을 비운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응시'는 이 작품 전체의 주제다. 부러 육신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음으로써 '의식이면서 동시에 대상'일 수 없는 '시선=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표현의 대상이 아닌, 오히려 지금 관자(觀者)를 '실제로' 쳐다보는 살아있는 시선을 그리려 한 것이다. 인간의 육체 자체는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고 의식은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이 '육체의 사물성'을 고도로 강조해 역으로 '산의식'을 드러내 보이려 한 것이라는 역설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렇듯 의식을 주제로 했음에도 의식이 그려지지 않은 것은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유일하게 그 근거를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의식만 제외하고 세계의 모든 것이 다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은, 의식인 인간에게는 '너는 사실상 존재의 근거가 없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자코메티가 자기 동생을 모델로 제작한 <디에고>역시 '무'로서의 인간을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것들과 달리 가슴 부분의 양괴감이 무척 강해 '존제'의 느낌 또한 적지 않다. '무'와 '존재'가 중첩돼 있는 것이다. 가슴 부분의 물량감은 가늘고 긴 입상들의 두터운 받침대에서 연장돼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입상의 두툼한 받침대는 자코메티의 조각을 받쳐주는 기능과 함께 즉자 곧 사물을 뜻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대지 혹은 세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연상 외에 한 가지 연상을 더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곧 '타인'의 존재다.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존재를 나타내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은 '무'이면서 운명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물 즉 즉자로 본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의 의식만이 대자이다. 대자가 다른 대자를 즉자로 보는 것은 모순이다. 어떤 의식이든 스스로가 사물로 취급되는 것을 용납할 리가 없다. 따라서 서로를 사물로 취급하는 인간은 상호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나의 의식은 다른 사람의 의식을 대상으로만 파악한다. 나에게는 나의 의식만이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의 순환은 끝이 없다. 이것은 인간 관계에 대한 초기 사르트르의 비관저 설명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실루엣의 인간은 관자인 우리에게 위협감을 주지 않지만, 이렇듯 가슴이 두터운 인간이 우리에게 위협감을 주는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이 사람을 지금 즉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모델과 우리 사이엑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이 모델도 우리를 하나의 사물로 볼 것이다. <디에고>는 종국적으로 이런 존재와 무의 긴장 속에 있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스스로 아무 근거도 없는, 하나의 우연에 불과한 인간들이 서로를 사물로 보면서 영원한 갈등을 일으킨다. <디에고>는 한마디로 영원한 고독과 부조리로서의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갈등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서로 누가 나을 것이 없는 동질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 이주헌,<미술로 보는 20세기>中
이러한 인간의 절망적인 위치를 자코메티는 <장 주네의 초상>에서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장 주네는 사르트르 못지 않게 자코메티와 가까웠던 실존주의 문인이다. 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자코메티는 모델의 눈동자 부근을 흐리게 처리해 마치 안구가 사라진 듯 묘사하는 한편 대머리를 강조해 해골의 인상을 강하게 살렸다. 앞서 소녀를 그리다가 그의 응시에서 실존을 발견했던 자코메티의 경험을 상기한다면, 모델을 포함해 모든 것을 동일한 색상으로 삭막하게 처리하고 인물의 눈동자만을 비운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응시'는 이 작품 전체의 주제다. 부러 육신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음으로써 '의식이면서 동시에 대상'일 수 없는 '시선=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표현의 대상이 아닌, 오히려 지금 관자(觀者)를 '실제로' 쳐다보는 살아있는 시선을 그리려 한 것이다. 인간의 육체 자체는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고 의식은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이 '육체의 사물성'을 고도로 강조해 역으로 '산의식'을 드러내 보이려 한 것이라는 역설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렇듯 의식을 주제로 했음에도 의식이 그려지지 않은 것은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유일하게 그 근거를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의식만 제외하고 세계의 모든 것이 다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은, 의식인 인간에게는 '너는 사실상 존재의 근거가 없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자코메티가 자기 동생을 모델로 제작한 <디에고>역시 '무'로서의 인간을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것들과 달리 가슴 부분의 양괴감이 무척 강해 '존제'의 느낌 또한 적지 않다. '무'와 '존재'가 중첩돼 있는 것이다. 가슴 부분의 물량감은 가늘고 긴 입상들의 두터운 받침대에서 연장돼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입상의 두툼한 받침대는 자코메티의 조각을 받쳐주는 기능과 함께 즉자 곧 사물을 뜻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대지 혹은 세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연상 외에 한 가지 연상을 더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곧 '타인'의 존재다.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존재를 나타내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은 '무'이면서 운명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물 즉 즉자로 본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의 의식만이 대자이다. 대자가 다른 대자를 즉자로 보는 것은 모순이다. 어떤 의식이든 스스로가 사물로 취급되는 것을 용납할 리가 없다. 따라서 서로를 사물로 취급하는 인간은 상호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나의 의식은 다른 사람의 의식을 대상으로만 파악한다. 나에게는 나의 의식만이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의 순환은 끝이 없다. 이것은 인간 관계에 대한 초기 사르트르의 비관저 설명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실루엣의 인간은 관자인 우리에게 위협감을 주지 않지만, 이렇듯 가슴이 두터운 인간이 우리에게 위협감을 주는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이 사람을 지금 즉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모델과 우리 사이엑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이 모델도 우리를 하나의 사물로 볼 것이다. <디에고>는 종국적으로 이런 존재와 무의 긴장 속에 있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스스로 아무 근거도 없는, 하나의 우연에 불과한 인간들이 서로를 사물로 보면서 영원한 갈등을 일으킨다. <디에고>는 한마디로 영원한 고독과 부조리로서의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갈등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서로 누가 나을 것이 없는 동질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 이주헌,<미술로 보는 20세기>中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그래픽 디자이너-네빌 브로디
neville brody는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라퍼이다. 처음에는 회화를 공부했으나 1976년부터 3년간 런던 인쇄 대학(London college of printing)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졸업 후 몇 개의 음반 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그의 세계를 펼치기 시작하였다.그 후 그는 1980,90년대 혁신적인 레이아웃,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독창적인 발상과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으로 주목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네빌 브로디는 디자인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한편 담배, 주류 등 그가 생각하는 도덕적 관념에서 벗어난 업종의 클라이언트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브로디의 작업은 이제 전자 기술적 정보전달 communication 전 영역에 의문과 창조어린 새로운 시각 언어 혁명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 시대 포스트 모더니즘 디자인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주 클라이언트는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미국 등에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DMC라는 TV를 위한 디자인 회사를 차렸고 일본에서는CD_ROMPublishers Digitalogue와 가까이 일했다. 지금은 일본,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다국적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타이포그라퍼로 전자디자인의 역할을 연구하고 창조해내는 새로운 비주얼언어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대별 작업 활동
1981년~ 1986년 페이스 The face의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면서 펑크 Punk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을 전개하여 독창적인 활자체의 개발, 관습적 타이포그라피의 개혁, 혁신적인 레이아웃 등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1987년 City Limits라는 런던 주간 가이드 표지 디자인을 했다. 1985년 런던에 그의 스튜디오를 열었으며, 1987년에 아레나(Areana)에 합세, 다시 한 번 혁신적인 편집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후 "브로디 현상"으로까지 불리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1988년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네빌 브로디의 그래픽 언어(The graphic Language of Neville Brody, 1988)라는 저서가 간행되었다.
1989년~1992년 독일의 템포 (Tempo), 프랑스의 악투엘 (Actuel), 이탈리아의 ''렐 앤 퍼 퓌 (Lel and Per Lui)의 잡지사에서 그의 뛰어난 타이포그라피를 보였다. 그리고 실험 글자 type 잡지인를 통해 다시 한 번 브로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1990년 그는 실험적 잡지인 FUZE를 발간했던 Stuart Jensen과 함께 Font Works를 열었으며, Fontshop International의 제작자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 케이블채널 Premiere와 오스트리아 주 방송국 ORF. 전자 이미지작업의 변천은 Brody가 디지털 타입에 열중했음을 반영한다.
1994년를 발간하여 그의 끊임없는 디자인 열정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작업 스타일
1. 텍스트를 무시하고, 북잡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아상블라주-지푸라기, 폐품 등을 이용한 기법-작품들)
2. 활자체의 깔끔한 선을 부각시켜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텍스트에 채움.(이미지와 활자 모두 사용하기 시작)
3. 글자를 비틀고 폰트를 뒤섞었으며, 부호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사용 (현란한 그래픽 등을 사용하여 포스트 모던한 활자체를 만들어 냄)
시대에 저항하는 기하학적 실험 작업
미묘한 형상들이 제공하는 난해성, 그러면서도 외면해 버리고 싶지 않은 독특한 작품 세계의 연출, 이것이 바로 젊은 작가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매력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시대적 한계성을 감지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독특한 언어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타이포그래피 그 자체가 갖는 어려움일 수 있다. 오늘날처럼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차원에로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창조성의 빛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그래픽디자인에 대해 전문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네빌 브로디의 작품에 접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묘한 파편 모습의 난해성은 접근하기 어려운 수렁으로서 우리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빌 브로디의 작품들을 아무런 언급 없이 지나쳐 버릴 순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이미 첫눈에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적잖은 파문을 던져주는 까닭에 그러하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그래픽 디자인의 획을 향해 확고히 정진,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본질적인 각성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방법론을 대거 출현시켰다. 우리는 뛰어난 <데 스틸(De Still)>사진작가 피에츠바르트(Piet Zwart)의 엄격하면서도 비타협적이고 논쟁적인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디자인에서 기억해야 될 것은 이미지의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메시지다."
그는 1928년 예술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고자하는 시도에서 말하고 있다. 덧붙여 그는 "모든 시대는 필연적으로 그 시대만이 가지고 있는 반역을 생산하는 요건을 지니고 있다"며 네빌 브로디의 혁명적 작품의 필요성에 대해 논평을 가했다. 타이포그래피만큼 전환기적 흐름과 단절되어 있는 분야는 없다. 캐롤링 왕조 시대의 소문자 발명은 서체의 발전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더 이상 형태의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딕에서 르네상스, 이탤릭, 게르마닉, 그리고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로마자와 딱딱한 산세리프체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단순한 장식의 변화로 일관된 흐름을 타고 진행되었다. 국제적으로 동일화된 평범한 서체와 자연스럽게 흘려 쓰는 흘림체의 경향이 있었고 흔치 않은 일로 가끔 관념과 리듬을 깨뜨린 기하학적 형태가 나와 당혹감을 안겨주었을 뿐 실지로 새로운 글자체의 격변은 없었다. 심지어 단어 (word) 자체가 사인으로 취급되었다.
규칙이란 근래에 등장한 강박관념이다. 앤톤 스테노브스키(Anton Stenkowski)를 시초로, 그 다음엔 신 그래픽 그룹이 구조적 그래픽을 산업적 커뮤니케이션에 적용시켰다. 조세프 뮬러 브로크만(Josef Miiler-Brockmann)의 구성적 그리드는 부자연스런 알람 시스템의 부분들을 구체화시켰다. 하지만 규칙을 내세운 부적당한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중지되었다.
얼마동안 그래픽 디자인은 그 원리와 기준에 캘빈주의를 적용, 금욕적이고 엄정한 논리에 의존해왔다. 때문에 그것은 종종 창의성과 신선미를 상실한 형식적 복잡함으로 시대를 역행해 왔다. 이는 방법론적 통일성과 어떤 면에서는 의도의 통일성 문제이다. 그 시대가 다양한 경험의 전이, 수많은 요구조건의 제시, 확고한 감성, 사용 언어의 상이함, 그리고 불필요하게 상호 공격적이고 무의식적인 새롭고도 흥미 있는 시각적 형상들을 도외시해 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도외시된 한 경우가 바로 영국의 새 세대로 가장 잘 알려진 청년 브로디이다.
그의 독특하고 비범하면서 복잡함과 난해함이 서로 얽힌 작품엔 여타의 시대에 대한 도전과 침략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서체로 마치 "칼날 위를 달리는 사람"과 같은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타이포그래피는 의도적으로 추한 중간색 또는 형태를 결여한 독소적인 모습의 단어를 사용한다. 즉 만자와 화살의 교차 사인, 터무니없는 독재자의 심벌 같이 그려진 마크 등으로 이 모든 것들은 먼지와 쓰레기들을 전달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과도한 표현이긴 하지만 문화적 흐름, 즉 은둔적으로 당대의 그래픽 작업에 있어서의 예술적 아이디어만 조직하려는 기성세대의 성향에 반발하여 진실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 모델에 의해 진실성을 상실한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행동에 의한 자극 받음으로써 틀에 박힌 구세대의 작업에 반대하는 것이다.
시대별 작업 활동
1981년~ 1986년 페이스 The face의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면서 펑크 Punk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을 전개하여 독창적인 활자체의 개발, 관습적 타이포그라피의 개혁, 혁신적인 레이아웃 등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 1987년 City Limits라는 런던 주간 가이드 표지 디자인을 했다. 1985년 런던에 그의 스튜디오를 열었으며, 1987년에 아레나(Areana)에 합세, 다시 한 번 혁신적인 편집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후 "브로디 현상"으로까지 불리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1988년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네빌 브로디의 그래픽 언어(The graphic Language of Neville Brody, 1988)라는 저서가 간행되었다.
1989년~1992년 독일의 템포 (Tempo), 프랑스의 악투엘 (Actuel), 이탈리아의 ''렐 앤 퍼 퓌 (Lel and Per Lui)의 잡지사에서 그의 뛰어난 타이포그라피를 보였다. 그리고 실험 글자 type 잡지인
1994년
작업 스타일
1. 텍스트를 무시하고, 북잡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아상블라주-지푸라기, 폐품 등을 이용한 기법-작품들)
2. 활자체의 깔끔한 선을 부각시켜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텍스트에 채움.(이미지와 활자 모두 사용하기 시작)
3. 글자를 비틀고 폰트를 뒤섞었으며, 부호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사용 (현란한 그래픽 등을 사용하여 포스트 모던한 활자체를 만들어 냄)
시대에 저항하는 기하학적 실험 작업
미묘한 형상들이 제공하는 난해성, 그러면서도 외면해 버리고 싶지 않은 독특한 작품 세계의 연출, 이것이 바로 젊은 작가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매력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시대적 한계성을 감지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독특한 언어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타이포그래피 그 자체가 갖는 어려움일 수 있다. 오늘날처럼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차원에로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네빌 브로디가 던져주는 창조성의 빛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그래픽디자인에 대해 전문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네빌 브로디의 작품에 접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기묘한 파편 모습의 난해성은 접근하기 어려운 수렁으로서 우리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빌 브로디의 작품들을 아무런 언급 없이 지나쳐 버릴 순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이미 첫눈에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적잖은 파문을 던져주는 까닭에 그러하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그래픽 디자인의 획을 향해 확고히 정진,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본질적인 각성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방법론을 대거 출현시켰다. 우리는 뛰어난 <데 스틸(De Still)>사진작가 피에츠바르트(Piet Zwart)의 엄격하면서도 비타협적이고 논쟁적인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디자인에서 기억해야 될 것은 이미지의 시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메시지다."
그는 1928년 예술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키고자하는 시도에서 말하고 있다. 덧붙여 그는 "모든 시대는 필연적으로 그 시대만이 가지고 있는 반역을 생산하는 요건을 지니고 있다"며 네빌 브로디의 혁명적 작품의 필요성에 대해 논평을 가했다. 타이포그래피만큼 전환기적 흐름과 단절되어 있는 분야는 없다. 캐롤링 왕조 시대의 소문자 발명은 서체의 발전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더 이상 형태의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딕에서 르네상스, 이탤릭, 게르마닉, 그리고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로마자와 딱딱한 산세리프체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단순한 장식의 변화로 일관된 흐름을 타고 진행되었다. 국제적으로 동일화된 평범한 서체와 자연스럽게 흘려 쓰는 흘림체의 경향이 있었고 흔치 않은 일로 가끔 관념과 리듬을 깨뜨린 기하학적 형태가 나와 당혹감을 안겨주었을 뿐 실지로 새로운 글자체의 격변은 없었다. 심지어 단어 (word) 자체가 사인으로 취급되었다.
규칙이란 근래에 등장한 강박관념이다. 앤톤 스테노브스키(Anton Stenkowski)를 시초로, 그 다음엔 신 그래픽 그룹이 구조적 그래픽을 산업적 커뮤니케이션에 적용시켰다. 조세프 뮬러 브로크만(Josef Miiler-Brockmann)의 구성적 그리드는 부자연스런 알람 시스템의 부분들을 구체화시켰다. 하지만 규칙을 내세운 부적당한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중지되었다.
얼마동안 그래픽 디자인은 그 원리와 기준에 캘빈주의를 적용, 금욕적이고 엄정한 논리에 의존해왔다. 때문에 그것은 종종 창의성과 신선미를 상실한 형식적 복잡함으로 시대를 역행해 왔다. 이는 방법론적 통일성과 어떤 면에서는 의도의 통일성 문제이다. 그 시대가 다양한 경험의 전이, 수많은 요구조건의 제시, 확고한 감성, 사용 언어의 상이함, 그리고 불필요하게 상호 공격적이고 무의식적인 새롭고도 흥미 있는 시각적 형상들을 도외시해 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도외시된 한 경우가 바로 영국의 새 세대로 가장 잘 알려진 청년 브로디이다.
그의 독특하고 비범하면서 복잡함과 난해함이 서로 얽힌 작품엔 여타의 시대에 대한 도전과 침략의 느낌이 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서체로 마치 "칼날 위를 달리는 사람"과 같은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타이포그래피는 의도적으로 추한 중간색 또는 형태를 결여한 독소적인 모습의 단어를 사용한다. 즉 만자와 화살의 교차 사인, 터무니없는 독재자의 심벌 같이 그려진 마크 등으로 이 모든 것들은 먼지와 쓰레기들을 전달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과도한 표현이긴 하지만 문화적 흐름, 즉 은둔적으로 당대의 그래픽 작업에 있어서의 예술적 아이디어만 조직하려는 기성세대의 성향에 반발하여 진실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 모델에 의해 진실성을 상실한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행동에 의한 자극 받음으로써 틀에 박힌 구세대의 작업에 반대하는 것이다.
Uncanny Valley

일본의 유명한 로봇 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는 1970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不氣味の谷 현상이라는 것을 소개하였다. 영어로는 uncanny valley라고 불리며 우리말로는 "불쾌한 골짜기"나 "이상한 골짜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이론의 골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로봇의 움직임이나 생김새가 인간의 모습에 근접하면 근접할 수록 더 호감을 갖지만 인간과 너무 비슷하면 오히려 혐오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예 완전히 흡사하면 괜찮지만 어중간하게 비슷했다간 되려 극도의 반발심을 유발한다. 악수를 한 상대방의 손이 의수임을 알아차렸을 때 순간적으로 드는 당혹감과 섬뜩함도 이 현상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공업용 로봇들과는 달리 한국과 일본 등에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정용 로봇의 모습을 보면 모두 다 한결같이 인간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몸통 위에 머리가 달려 있고 두 개의 팔이 달려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로봇에겐 사실상 머리도 필요없고 얼굴도 필요없다. 어차피 입을 벌리며 말을 할 것도 아니고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로봇에게 입이 왜 필요한가? 팔이 두 개밖에 없는 것보단 세 개, 네 개 달리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두 팔을 고집하는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인간을 닮은 로봇에 가장 친근함을 느낀다고 한다. 상상해 보라. 병든 노인을 간호해 주는 간병 로봇이 발이 수십 개 달린 지네 모양으로 생겼다든지 어린 아이를 돌봐 주는 베이비시터 로봇이 거미 모양으로 생겼다면 느낌이 과연 어떠할지? 태권 V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사마귀처럼 생겼었다면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로봇의 보행수단으로서 지네나 곤충처럼 생긴 발이 실제로 이동성이나 안정성 면에서 훨씬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로봇 공학자들이 인간과 같은 이족 보행 로봇을 만드는데 온갖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로 로봇이 인간을 닮으면 닮을 수록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괴이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놓는 한 가설에 의하면 인간과의 공통점이 적은 로봇의 경우에는 인간과 닮은 부분이 부각되어 보이지만 거의 흡사할 정도로 닮은 로봇은 닮은 부분보다 오히려 닮지 않은 점들이 눈에 더 잘 띄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위화감을 조성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더 나아가서 인간과 지나치게 흡사한 로봇의 경우 생긴 것은 비록 사람 같아 보여도 무표정함, 풀린 눈동자, 차가운 피부 등의 미묘한 특성들 때문에 사람의 시체를 연상시키면서 오히려 거부감, 두려움, 섬뜩함 등의 감정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이 uncanny valley 현상은 비단 로봇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uncanny valley 현상은 비단 로봇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올 봄 2006 E3 게임 컨벤션에서 Quantic Dream사가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인 인간의 묘사이지만 아주 미묘하게 어색한 점들이 왠지 더욱 돋보이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유럽에서 만든 게임이다 보니 주인공역을 맡은 여자 성우의 영어 발음에 액센트가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왠지 캐릭터에게 약간의 정신 장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설정상 실제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Uncanny valley와는 조금 무관한 이야기지만 재작년에 id soft의 기대작 가 나왔을 때 인터뷰를 통해 제작자 존 카멕은 전편에 비해 현저히 느려진 게임 플레이에 관한 질문에 대해 비슷한 이유를 대며 해명을 한 적이 있었다. 즉, 오리지널 둠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래픽이 원시적이어서 만화 캐릭터 같이 생긴 주인공이 아무리 오두방정을 다 떨며 스크린상을 헤집고 뛰어다녀도 사람들이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둠3의 그래픽은 실사에 가까운 현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너무 빨리 뛰어다니거나 사방에 점프를 하고 다니면 비현실적인 요소가 오히려 더 부각되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수효과에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uncanny valley 현상은 영화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초의 풀 CGI 영화임을 자랑했던 파이널 판타지 영화판은 극도로 사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평이 있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으로 유명한 픽사의 경우 <인크레더블>에서 사실적인 배경 화면과는 달리 만화와 같이 2D 느낌을 주는 스타일라이즈된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 픽사측은 정밀한 묘사를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 uncanny valley 현상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적극적 해결책이었다고 해명을 한 바 있다.
특수효과에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uncanny valley 현상은 영화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초의 풀 CGI 영화임을 자랑했던 파이널 판타지 영화판은 극도로 사실적인 그래픽을 자랑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평이 있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으로 유명한 픽사의 경우 <인크레더블>에서 사실적인 배경 화면과는 달리 만화와 같이 2D 느낌을 주는 스타일라이즈된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 픽사측은 정밀한 묘사를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 uncanny valley 현상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적극적 해결책이었다고 해명을 한 바 있다.
한편 인크레더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한 워너브라더스의 경쟁작 <폴라 익스프레스>의 경우는, 3D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인해 영화의 주타겟이었던 어린이들이 일부 (특이 어린 아이들이) "무섭다"는 반응을 보이며 극장에서 나가겠다고 울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유명한 영화 평론가인 리차드 로퍼 역시 <폴라 익스프레스>를 관람하면서 무의식 중에 이 uncanny valley의 존재를 인식한 듯하다. 그는 자신의 영화평을 통해 영화에 대한 수많은 칭찬을 늘어놓던 도중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Now as much as I love this film, I have to say there's something creepy and haunting about some of the scenes. With their big eyes and sad faces, some of the children are kinda spooky-looking."
"제가 이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긴 합니다만 일부 장면들에선 좀 괴이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눈에 슬픈 얼굴을 한 어린 아이들[주인공들]의 모습이 왠지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Now as much as I love this film, I have to say there's something creepy and haunting about some of the scenes. With their big eyes and sad faces, some of the children are kinda spooky-looking."
"제가 이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긴 합니다만 일부 장면들에선 좀 괴이하고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눈에 슬픈 얼굴을 한 어린 아이들[주인공들]의 모습이 왠지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실제 인물을 본떠 만든 밀랍 인형을 볼 때 우리는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라는 표현을 무의식 중에 사용하곤 한다. 왜 제임스 딘은 멋있어도 제임스 딘을 빼닮은 인형은 "섬뜩"할까? 로봇 기술이 발전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나날이 진보하는 가운데 인간이 자신을 닮은 피조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맞딱뜨릴 수밖에 없는 이 이상한 골짜기를 뛰어넘기 위해 앞으로 어떠한 돌파구를 마련해낼지 궁금해진다.
Uncanny Valley 관련 글:
- http://www.androidscience.com/theuncannyvalley/proceedings2005/uncannyvalley.html
- http://www.arclight.net/~pdb/nonfiction/uncanny-valley.html
- http://en.wikipedia.org/wiki/Uncanny_valley
- http://ja.wikipedia.org/wiki/%E4%B8%8D%E6%B0%97%E5%91%B3%E3%81%AE%E8%B0%B7%E7%8F%BE%E8%B1%A1
- http://robot01.com/contents/news_view.php?page=0&num=1404&search_field=&search_word=&bod_code=B00002
- http://www.slate.com/id/2102086/
- http://natsuo-omodaka.no-blog.jp/qualia/2004/09/post_16.html
- http://hotwired.goo.ne.jp/news/20051212201.html
모리 마사히로 관련 글:
- http://en.wikipedia.org/wiki/Masahiro_Mori
- http://robofesta-mie.com/cup.htm
Uncanny Valley 관련 글:
- http://www.androidscience.com/theuncannyvalley/proceedings2005/uncannyvalley.html
- http://www.arclight.net/~pdb/nonfiction/uncanny-valley.html
- http://en.wikipedia.org/wiki/Uncanny_valley
- http://ja.wikipedia.org/wiki/%E4%B8%8D%E6%B0%97%E5%91%B3%E3%81%AE%E8%B0%B7%E7%8F%BE%E8%B1%A1
- http://robot01.com/contents/news_view.php?page=0&num=1404&search_field=&search_word=&bod_code=B00002
- http://www.slate.com/id/2102086/
- http://natsuo-omodaka.no-blog.jp/qualia/2004/09/post_16.html
- http://hotwired.goo.ne.jp/news/20051212201.html
모리 마사히로 관련 글:
- http://en.wikipedia.org/wiki/Masahiro_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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