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일 일요일

써니킴_Rollling fog














써니킴
Rolling Fog






현실인듯, 현실이지 않은 듯

기억처럼 안개가 쌓인 뿌연 풍경 속

뒷모습만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얼굴도 아득하다.

마냥 즐겁다고 표현 못할 기억들,

약간의 공포감과 아련함이 있는 듯 하다.


전시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교복을 입던 세대에 속한 작가는 미국으로 이민간 후 겪은 십대시절의 모호함과 불안정성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업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미술관 전시 이후 4년 만에 준비한 이번 써니킴의 개인전 Rolling Fog는 그동안의 시간만큼 작가의 심적. 기법적 변화를 포착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써니킴의 작업은 존재하지 않는 기억에 대한 향수를 붙잡으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현실이 될 수 없는 대체물이자 가짜의 시공간인 회화 속 이미지에 여러 겹의 물감 레이어를 덧바르며 몽상적이고 아련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마치 무중력의 공간감이나 공기와 같이, 실체감이 없다는 특성을 가진 가상의 기억은 보는 이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등 감정이입 효과를 주며 회화 안에서 완전한 리얼리티를 얻고 있습니다.

5월, 써니킴의 Rolling Fog전이 안내하는 가상의 기억 속에서 색다른 심리적 경험에 들어서는 즐거움을 기대해보시기 바랍니다.




전시장소: 16bungee http://www.galleryhyundai.com/kor/?SiteNum=3

전시일시: 2010. 4. 22 - 5. 12

이광호_Touch

이광호
Touch


섬세하지만 이야기하는 그림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그냥 강하다고 보기엔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식물들.













전시장소: 국제갤러리 www.kukjegalley.com

전시기간: 2010.4.15~2010.5.16

전화 : 02-735-8449

윤명숙의 바다

유난히 깊어보였던 바다 사진.

하늘 위에서 비추는 햇빛은 더욱 소중하고 간절하게 느껴진다.








사진 이미지 : http://blog.naver.com/noongamgo/100104188120

전시기간 : 2010.4.23~2010.5.9
전시장소 : 류가헌 http://www.ryugaheon.com/contents/contact.php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10
전화 02-720-2010
로저 딘(roger dean) 회고전



유명 락 그룹의 커버 아티스트 '로저딘'
예스(yes), 유라이어 힙(Uriah Heep)과 같은 전설적 밴드들의 커버를 장식했던 그의 오리지널 작품들과 록, 레이블 작업들을 볼 수 있다.


asia dragon


freyja's castle


dragons dream


blue dessert


asia ppyramid



'테트리스' 게임 디자인을 로저 딘이 디자인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70~80년대에 작업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색채와 구성, 캐릭터들이 환상적이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아바타의 배경들을 로저 딘의 작품들에서 차용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로저 딘 홈페이지 : http://www.rogerde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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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대림미술관에서 온라인으로 회원가입을 하시면, 어른 5000원의 관람료를 2000원으로 할인해준답니다.




장소: 대림미술관 http://www.daelimmuseum.org/index.jsp

일시: 2010.3.25(목)~2010.6.6(일)

시간: 오전 10시~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장 뒤뷔페 '우를루프의 정원'

"제가 봤을 때

그림의 쓰임새를 흔히들 기대하는 바와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자의 집에다 둘 수 있고,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고,

영원히 볼 수 있는 그림이 되는 거죠.

바다를 바라보는 것처럼, 혹은 타오르는 불을 보듯이요.



나는 내가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그러길 바래요.

내가 원하는 건 단지, 하고싶을 때 아무런 구속없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고기를 낚는 낚시꾼이 되는 겁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건 오직 그림에서 찾은 즐거움 때문이죠.

내 그림은 전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면

그제야 무언가를 보기 시작했단 생각이 듭니다.

전혀 새로운 빛 속에서 이들을 보는 것 같고,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것 같지요.

신기한 마술 안경이라도 쓴 것같은 기분입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두 눈은 아무것도 못 보죠.

그림이 내 눈이 되는 겁니다.

시골길에서 돌멩이 하나를 봐도,

뭘 본건지도 모르겠고, 뭘 아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아 그게 돌멩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집에와서 그림을 그리려고 한 때입니다.



그리고... (집과 나무와 밭이 있는 한가로운 전원풍경을 보며)

저런 풍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뭐가 예쁜 건지도 모르겠고 오히려 제게 있어선

거슬려 보입니다. 그럴 이유는 없지만요.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싫어하는 것도 화폭에 담지요.

그러면서 내 안의 감정을 비워내는 겁니다.



미의 개념이란 없다고 봅니다.

아름답다는 건 착각이죠.

미추의 개념 모두가 없어요.

시대에 맞게 사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이죠.

미란 사회적 통념일 뿐입니다.

한가지 유효한 개념이 있다면 그건 매혹, 즉 홀리는 것이죠.

장담컨대,

그 어떤 사물이든

그 어떤 존재든

그 어떤 장소든

강한 애착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거지요.

사람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빠져들게 하는 겁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은 그게 아름답다고 하는 거죠.

하지만 뭐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 생각엔

예기치 못한 데서 미를 찾는게

예술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은 눈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영혼에 대고 말하는 겁니다!"







- 장 뒤뷔페, 인터뷰 中









장 뒤뷔페의 전시가 끝나기 이틀전 부랴부랴 전시를 봤다.

저녁 6시가 넘어서도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장 뒤뷔페, 참으로 재능이 다양해서 초년기에는 어느길로 가야할지 이리저리 헤메이다가

중년기가 되어서야 자신의 길을 찾고 죽을 때까지 미술가가 된 사내.

아카데믹한 화풍은 배우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그리겠다며 미술대학을 뛰쳐나왔지만,

그후로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42살까지 포도주 상인이 된 사내.

이 사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42살, 미술가가 되길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린다. 그동안 못그려 본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동안 얼마나 멋진 생각을 화폭에 담아보지 못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장 뒤뷔페의 그림들은 찡하고 통하는 면이 있다. 그걸 화가의 진실성이라고 했던가, 진실이 담겨 있는 그의 그림들은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그 어떤 현대 회화보다 가슴으로 먼저 다가선다. 정말 장 뒤뷔페의 그림들은 영혼에 대고 말하는 듯 하다.

성석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中

< 그의 욕은 압축적이고 핵심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에 가까웠고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내가 인간의 어떤 신체 기관과 닮았는지, 어떻게 그 기관을 볼 것인지, 장차 죽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해 상기시켜주었다)

가락과 후렴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노래가 될만하고 (내가 어떤 짐승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그 짐승도 대여섯 가지로 다양함을 보여주었다)

한마디 대꾸할 틈도 없이 퍼붓는다는 점에서 소나기처럼 시원했다 >


- 성석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가수의 존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단순히 놀자판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화를 선도하는 사람, 달을 가리키는 여사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해요"



- 이상은, 책<21세기를 바꾸는 교양> 中 -

개전

예술의 전당의 '개전'을 다녀오다. 개들이 왕왕 울부짖는 '개판'다운 전시회. '개'를 이해해보고, '개와 인간'을 뒤집어보고, '개'의 입장에서 이야기해고, '개'를 다시 만들어보았던 전시회. 한가지 소재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작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음.


'개전' 앞줄에 적혀있는 글들


<교사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학생은 훌륭하다'는 확신과 믿음이고,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학생은 훌륭하다'는 확신과 믿음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자세와 노력이다>


<교육은 학생들의 새로운 자기(나)를 발견하게 하는 중요한 혁명이 되어야 한다>


<프로젝트의 중요한 사명은 지금까지 없었던 '이미지 생산'과 '의미생산'을 통해 사회에 대한 말걸기이다>


<세상앞에 우뚝서는 연습을 하려면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난을 자청함으로써 가능하다>

김종학 프로덕션 기획프로듀서 채용공고

<김종학 프로덕션 기획프로듀서 채용공고> 2006/09/05 일자의 글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글이 있어서 여기에 다시 적어놓음.



기획 프로듀서_요구되는 능력



1) 드라마 아이템이 될 만한 오리지널 스토리나 원작을 착안/발견할 수 있는 능력과 드라마에 대한 애정.



2) 발견한 아이템의 컨셉을 잡아 문서/구두로 작가/감독/배우/상사를 설득할 수 있는 설득력과 커뮤니케이션 스킬.



3) 이 과정에서 생기는 난관과 저항, 반대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뚝심과 자신감. 끈기. 그리고 체력.



4)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학 자신의 아이템이 채택되지 않았을 때 상사와 조직에 순응하는 팀 마인드.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자신의 아이템을 숙성시켜 결국은 설득에 성공하는 용의주도함.



5) 협찬/PPL기획력, 영업마인드.

김민수 "모던디자인비평"

누군가 이 책 전체를 통해 필자가 밝히고자 했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해보라고 주문한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그것은 디자인의 '반성적 성찰의 인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결국 필자가 이 책을 통해 논의했던 모던 디자인으로부터 포스트 모던과 해체로의 이탈 과정은 철학적으로 볼 때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또는 그것이 규정했던 규범 체계들에 대한 반성을 통한 '극복'(하버마스식의)과 '초월'(데리다와 푸코식의)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 이러한 이탈 과정을 눈여겨 보면서 필자는 그동안 적용되었던 디자인 실무와 교육에 대한 냉철한 반성적 성찰만이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디자인의 실무와 교육을 통해 적용되었던 상당히 많은 주된 가치들이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변화의 양상은 디자인의 개념 자체에 대한 수정으로까지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앞서 우리가 살펴 보았들이 결코 우연에 의해 초래된 결과가 아니라 뚜렷한 역사적, 정치 - 경제적, 사회 - 문화적 인과 관계들 속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디자인은 그와 같은 현재의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설득력있는 해석이나 그 자체를 평가하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이 책에서 필자가 모더니즘 이후의 포스트 모던과 해체주의 디자인을 그 철학적 견해에서부터 디자인 실행까지 연결시키면서 조명한 데 대해 그와 같은 외래적 현상들이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고 혹자들은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원래 '디자인'이란 개념 자체도 외래적으로 수입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한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은 왜 디자인의 개념 자체를 수입된 시점에서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서구 사회에서조차 그 개념을 포기 또는 수정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애써 도외시하고 있는가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역사 의식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이는 달리 말해 스스로를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결별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설사 오늘날의 디자인의 개념적 변화가 서구적 상황에서 발생된 현상이라 간주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치 - 경제적, 사회 - 문화적 변화 속에서 볼 때 결코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또한 우리가 과거의 통제된 유형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정보와 자본의 흐름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면, 모든 현상은 결코 어떤 특수한 문화 지형 내에서 고립적으로 발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시공간 상의 변화도 부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 어떤 섬에서 땅굴을 파고 옥쇄(玉碎)하다 살아 남아 몇 십년 뒤 땅 밖으로 기어나온 일본군이 자신은 아직도 '황국(皇國)을 지키는 전사'라고 울부짖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세계 문화적 보편성을 위해 우리 고유의 특수성을 희생시켜온 우리에게 현재 직면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분석되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분석의 방향이 어느 한쪽을 배격하면서 다른 한쪽만을 강조해야 하는 모습으로 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은 세계적 보편성과의 균형 감각을 유지할 때 그 참다운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 40년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만들어 놓은 국제적 '보편성'을 얻기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 그 과정에서 모든 문화적 '특수성'들이 '보편성의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유실되고 망각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근래에 들어 우리 고유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문화 저변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의 흥행이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접해졌듯이). 어찌 보면 이러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조장되기 시작한 것은 보편성이 어느 정도 획득되기 시작한 아주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디자인의 임무는 현재 이중적인 과제로 남는다. 즉 우리는 한편으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보편적인 디자인 어휘를 전개시켜야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라는 특수 문화권에서 어떠한 디자인을 어떻게 현대 디자인의 맥락으로 추구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요즘 세간에 유행하고 있는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한 표어만으로 간단히 해결될 성질은 아니다. 예를 들면 요즘 모 기업에서 개발된 "누룽지를 만들 수 있는 전자 밥통"과 "물걸레질하는 진공 소제기"와 같은 제품들이 우리와 다른 문화 공간 속에 곧바로 적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결국 국수주의적인 자기 도취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며, 반대로 외래 문화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반대로 자기 멸시와 허무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해석하는 태도에 한가지 문제가 있음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유달리 한국에서 알레르기 반응식으로 곧잘 매스컴을 통해 떠들어 대는 "문화 침투(cultural invasion)"라는 용어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文化觀)'이 이 두 단어의 결합 속에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일상적 용례에서 우리가 "~에 침투하다 또는 침투해 들어가다"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원래 '침투'라는 말은 특정한 공간 또는 상황이 전제된 말이다. 침투라는 말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공간 또는 허약한 대상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며, 공간을 특정하게 한정지울 수 없을 만큼 원대하거나 강인한 것에 대한 작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로(특정 공간 속으로) 외계인이 침투하다"라는 말은 사용해도 "지구인이 우주에 침투하다" 라는 말은 별로 의미있는 말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병원균이 몸에 침투하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겨 항균력이 약해졌을 때이다. 이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침투가 문화라는 말과 결합되어 "문화 침투"란 말이 되었을 때 이 복합어는 어떤 이질적 문화가 침투하게 되는 대성으로서 '고정된, 정체된, 비역동적인, 허약한 문화 공간'을 지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 문화에 대해 어떤 이질 문화가 침투하고 있다고 호들갑 떨며 경고식의 말을 해대는 것은 우리 문화의 비역동적 정체성을 자인하는 말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갖고 있던 쪽박마저 깨질까봐 벌벌 떨고 있는 너무나 미약한, 주체적 자존심도 없는 존재들로 매도하게 되는 말이 된다. 그 말은 우리 문화를 정체된 허약함으로 규정지움으로써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결국에는 소인배임을 자처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제 때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내요시가 "한국과 그 예술"이라는 글에서 조선의 미(美)를 반도적인 지리적 특성과 그로 인한 비참한 역사로 각인된 것으로 파악해 "애상적인 비애의 미"로 서술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문화 침투란, 스스로를 우주적 공간으로 원대하게 여기고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 대해서는 절대로 적용될 수 없는 용어이다. 또한 그 문화가 주체적 자아를 갖고 있다면 설사 수퍼 헤비급의 이질적인 것이 침투한다고 해도 자체의 문화적 에너지로 용해시켜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문화 침투라는 용어 속에서 스스로를 소인배로 격하시키게끔 유도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성 말살의 망령이 되살아남을 느끼곤 한다. 대한 민국 헌법 전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를 "한반도와 부속 영토로"규정짓고 있듯이,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를 정체적인 불변의 공간적 의미로 한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갖게된 문화 개념은 뜨겁게 살아 숨쉬는 오늘의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무덤에서 파낸 '골동' 문화밖에는 없는 것이다. 왜 문화는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손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점에 대해 필자가 지난 1986년 뉴욕 매디슨 애비뉴 59가의 IBM 갤러리에서 보았던 한 전시회에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도쿄, 형태와 정신(Tokyo, Form&Spirit)"이라는 전시회로 일본 문화 재단과 유수의 일본 기업들의 후원으로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사진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마련된 것이었다. 그 전시회는 일본의 전통성과 현대의 조형적 실험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였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필자의 뒤통수를 쳤던 것은 8폭짜리 병풍이었다. 그것은 칼을 들고 군무를 추고 있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수 놓은 것이었는데, 색이 좀 바래 누가 보아도 '에도 시대' 이전의 것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한 골동품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병풍을 눈여겨 보다가 그림의 하단부에 사무라이가 신고 있던 신발이 '나이키' 운동화임을 발견하고 필자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잠시 후 그것은 그저 웃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아아! 이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오가며 내일로 향해가는 사람들이구나. 두고두고 필자는 그 '나이키를 신은 사무라이'의 망령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은 우리가 이땅에서 애써 부인하고 그로 인해 편협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커진 나라이다. 일본의 위상이 훨씬 더 커진 원동력은 바로 그와 같이 과거를 오늘에서 정의하려는 노력과 그로 인해 '골동'을 그 자체로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로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문화적 역동성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옛 선조들이 일보에 전해준 고대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일본에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최면에 빠진 '골동' 문화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속성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우리는 영원히 '수비형'의 문화로 남아 있으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져왔던 이와 같은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에 일대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언제 침투할지 모를 외래 문화에 대해 언제까지 불한한 '수비형'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말이다. 왜 우리는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대응하고, 우리의 문화를 외부적으로 발산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 필자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우리 문화 내에서 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수비형의 자세를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상당히 철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안에 주체적 자아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주체적 자아라는 자기 - 정제력을 가진 여과체가 있을 때 또한 그러한 주체들에 의한 자발적인 참여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양질의 문화를 식별해 냄으로써 스스로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되는 자생력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문화를 위로부터 명령에 의해 하달된 것(top - down)이 아니라 자체의 여과 기능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된 문화(bottom - up culture)'라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학술적인 설명 이전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화의 본질적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설사 어떠한 외래 문화들의 침투가 융단 폭격식으로 가해진다 해도 붕괴되기는 커녕 끊임없는 생성 과정을 통해 계속적으로 자체 문화의 폭을 증식시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보편과 특수 사이의 균형감각과 하께 자기 - 여과력의 기능이 우리의 문화 속에 있어 준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추구해온 디자인스럽게 보이는 '모조 디자인(pseudo - design)'의 차원을 벗어나 개념 설정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의 해석을 디자인에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앞서 보았던 베네통사의 고아고, 멤피스의 산업 디자인, 꼼드 갹송의 패션이 넓혀 놓은 '인식의 범위까지만' 디자인해야 하는가? 그러한 창의적인 작업들이 이 땅에 처음 소개될 때면 으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야!" 라고 애써 거부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리는 온통 그와 같은 것들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러한 창조의 주인공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이 허물어 버린 창조적 인식의 그늘을 더 좋아하는가 말이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우리의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이 그동안 어떠한 재평가도 없이 다시 바우하우스 또는 울름 조형대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서구식 커리큘럼을 '구색 맞추기식'으로 복제하고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어째서 이러한 디자인 운동들이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일말의 재고도 없이 받아 들여져 마치 그것들 아니면 교육이 망가지는 것처럼 소중시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우리의 디자인 교육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념적 오류와 그것으로 인해 각인된 디자인 교육의 방식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필자가 바우하우의 좌익 성향과 당시 독일의 철학적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뚜렷한 연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듯이, 사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은 당시의 나찌 독일을 가능하게 했던 기반 속에서 잉태되었던 것이다. 나찌의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t) 우익 정치 이념은 좌익 바우하우스를 폐교시키고 많은 모더니스트들을 미국으로 망명시킨 계기를 제공했지만, 이념 자체로 보았을 때 나찌의 정치 이념은 모던 디자인의 이념과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른바 나찌가 수백만 유태인 대량 학살의 명분으로 삼았던 게르만 민족의 단일한 '혈통적 순수성' 보존의 이념과 디자인에 있어 어떠한 개별적인 탐색과 표현성도 말살시킨 모던 디자인의 순수한 '기능적 순수함'의 이념 사이에는 은유적인 것 이상의 직접적인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똑같은 동전에 찍혀진 양면에 불과할 뿐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 특정 이데올로기가 파생시킨 교육 이념들이 이억만리 떨어진 이 땅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디자인 교육의 유일한 패러다임으로 언제나 찬양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우리는 현 시대에 새롭게 재편성되고 있는 철학적, 정치 - 경제적, 사회적 - 문화적 구조 위에서 그동안 추구해 왔던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디자인 자체의 비평적 기능을 파생시킴으로써 철저한 '자기 - 반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얻어진 결과들이 우리 모두에게 공유될 때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디자인이 어떠한 위상에서 어떤 목표로 향해 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상과 목표를 설정하려는 어떠한 자체의 논의도 없이 다만 그럴듯 해보이는, 또는 남들이 우려 먹다 버린, 방법론의 도입을 되풀이 함은 마치 키없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돛단배와 같지 않겠는가?


김민수,"모던디자인비평" (안그라픽스, 1994) 중 <맺음말>

자존심은 존재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

...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자존심은 일상적인 의미로 말하는 자존심, 예컨대 '내가 이런 지위인데, 어디에 가서 이런 대접을 못 받았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한다'라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슴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그래서 어디서 낮게 평가를 받든, 이른바 자존심이 상하지 않거든요.

자존심을 다루는 철학을 자기를 배려하는 미학적 윤리학, 곧 존재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존재미학이라는 것은 원래대로 번역하면 실존미학이라고 해야 됩니다. 철학에서는 '존재'와 '실존'을 구별하는데, 존재는 그냥 있는 상태고, 실존은 어떤 것이 자기 규정에 맞게 참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또 생물학적 종으로 있는 것은 존재에 지나지 않고, 인간이 정말 인간답게 사는 것을 흔히 실존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이 그 둘을 분류해서, 재료 상태로서의 삶, 그냥 태어나서 사는 삶을 '비오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이올로지'라고 할 때 그 '비오' 있잖아요. 그 비오스로서의 삶, 그것만으로는 실존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료 상태이기 때문에, 형상이 들어가야 합니다. '형태과학'은 말하자면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구성하는 거죠. 다른 말로 쉽게 말하면, 자기 스타일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재료 상태의 삶이 아니라 거기에 자기 스타일을 주는 것, 그래서 자기 삶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 사람들이 사는 원리였고, 이것을 우리가 실존미학이라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 실존미학의 가장 큰 바탕이 바로 자기에 대한 존중입니다. 자기에 대한 존중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겠죠. 자기를 존중하면 자기 삶을 내팽개치는 게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자기 삶을 윤리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아름답게 가꾸려는 욕구가 생기고 그것을 삶에서 최고 목표로 삼게 되죠. 그래서 자존심이라는 것은 결국 구체적으로 자기에 대한 배려, 자기 삶에 대한 배려로 나타나고요.

철학자 미셸 푸코라는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책이 <자기의 테크놀로지>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 나온 내용들에 제가 크게 공감했습니다. 이분이 좀 오래 살았으면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을 텐데, 바로 뒤에 에이즈로 죽었죠. 그래서 문제의식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근데 철학에서는 인간을 '주체'라고 하지요. 주체라는 것은 세계에 대해 그 위에 있는 것이고, 나, 곧 주체는 1인칭이고 세계는 3인칭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1인칭은 3인칭을 지배하고 장악하고 인식하고 변형하지요. 나아가 자연을 '자원의 보고'라고 하면서 자연을 착취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식으로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끌어올렸는데, 미셸 푸코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인간관계 망에 의해 만들어지거든요. 또 내가 갖고 있는 의식이라는 것은 내가 직접 생각한 게 아니라, 많은 경우에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이야기들이 내 안에 들어와서 조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이 이야기를 멋있는 말로 하면, 주체라는 것은 권력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회화 과정이라는 것은 주체로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체로 만드는 것 자체가 사실은 그 학생을 배려한다기보다, 어떤 개별자를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코드에 강제로 뜯어 맞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 다닐 때 의무적으로 일기를 쓰지요? 제가 제 조카가 옛날에 쓴 일기장을 봤는데,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햇빛은 쨍쨍, 오늘 맑음, 오늘은 누구랑 신나게 놀았다" 이렇게 나가다가, 맨 마지막에 오늘의 반성할 점을 꼭 써야 하잖아요. 그래서 오늘의 반성할 점, "오늘 일기를 내일 썼다". (청중 웃음) 그런데 이런 것이 자기를 감시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보편적 코드에서 벗어나는 일을 했으면 고해성사를 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이게 잘 이뤄지게 됐을 때 흔히 철들었다고 이야기해요. 철들면 예전에 밖에서 감시하던 것을 굳이 계속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감시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주체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어떤 사회든 자기 사회 코드에 맞게, 자기 사회 필요에 맞게 인간들을 뜯어 맞춰요. 그래서 벗어나면 처벌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자율적 주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 한때는 타율이던 것이 내재화된 것에 지나지 않거든요. 여러분들 아마 어렸을 때는 이닦기 굉장히 싫어하셨죠? 그래서 날마다 혼나고 그랬는데, 요즘은 이를 닦지 않고 자면 어떠십니까? 찝찝하잖아요.(웃음) 원래 동물들은 이빨 닦는 거 안 좋아하는데, 이게 내면화되면 오히려 그것을 쾌감으로 느끼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이른바 '이제 철들었다', 타율이 아니라 '알아서 하게 됐다', '자율적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미셸 푸코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 자율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자율인가 하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자율이란 게 사실은 내면화된 타율에 지나지 않고,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권력이 내 안에 들어와 체화된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고 하잖아요. 군대 갔다 와서 사람된 그 사람, 이건이 근데 철학에서 말하는 주체이고 그들의 이상입니다. '세계의 주인',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는 근데 철학의 이상에 대해 미셸 푸코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현실을 폭로한 거죠.

마찬가지로 내가 갖고 있는 의견, 내가 갖고 있는 견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들, 이것들도 가만히 보면 바깥에서 떠드는 겁니다. 미디어에서 떠드는 걸 내가 그냥 계속해서 떠드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매클루언 같은 사람이 말한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라는 말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안간의 확장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면에서 미디어의 확장입니다. 신문을 읽고 그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해버리고, 그 다음에 그것을 자기가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해 버리잖아요. 그래서 푸코가 볼 때는 어떤 면어서 주체라는 것은 권력의 효과이고, 의식이라는 것은 담론의 효과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푸코는 주체를 객관화, 객체화시켜버립니다. 알고보면 인간이라는 것, 주체라는 것이 거대한 거미줄 망에 걸린 한 마리 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허탈해지잖아요. 그러면 도대체 우린 뭘 하라는 말이냐. 여기서 미셸 푸코는 굉장히 사실적이다가, 그 다음에는 당연히 규범적인 문제의식으로 넘어갑니다. 이제는 존재의 영역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이죠. '그러면 우리는 어덯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미셸 푸코가 바로 '존재미학'이라는 개념을 그리스에서 끄집어내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갖고 있던 존재 미학을 끄집어냈고, 그래서 푸코의 후기 사상은 인간이 자기를 만드는 데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느냐, 내가 나 자신을 만드는 데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느냐를 탐구합니다. 이때 이 사람이 쓰는 '자기'라는 말이 '주체'를 대신한 말입니다. 주체라는 것이 근대 철학에 오염됐다고 생가했기 때문에 불어 '스와(soi)'를 '자기', '자아'라는 개념으로 썼어요.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만드는 그 주체 형성의 방식을 봤더니, 예전에 그리스 사람들이 이렇게 했다는 겁니다.

앞서 예로 든 일기는 고해성사 형식입니다. 내가 한 일을 쭉 쓰고 나서 바깥의 사회규범과 비교해서 거기서 빗나간 것을 스스로 고해하게 하는 거죠. 그리스 사람들도 일기를 썼는데, 작가들이 쓰는 일종의 착작노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제성이 있다기보다, 오늘은 뭘 했는데 책을 좀 덜 읽은 거 같으니까 내일부터는 책을 좀 더 많이 읽어야지 하는 식이었지요. 그리스 사람들은 개별자를 옹호하고 존중해주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도덕이라는 게 보편적 도덕이 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보편에서 시작해서 개별을 규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별을 살려주면서 그것을 보편화하는 식의 도덕을 갖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푸코는 그것을 다시 되살려보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도덕을 되살리는 데 있어, 존재에 관한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실적인 측면입니다. 인간 주위를 둘러보면 다 권력이거든요. 권력이라는 게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것이 다 권력입니다. 집안에도 있고, 학교에 가면 학생과 교수 관계고 권력이고, 회사 가면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도 있지요.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예컨대 내가 어떤 일을 했는데 그 행동이 문제가 되면,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면 중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한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굉장히 많은 권력의 망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걸 뚫고 자기 자신을 관철시키려면 굉장히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그야말로 존재를 위해서 자기의 진짜 존재, 곧 실존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그래서 정말로 자기 자존심을 살리는 사람들, 자기에 대한 존중을 끝까지 살리려는 사람들은 때로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형태죠. 예컨대 보헤미안 같은 경우는, '보헤미안의 십계명'이라는 게 있어요. 부모를 짚신처럼 알아라, 친구 배신하기를 밥 먹듯 하라 등등.(웃음) 그건 뭐냐 하면 주위에서 자기한테 들어오는 힘들이 워낙 상투화되고 관습화된 권력들이니까 그것들을 다 배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창조적 개새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굉장히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 벗어나려는 기지가 팔요한 것 같아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존재를 형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학적으로 존재를 형성하는 방식이 덜 강압적이거든요. 그러면서 어떤 면에서는 규정력이 훨씬 더 강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사람들한테 "너는 나쁜 놈이야"라고 하면, "그래, 그런데 그게 어때서?"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런데 "야, 그게 뭐냐, 쪽팔리게"라고 하면, 사람이 나쁜 일은 해도 쪽팔리는 일은 못하는 그런 성향이 있기 때문에 더 강하게 체면이 구겨진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보면 더 강한 규정력을 발휘할 수 있지요...



...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욕망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 그리스에서는 욕망이 바로 에로스거든요. 자기한테 결여된 것을 바라는 것이 에로스예요. 자기에게 없기 때문에 욕망하지요. 이것은 타동사적으로 없기 때문에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욕망은 자동사로서의 욕망, 곧 무엇이 있다는 게 아니라 내면의 욕구 같은 것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자기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지요. 자기 잠재성을 충분히 펴는 상태가 되고 싶어하는 거지요.

그리스 사람들이 덕이라고 이야기하는 아레테는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잠재력을 갖고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상태, 그 상태가 바로 행복한 것이고, 그런 상태가 바로 아레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이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태어났는데, 예컨데 권력관계라든지 또는 잘살기 위해서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아니면 남들보다 더 높은 지우에 올라가기 위해서 그것을 희생시키고 다른 방식으로 살 때, 그리스인들의 관념에 따르면 그것은 덕의 상태가 아니며 매우 불행한 상태입니다. 예를 들면 동생이 프로그래머인데 제가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더니, 굉장히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봐요.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까, 컴퓨터로 한글 문서 작업하고 인터넷 검색만 하는 것은 컴퓨터가 발휘할 수 있는 전체 기능 중에 약 0.0001퍼센트만 활용하는 거라고 합니다.(웃음) 그러니까 컴퓨터 활용의 아레테 상태가 아닌 거예요. 바깥에 있는 무엇에 대한 욕망, 곧 타동사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자기 내부에 있는 자동사의 욕망이 희생하는 것은 아레테 상태가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무엇과 타협해서 어디에 들어가면 뭐가 되고, 뭐가 돼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권력이라는 것이 생기겠죠. 사람들이 저에게 굽실거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보다 저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고 책 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먹고사는 사람은 특권층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는 특권층이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그걸로 밥벌이까지 되니까요. 그렇게 살면서 저는 제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타동사의 욕망이 아니라 자동사의 욕망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동사의 욕망일 때는 바깥에서 회유나 위협, 예컨대 "너 밥줄 끊어버릴 거야", 아니면 "이거 해줄게"라고 하면서 사람을 망가뜨리잖아요. 그런데 아예 그걸 포기하고 살면, 협박받을 것도 없지요. "밥줄 끊을 거야" 그러면 "끊어봐", 또 "이거 해줄게"그러면 "너나 과자 많이 사 먹어"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뭐랑 똑같으냐면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라가 만났을 때 상황을 한번 보세요. 알렉산드라가 디오게네스에게 "당신이 갖고 싶은 게 뭐냐?"라고 물으면서 쳐다보니까, 디오게네스가 "비켜줘. 햇볕 좀 쬐게"라고 했거든요.

알렉산드라는 권력을 비롯해서 모든 걸 가졌지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디오게네스는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욕망 자체가 없는 사람이에요. 알렉산드라가 갖고 있는 게 먹히질 않아요. 남이 부러워해야 자기가 자랑스러워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 부러워하거든요. 그래서 결국 알렉산드라는 "내가 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로 태오나고 싶다. 그래도 끝까지 대왕이 되고 싶었는데"라고 했습니다. 디오게네스가 개였잖아요. '시미시즘'이라는 말이 원래 개예요. 개처럼 막 돌아다닌다는 의미죠. 디오게네스가 "나는 개다"라고 이야기했거든요. 대왕은 개가 되고 싶었는데, 개는 대왕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욕망 자체가 다른 거죠. 대왕이 갖고 있는 정복욕이나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어떤 한 사람 앞에서 완벽하게 무력화됐습니다. 그런 삶의 태도가 바로 자동사로서의 욕망이라는 거죠...



- 진중권, 도서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중 -

Misty moon - 임형주

Misty moon



Misty moon in the still of night

Quietly shed your pale blue light

Promise me not a word to speak

Of the sins in my heart I keep



Silent moon, ever knowing moon

Pray thee tell, will the Time be soon

Just to bring flowers for her hair

Give my Life, only to be fair



Somewhere deep inside my reverie

Hear a voice that calls out to me

Like a long forgotten lullaby

Is this a dream...within a dream



Misty moon bathe me in your glow

Hide the tears, shamelessly they flow

Take me home where my Spirit yearns

Where she lies, wait for my return






안개 속의 달



한밤의 희미한 달

조용히 옅은 푸른 빛을 뿌리는군요.

내가 간직하고 있는 내 안의 죄들을

말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침묵하는 달.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있는 달

그대에게 곧 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녀의 머리에 꽂기위한 꽃가지를 가지고 가서

내 인생을 드립니다.



내 안의 환상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나를 불러내는 소리가 들리네요.

오랫동안 망각 속에 있던 자장가처럼

이것이 꿈 속에서 꾸는 꿈일까요?



안개 속의 달은 당신의 불빛으로 나를 가득 채웁니다.

내 눈물을 숨기고 불빛들을 부끄러움 없이 흐르는군요.

내 영혼이 그리워하는 나의 집

그녀가 살고 있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나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세요.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

... 그런데 도대체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1964년 4월, 쿠데타가 일어났을 무렵에 브라질의 외채는 25억 달러였다. 그로부터 21년 후 군부독재가 종지부를 찍었을 때 외채는 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지속되어온 군부독재 기간 동안 정권을 잡은 군정체제가 추구한 전략은 '국가의 치안'과 '통합 발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거의 남미대륙 전체 에 걸쳐 대대적인 감시와 억압, 민주주의자 색출체제가 자리 잡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했다. '국가의 치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용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초기에는 수출입은행, 거대 민간 은행들, 그 뒤를 이어 국제통화기금 등이 여러 차례에 걸쳐 수십억 달러씩 지원함으로써 독재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대대적인 국토 확장, 국토 재무장, 독재의 주역인 육·해·공 3군의 재정비와 현대화 작업 등을 위해 공적 자금은 물론 북미 민간자본들이 수백억 달러씩 투입되었다. 이 돈들은 수출입은행과 민간 은행, 국제통화기급 등을 통해 브라질로 유입되었다.

한편 '통합 발전' 전략은 도로망 건설과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해 브라질의 인구 저밀 지역을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서 첫 번째로 선정된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열대삼림 지대인 아마존 강 유역이었다. 아마존 강 유역은 무려 6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군부독재가 계속된 21년 동안 100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삼림이 파괴되거나 불태워졌다. 이렇게 해서 얻은 땅의 90퍼센트 이상은 거대 다국적 농가공 식품업체나 목축업체들에게 분배되었다. 삼림은 불태워 일군 땅 위에 북미 농가공 식품업체나 거대 다국적 목축업체들은 방대한 고무나무나 캐슈, 밀 농장들, 혹은 조방 농법에 따라 소를 기르는 데 필요한 초지 등을 건설했다.

수십만 명의 보이아 프리우들과 무농지 농업 노동자들이 북부나 북동부의 황폐한 지역으로부터 파라, 아크리, 론도니아 등의 아마존 인근 지역으로 실려왔다. 이들은 거의 반 노예상태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다.

도로와 신도시 건설, 삼림 벌채, 노동자들과 식솔들의 이송과 정착, 기반 시설 건설, 거대한 댐과 수력발전소 건설 등에 필요한 경비는 물론 외국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부채는 브라질 정부가 자국에 정착한 다국적 기업들에게 브라질 내에서 얻은 이익과 로열티의 본사 송금이나 그 외 재정 부문에 대해 지나치게 좋은 조건을 수락한 탓에 한층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79년 말 미국은 급작스럽게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러자 브라질에 위기가 닥쳤다.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 군부는 다시금 미국의 민간 은행들, 특히 시티은행으로부터 외채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1979년과 1985년 사이에 군 장성들이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황 명목으로 송금한 총액은 이들이 새로이 얻은 외채보다 210억 달러나 많았다.

1985년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인 대통령 호세 사르네이가 정보부 수뇌 출신 마지막 군부독재자 피게이레두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았다. 그는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것이 아니라 ARENA(군인들이 설립한 정당)에 의해서 지명된 대통령이었다. 호세 사르네이 대통령은 부채 상환의 잠정적인 연기를 명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그 뒤를 이은 대통령들은 다시금 지옥 같은 부채의 기제에 휘말렸다. 부채를 갚기 위해 다시 부채를 얻어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부채를 한 번 얻을 때마다 상환 조건이 나빠졌으므로, 브라질로서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계속 빠져들어가는 형국이었다.

브라질이 상환한 270억 달러라는 액수는 브라질리아 국고에서 나온 돈이다.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동안 고금리 정책을 고집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얼마든지 이해 가능하고, 또한 정당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최대한 많은 자본을 브라질 국내로 끌어들어여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세운 금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금리였다. 때로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았다. 이 고금리 정책은 브라질 국내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지나치게 높은 금리 때문에 브라질의 중소업체 대표나 자영업자, 상인들 가운데 기업 확장이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감히 은행 대출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이미 대출을 얻은 기업들(또는 부동산)조차도 기업 활동을 축소하여 재무구조를 건정하게 만들어야 했고, 따라서 사무직원이나 노동자 수를 줄여야 했다.

고금리 정책은 또 다른 왜곡된 결과를 낳았다. 투기를 부추긴 것이다. 국내외 투기자들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10퍼센트에서 12퍼센트의 금리로 개인적인 대출을 받아, 천문학적인 금리를 보장하는 브라질의 국채를 사들였다. 지불 불능 사태에 대비해서 반드시 들어야 하는 보험을 계산에 넣더라도, 이는 막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 돈벌이였다.

오늘날 브라질의 외채는 뱃속에는 기생충이 들꿇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며, 돌아갈 가정도 없어 절망 속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비쩍 마른 어린이들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난 본드를 피워요. 나한텐 미래의 삶이라는 게 없거든요." 헤시피의 카르무 수도원의 계단에 앉아 있던 어린 여자아이는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 나에게 항상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장의 신뢰'라는 표현이다. 국가 또는 국민은 세계화된 자본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지 않기 위해서, 자본 앞에서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경제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신뢰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 걸까? 몸과 마음과 정신 모두를 바쳐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니 오로기 그렇게 할 경우에만 수치의 제국을 움직이는 제후들은 프롤레타리아를 도와주는 은혜를 베푼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그림자가 집단 상상력을 좌우한다. 그의 유령은 브라질리아의 플라날투 대통령 궁에서도 배회한다.

구리 광산 국유화(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큰 노천광산인 추키카마타 광산), 인민연합이 제시한 110가지 사회개혁 프로그램 추진, 거대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 신설 등의 정책을 통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1970년대 말부터 이미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분노를 한 몸에 받았다.

워싱턴에서는 비밀리에 40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당시 가장 큰 규모의 다국적 기업이 인터내셔널 텔레폰 앤드 텔레그라프(ITT)의 회장 그린이 주도한 이 위원회에는 칠레에서 활동 중인 40개의 가장 중요한 회사들이 참여했다. 아나콘다와 케네코트 같은 광산 연합 외에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기업 연합들의 상당수가 참여한 셈이었다.

1970년 말부터 닉슨과 키신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기 시작한 이 위원회는 칠레의 인민연합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과 금융개혁 체제에 번번이 반기를 들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도심에 자리 잡은 모네다 대통령 궁은 펜타곤의 조종을 받는 전투기와 무장 장갑차들의 공격을 받았다. 오후 2시 30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 궁 2층에 자리한 그의 집무실에서 머리에 총을 한 방 맞은 채로 숨졌다. 그 후 들어선 독재정권은 피비린내 나는 억압 정책을 펴나갔다. 칠레에 길고 긴 어둠의 나날이 찾아온 것이었다...





-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中 -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 2

... 2003년 2월 4일 저녁, 내가 늦은 시간에 브라질리아의 플라날투에 있는 브라질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오자 몸집이 크고 유쾌해 보이는 금발의 남자가 광장에서 내 앞을 막었다. 남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인생은 즐겁게'식 사고 방식은 전염성이 강했다. 오래전부터 친구로 지내온 우리 두 사람은 이내 서로를 얼싸안았다.

지능과 에너지를 겸비한 조앙 스테딜레는 산타카타리나로 이민 간 티롤 지방 농부의 후손이었다. 무농지 농촌 노동자 운동을 이끄는 9명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그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손꼽힌다. 룰라 대통령, 농업부장관과 악수하는 그의 모습은 지에 전설이 되었을 정도다.

"자네, 내일 뭐 할 건가?" 그가 나한테 물었다.

"리우데자네이루행 비행기를 탈 걸세. 제네바로 돌아가야 하니까."

"말도 안돼! 내일 자네는 리슈(쓰레기 하치장-옮긴이)에 가야 하네. 거기에 가보지 않고는 이 나라 정부와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을 걸세. 새별에 가야 하네. 관용차를 타지 말고, 유엔 직원들도 동행하지 말게. 택시 타고 혼자 갔다 오게." 티롤 출신 농부는 도저히 어기면 안 될 것 같은 투로 마랬다.

나는 새별에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벌써 해가 높이 올라와 있었다. 급히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택시에 올라탔다. 아침나절 브라질리아의 교통 혼잡은 파리에서보다 더 지옥 같다. 우중충하게 잔뜩 흐린 하늘에서 열기가 내려왔다. 내가 묵고 있던 아틀란티카 호텔은 시내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동쪽에 위치한 시립 쓰레기 하치장까지 가는 데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브라질리아에는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하루 24시간 내내 어어지는 트럭의 행력은 실어온 쓰레기를 하치장에 내려놓는다. 3제곱킬로미터에 걸쳐 거대한 쓰레기 피라미드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쓰레기 하치장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철제 울타리 앞에서는 군대 경찰에서 파견한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다. 그 주위로는 짙은 파란색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기관총과 검은 고무로 된 긴 막대기를 든 채 경비를 서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2만 가구가 모여 산다고 알려져 있는 빈민촌이 도심의 마지막 고층 건물과 청제 울타리 사이의 공간에 펼져진다. 종이 상자를 펼친 골판지와 나뭇조각, 골진 양철 지붕들이 바다처럼 일렁거린다. 이곳은 기아의 희생자, 라티푼디움의 희생자, 고이아스 주의 농지를 독점하고서 소작인들은 내좇은 대규모 농가공 식품업 연합의 희생자, 일용직 농업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의 모여 사는 곳이다.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600명가량의 장년 남자들과 젊은이들의 그날그날 하치장에 들어갈 수 있는 표를 지급받는다. 600명을 선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곳 군대 경찰의 관습을 아는지라, 아마도 부패가 이 표를 분배하는 데에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커다란 검은 눈의 어린아이들, 한눈에 척 봐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그래도 좋다고 떼를 지어 뛰어다닌다. 뚜껑 없는 하수도와 굶주린 개들, 판잣집들과 아이들이 제멋대로 뒤엉켜 커다란 덩어리를 이룬다. 아이들이 택시를 에워싼다. 웃으면서 손뼉을 치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 사이를 뚫고 나와 초병이 있는 곳으로 간다. 대위가 입구에서 나를 기다린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다. 스테딜레가 전날 전화를 해놓은 모양이다.

'조금 더 일찍 오실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대위가 입을 연다.

엄마가 의 품에 안긴 젖먹이들의 눈과 입, 코에는 보라 빛깔의 파리들이 들러붙어서 윙윙 소리를 낸다. 곳곳에 배설물이 널려 있다. 파리 떼들은 배설물과 젖먹이들의 코 사이를 부지런히 왕복한다.

브라질에서 군대 경찰은 프랑스의 헌병대와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군대 경찰은 브라질 연방공화국을 이루는 각각의 주의 주지사들의 지휘를 받는다. 대위는 서른 살 전후의 나이로, 흑밸 혼혈인 특유의 섬세한 얼굴 윤곽과 칠흑처럼 새까만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활기 넘치며,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초소 주위와 철제 울타리 너머 쓰레기가 쌓여 있는 진흙탕 속을 서성거리는 '가난뱅이들'에 대해서는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위의 말은 매우 예의 바르고, 방문갱의 질문에 적절하게 응답했다. 그는 나의 방문을 무척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선생 같은 유럽인들은 모두 부자입니다! 당신들은 모든 걸 태워버리죠!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가난합니다. 쓰레기 하치장은 이 근처에 사는 몇몇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소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쓸모가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나뭇조각 하나, 알루미늄 조각 하나가 이 빈민촌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게 되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상자들은 도매상들에게 팔립니다. 알루미늄 상자, 맥주 깡통들은 납작하게 만든 다음 팝니다. 수집된 유리들도 팔리죠. 수완 좋은 리셰이루(lixeiro,리슈에서 일하는 사람-옮긴이)라면 하루에 5레알 정도는 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물 찌꺼기, 채소, 과일 가축 배설물 등으로 돼지를 치죠. 쓰레기 하치장 덕분에 선생님께서 지금 보고 있는 이 지역 전체가 살아갈 수 이쓴느 겁니다." 대위는 팔을 내밀어 그의 앞에 펼쳐진 하치장과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 숲을 갈라놓는 공간 안에 최대한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군대 경찰은 쓰레기 더미가 피라미드처럼 쌓인 하치장 안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아침에 표를 나눠주고 하치장 출입을 관리할 뿐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죠. 아이들한테는 위생상 좋을 게 없거든요."

대위는 나한테 이가 모두 빠져버린 덩치 큰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60세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는 아래위로 군데군데 기름때가 낀 갈색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목발을 짚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까 다리가 하나뿐이었다. 무슨 색이라고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려운 빛깔의 밀짚모자가 남자의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남자는 안색이 창백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역한 냄새도 풍겼다. 남자의 시선은 무기력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은 것 같았다. 게다가 연신 비굴하게 굽실거렸다. 나는 남자에 대해서 거의 즉각적으로 반감을 느꼈다.

"이 사람은 페이토르입니다. 쓰레기 줍는 사람들을 관리 감독하죠. 이자는 하치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각자 어느 곳으로 가서 일하라고 지시합니다.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상당한 권위가 필요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잠깐만 한눈팔면 싸움이 그치질 않는다니까요."

밀짚모자를 쓴 남자는 두 명의 피스톨레이루를 불렀다. 그의 부름을 받자 흑인 두 명이 나타났는데, 남자의 경호원임에 틀림없었다. 우리는 함께 (쓰레기) 산길로 접어들었다. 목발에 의지해서 걷는 서글픈 모습의 외다리 반장 때문에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20분쯤을 걸어서 겨우 도착했다.

나는 악취 때문에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쓰레기 산들 사이로 트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가는 통에 양옆으로 하수용 배관까지 거느린 널찍한 길은 마치 협곡 같았다. 도로에는 여기저기 홈이 파여 있었다. 짐을 실은 무거운 트럭의 바퀴들이 남겨놓은 자국들어이었다. 트럭은 무게 때문에 비틀거렸다.

끝에 쇠로 만근 갈고리가 달린 긴 막대기를 들고 노인들과 청소년들이 쓰레기 피라미드 위로 올라갔다. 나이 든 남자들은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다. 머리에는 쓰레기 하치장 입구에 들어선 코카콜라 매장에서 지급한 챙 달린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양이만큼이나 몸집이 큰 쥐들이 젊은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녔다. 이들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뼈만 앙상했으며, 입 안에는 이미 제대로 된 치아리고는 없었다. 이들은 고무 샌들 차림이라 작업 중에 쉽게 상처를 입었다. 젊은이들은 맨손으로 쓰레기를 분리해서 종류별로 정해진 위치로 운반했다. 아들, 아버지, 사촌이 함께 나귀에 맨 수레를 밀었다. 못쓰게 된 타이어 두 개위에 엉성하게 짜맞춘 수레였다.

수레마다 각기 다른 물품을 운반했다. 어떤 수레에는 수레가 찌그러질 정도로 많은 상자와 폐지들이 실려 있는가 하면, 어떤 수레에는 금속성 폐기물이 잔뜩 실려 있었다. 각종 유리병들과 깨진 유리 조각을 싣고 있는 수레도 여러 대 눈에 띄었다. 중간 상인들은 울타리 반대쪽 입구 근처의 공터에서 물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물을 실은 수레가 다연 압도적으로 다수였다. 말이 좋아 음식물이지, 사실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색깔의 죽 같은 것들의 회색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긴 채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양동이 속에는 밀가루, 쌀, 말라비틀어진 채소, 고기 조각, 생선 대가리, 뼈 등이 제멋대로 섞여 있었다. 이따금씩 죽은 토끼나 쥐들도 눈에 띄었다. 하여간 모든 양동이마다 심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수레마다 보랏빛 파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파리들의 끝없는 행진이 빚어내는 웅웅거림으로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파리들은 젊은이드르이 병든 눈가나 노인들의 앙상한 다리에도 제멋대로 달라붙었다. 나는 작업반장에게 양동이 속에 든 내용물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돼지 먹이용"이라고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그의 손에 10레알짜리 지폐를 한 장 슬며시 쥐여줬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오. 나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오. 그러니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반드시 알아야겠소." 나는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업반장은 나의 임무 따위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10레알짜리 지폐에는 무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배를 곯고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그가 변명이라도 하듯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두 명의 경호원을 거느린 이 무기력한 사나이가 그제야 내 눈에 호의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中 -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 1

...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부자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남반구가 북반구, 특히 북반구의 지배계층을 위해 돈을 댄다. 오늘날 북반구가 남반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부채를 제공하고 그에 대해서 받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흘러들어오는 자본의 양은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흘러들어가는 자본의 양을 초과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해마다 부자 나라의 지배계층에게 자신들이 투자나 협력 차관, 인도주의적 지원 또는 개발 지원 드의 형태로 받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한다.

2006년 북반구 선진 산업 국가들이 제3세계 122개국의 개발을 위해 지원한 돈은 580억 달러였다. 같은 해 제3세계 122개국은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황 명목으로 북반구 은행에 포진한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에게 5,010억 달러를 지급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 속에서 부채는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을 노예 상태로 만들어 복종시키기 위해서 기관총이나 네이팜탄, 탱크 다위는 필요 없다. 부채가 그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 부채는 두 부류의 인간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 다시 말해서 외국 채권자들과 해당 국가의 지배계층 구성원들이다. 우선 채권자들의 경우를 보자.

채권자들은 채무국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매우 엄격한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제3세계 국가들은 빌린 돈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이자율보다 5배에서 7배쯤 높게 책정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몇 개 되지도 않는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나 탄광, 실속 있는 공공서비스(전화 사업 등)을 민영화하거나 외국(채권자들 자신)에 판매할 것을 종용하며, 군대의 무장을 위해서 외국(채권자들의 나라)의 무기를 구입하도록 촉구하는 식이다.

부채는 또한 채무국 지배계층 구성원들에게도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남반구에 위치한 상당수 국가의 정부는 결국 자국민의 극소수, 이른바 '매판 상인(comprador)' 즉 콤프라도르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매판 상인이란 정확하게 누구를 지칭하는가? 두 가지 부류의 사회 계층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부류. 식민지 시대엔 외국 주인들이 원주민 보좌관들을 필요로 했다. 주인은 원주민 보좌관들에게 특혜를 베풀어주고, 그럴듯한 지위를 부여했으며, (소외된) 계급의식을 심어주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같은 계급의식은 식민지 시대가 끝나 주인이 떠나간 후에도 계속 남게 되었고, 이들은 식민지 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세워진 독립 국가의 신진 지도계급이 되었다.

두 번째 부류. 남반구 국가들의 대다수는 오늘날 경제적으로 외국자본과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외국의 열강들은 채무국 현지에서 지도자와 현지 간부들을 고용하며, 이들은 현지에서 일어나는 상거래를 위하여 현지 변호사들과 기자들에게 자금을 댄다. 이들은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주요 군 장성 및 경찰 수뇌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이 바로 매판 상인들의 두 번째 부류다.

콤프라도르는 '사들이는 사람'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콤프라도르 부르주아라고 하면, 새로운 봉건제후들에게 매수된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기들을 낳아준 민족이 아닌 남의 나라 출신 봉건제후들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이집트의 국가 원수인 호스니 무라바크는 부패와 배임으로 똘똘 뭉친 정권을 지휘하고 있다. 그가 펼치는 국내 정치나 지방행정은 전적으로 그의 후견인격인 미국 정부의 법령과 이익을 대변한다.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파키스탄의 지도자다. 미국의 정보조직이 그를 보호하고 지지한다. 그는 매일 워싱턴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다. 온두라스나 과테말라의 라티푼디움 소유주,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의 지도자 계급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이들의 이익은 현재 이들 나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국가의 기본적인 이해관계, 국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수요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 콤프라도르 계급은 너무나 오래전부터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애국심으로 포장된 이들의 발언이 너무도 공격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을 '당연한' 지배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들이 주인으로 모시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 옆에 붙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피지배적인 상황에 놓인 나라의 지배계층에게 국가의 부채는 많은 이권을 보장한다. 가령 멕시코,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콩고민주공화국, 방글라데시 등의 나라가 댐이며 도로, 항만 시설, 공항 등의 사회기반 시설 건설을 계획한다면? 이들 나라에 최소한의 학교와 병원이 필요하다면? 두 가지 해결책이 가능하다. 첫째, 누진세율에 따라 세금을 거둔다. 둘째, 외국 은행 차관단과 협상을 해서 차관을 얻는다.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도 안되지!

외채를 끌어다 쓴다고? 그보다 더 쉬운 일은 없지!

제3세계 국가 대다수는 거의 전적으로 콤프라도르 계급의 이해관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인 리듬으로 두 번째 해결책을 선택한다. 그때마다 외국 은행 차관단은 이들의 말 한마디에 얼른 돈을 내준다.

그런데 이 부채라는 것은 현지 지배계급 구성원들에게는 수많은 이익을 안겨준다. 거액의 부채를 끌어와서 건설한 사회기반 시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이들이다. 국가가 외채를 들여와서 제일 먼저 건설하는 것은 도로이며, 그 덕에 이들은 자신들의 거대 영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항만 시설을 건설하면 영지에서 수확한 면화, 커피, 설탕 드의 수출이 용이해진다. 육지 교통이나 항만 설비뿐 아니라 국내 항공 노선도 개설하게 되고 병영이나 구치소도 순차적으로 건설하게 된다...



... 한 나라가 북반구 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등의 채권 기관에 이자 지불이나 원금 상환을 거부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가?

지불을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 파산을 선고하는 공식적인 절차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국제법은 침묵을 고수한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볼 때, 지불 불능 상태의 국가는 전부 또는 일부 변제 불능 선고를 받은 민간 기업이나 개인과 독같은 대접을 받는다.

예를 들어보자. 약 20년 전에 알란 가르시아가 이끄는 페루 정부는 재앙에 가까운 자국의 재정 상태로는 브레턴우즈 기관들과 외국 민간 은행으로부터 얻은 외채에 대한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전체 외채 중에서 30퍼센트만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는?

어육 분을 싣고 항해 중이던 페루 선박 한 척이 함부르크 항구를 지날 무렵 독일 은행들로 구성된 채권단의 요청으로 독일의 사법 당국은 이 선박을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그뿐이 아니다. 당시 페루 공화국은 수준 높은 국제적 항공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페루 정부가 일방적으로 외체의 일부분에 대해서만 이자를 지급하고 원금도 일부분만 상환하겠노라고 발표한 직후부터 뉴욕이나 마드리드, 런던 등 세계 주요 공항에 착륙하는 페루 소속 비행기들은 해당 채권자들의 요청에 따라 발이 묶였다.

요컨대 자국만의 완전한 자치주의를 고수하며 폐쇄정책을 밀고 나갈 작정이 아닌 한, 오늘날 제3세계의 그 어떤 채무국도 고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채무 변제 불이행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럴 경우 모든 국제 교류의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中 -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

...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홍보부처를 두고 있다. 공식 명칭으로는 대개 기업 커뮤니케이션 부서라고들 한다. 이 부서에서는 신흥 봉건제후들이 여론에 주입시키고자 하는 세계관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이를 옹호하며 널리 알리고 정당화시키는 일을 주된 업무로 삼는다.

장-폴 마라는 벌서 2세기나 앞서서 오늘날 광고나 PR계의 말재주꾼들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상세하게 묘사했다. "여론이라는 것은 무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무지는 극단적인 독재가 싹틀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 사물에 대해서 건전하게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에만 집착할 뿐이다. 로마인들도 카이사르에게 그가 왕이라는 지위를 가졌을 때에는 거부했던 권한을 황제라고 이름을 바꾸니 아무 저항 없이 내어주지 않았던가? (.....) 말에 현혹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파렴치한 사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만 되어 있다면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반대로 칭송받아 마땅할 사물들이 아름답지 못한 말로 묘사되면 그것을 혐오한다. 그러므로 행정부의 일상적인 업무란 말의 뜻을 왜곡함으로써 민중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신량특별조사관이라는 나의 직책 때문에 나는 이들 신흥 봉건 제후들과 토론을 나눌 때가 종종 있다. 논리에서 밀리거나 자신들의 결정이 초래하는 참담한 결과로 화제가 옮겨갈 때마다 신흥 봉건제후들이 어김없이 내세우는 변명이 있다. 바로 '소통 부족'이다...



... 경쟁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사납고 맹렬하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는 경우란 없다. 매 순간이 치열한 전쟁의 연속이다. 정글의 법칙만이 지배할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늘 맹렬하고 냉소적이며 냉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얼마간의 공감을 느끼는 인류애라는 명분 때문에 이윤 극대화라는 절대 절명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건 곧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이와 같은 딜레마를 겪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적지 않다.

네슬레의 책임자인 페터 브라벡의 예를 들어보자.

에티오피아에서는 720만 명의 남녀노소가 기아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출품은 커피다. 커피야말로 에티오피아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3년 전부터 생산자들에게 지불되는 값이 급락하고 있다. 따라서 수백만 명의 농부들의 가정은 와해되거나 대도시 주변 빈민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들은 거리를 배회하다가 서서히 죽어간다.

브라벡은 세계 시장에서라면 얼마 안 되는 값에 구입할 수 있는 원두에 대해서 에티오피아 농부들의 딱한 사정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높은 값을 지불해야 할 것인가? 혹은 오늘날 무소불위의 네슬레를 있게 만든 이윤 극대화 원칙을 포기함으로써 그의 경쟁자들인 아처 다니엘스 미들랜드, 유니레버, 혹은 카길 들이 커피시장에서 네슬레를 거꾸러뜨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요제프 아커만은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은행인 도이체 방크의 회장이다. 그는 스위스 루체른 태생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다. 그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부채의 극심한 폐해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채에 대한 전략을 바꾸는 않는다. 만일 그가 일방적으로 채무 변제를 포기한다면, 이는 수천만 명의 삶을 구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세계 자본시장에서 도이체 방크의 위상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득을 보는가? 물론 그의 경쟁자들인 크레디 스위스 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맨해튼 은행 등이 덕을 보게 된다.

부채와 기아 덕분에 나날이 번영하고 있는 세계화된 자본주의 맥락에서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끈끈한 연대의식을 지닌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들이 세운 제국이 와해될 것이고, 반대로 그들이 연민이나 인류애 등을 지옥에 던져버리고 사납고 냉소적인 야수처럼 행동한다면 투자가 증대되고 이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속구칠 것이며, 발밑엔 시체가 즐비하게 널릴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이들 신흥 봉건제후들이 그들의 활약을 통해서 거두어들이는 엄청난 액수의 보수를 고려한다면, 연민의 길을 택해서 제국을 와해시키는 선택은 이들에게 결코 매력적일 수 없다...



... 다른 종(가령, 토마토나 감자, 염소 등)의 유전자 하나를 이식받은 쌀은 기후 변화에 강한 벼이삭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건조한 토양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거나 더 많은 이삭을 맺는다거나 살충제가 필요 없다거나 하는 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렇듯 유전자 변형이 이루어진 식물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곡물을 생산하게 된다는 양면을 지닌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바꿔 말해서 광우병만 봐도 이 문제는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식물의 유전자 변형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이식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식을 통해 이루어진 염색체가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이 보기엔 유전자 변형 식물이야말로 천문학적인 이윤을 보장해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다. 특허권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된 종자를 사용하는 농부가 지난해의 수확에서 다음 해의 수확을 위해 일정 비율의 종자를 남긴다면, 농부는 이 종자의 특허권을 가진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일종의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농부가 유전자 변형된 종자를 사용하되 그 종자가 번식이 불가능한 종자라면('터미네이터' 특허), 농부는 해마다 기업으로부터 새로 종자를 사들여야 한다.

유전자 변형 유기체의 생산과 보급은 자본주의 추종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생물과의 불공정한 경쟁을 근원부터 차단하겠다는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자연, 즉 생명은 식물이나 인간, 먹을거리, 공기, 물, 빛 등을 무료로 생산하고 얼마든지 재생산한다. 자본주의자들에게 무료로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공재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자들은 무료라는 것을 끔찍하게 혐오한다...



... 세계식량계획은 재난을 당한 지역에 수만 톤의 식량, 특히 옥수수를 긴급 지원했다. 이 옥수수의 상당 부분은 미국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100퍼센트 유전자 변형된 품종의 옥수수였다.

2002년 10월 12일, 잠비아 대통령은 국제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다. 상당수 잠비아 국민들이 식량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옥수수를 '독이 든 식량'이라고 비난하며 거부했던 것이다. 그는 세계 식량계획 측에 '독이 든 식량' 배분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나의 기자 회견이 끝나갈 무렵 아프리카의 한 젊은 여기자가 잠비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전형적인 스위스인답게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국제학계는 유전자 변형 생물이 공중보건에 야기할 수도 있는 위험을 놓고 양분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유전자 변형을 거쳐 만들어진 혼합 식량을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생물학자도 의사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이 문제에 관해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학 있으며, 따라서 유전자 변형 생산물의 유통을 금지하고 (유럽연합은 동물 사료용 혼합 콩의 유통만을 인정하고 있다)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워싱턴 행정부와 공개적인 갈등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 때문에 유럽연합을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상태입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일에게 유전자 변형된 생물의 무독성을 의심할 권리가 있다면, 잠비아 대통령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겠죠. 따라서 나는 아프리카의 거부가 정당하다고 봅니다."...



... 유전자 변형 생물에 관한 갈등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걸려 있는 절박한 문제다. 미국 농가공 식품업계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자신들이 보유한 종자들과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제품들을 파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적지 않은 나라에서,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미국 업체들은 유전자 변형 생산품 금지 조항을 피해가기 위해 순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비고 있다.

이들 업계의 선두주자가 바로 몬산토 사다. 백악관에서 이 회사의 입김은 대단하다. 세계유전자 변형 종자(관련 제품 포함) 시장의 개방이 몬산토 사의 최우선 과제다. 몬산토 사가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자 변형생물(GMO) 생산 기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7천만 헥타르의 GMO 경작지 중의 90퍼센트가 몬산토 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 볼리비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볼리비아 정부는 세계은행의 압력에 못 이겨 공공 상수도 망을 민간 기업에 팔았다. 계약이 체결되자 민간 기업들은 서둘러 물값을 2배로 올렸다. 이는 대다수 볼리비아인들이 식품비보다 훨씬 비싼 물값을 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수도사업의 독점권을 민간 기업에게 이양할 경우, 사람들의 허가 없이는 마을 앞 공동우물에서조차도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다. 대규모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나 소규모 소작농들 모두 자기 땅에서 빗물을 받아 쓰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허가증을 사야만 한다.

그렇지만 볼리비아인들, 특히 에보 모랄레스에 의해 조직화된 인디언 주민들은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볼리비아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거센 저항 앞에서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민영화 법안을 철회했다(가장 격렬한 폭동은 코차밤바에서 일어났다. 이 도시에서 식수 사업자 권리를 따낸 회사는 미국의 거대 다국적 기업인 벡텔 사였다.)

앞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네슬레는 가장 막강한 식수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수 사업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자다. 파키스탄의 경우를 보자.

몇 년 전 파키스탄의 언론에서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어졌다. 네슬레 측에서는 이 캠페인이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예방 캠페인'에서는 카리치나 물탄,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라왈핀디 등의 공공 상수도 시설을 통해서 공급되는 물이 비위생적이고 건강을 위협하므로 이를 저지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물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준에 합당한 물이었다.

이 '예방 캠페인' 소동이 있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네슬레는 파키스탄에서 낱개 병으로 포장된 생수 판매를 시작했다. 네슬레 사의 마케팅 귀재들은 이 생수에 '퓨어 라이프'라는 기가 막힌 이름을 붙였다.

닐스 로즈만은 그의 저서 『파키스탄의 식수 위기, 병에 담아 파는 식수 문제. 네슬레의 류어 라이프의 경우』에서 파키스탄 네슬레 사가 챙긴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익과 극단적인 냉소주의적 전략에 대해 파헤쳤다(2005년 이슬라마바드에서 출판)...



...이윤 극대화라고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희한하게도 가장 중요한 이 과제에 대해서만큼은 브라벡의 '경영 관리 원칙'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수도사라면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관행을 요구한다. 냉전시대에는 갑작스러운 가격 하락을 막고, 가격 하락으로 인해 생산자들이 공산주의 쪽으로 경도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상산자와 구매자 사이에 협약이 이루어져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된 오늘날에는 세계무역기구가 과거의 협약을 하나하나 무효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베베이 네슬레 왕국에 군림하는 수도사는 세계무역기구의 방식을 누구보다 열렬히 선호하는 사람이다...





-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되는가?'中 -

매트릭스와 헤게모니

영화 매트릭스는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찬 영화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열연한 주인공은, 토머스 앤더슨에서 네오(Neo)로 이름이 바뀝니다. Neo는 New 입니다. 이는 주인공이 ‘깨달음’을 통하여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매트릭스에 갇혀 사육당하던 ‘유기체’에서, 이제 자유의지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려면 ‘자각’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매트릭스의 교묘한 전략, 교묘한 논리에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처지를 제대로 ‘자각’하는 것만큼 권력집단에게 위협적인 것은 없습니다.



‘자각’을 위해서는, 매트릭스가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것은 ‘접합’이라고 부르는 수법입니다. 접합은 단어와 단어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의미와 의미, 개념과 개념을 결합시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범 김구 선생’ 과 ‘테러리스트’ 를 결합시키려고 듭니다.

‘일제시대’ 와 ‘근대화’ 를 결합시키려고도 합니다.

‘부자 감세’ 와 ‘경제성장’ 을 결합시키려고도 합니다.



이런 사례들이 접합을 시도하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은 속이기 쉽다,



히틀러가 한 말입니다. 대중을 속일 때 사용하는 수법이 ‘접합’입니다. 접합을 통해 어떤 의미나 개념에 전혀 새로운 의미와 위치를 부여하고,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만들려 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접합’이라고 부릅니다. 부정적인 의미를 접합시키려고 드는 것을 ‘딱지 붙이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자각’을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 사회구조는 그 속에 놓인 사람에게는 그게 전부인 것, 고정된 것, 바꿀 수 없는 것,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물고기로 하여금 물 밖으로 펄쩍 뛰어올라 ‘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역사’ 공부입니다.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



현재의 사회구조가 일련의 헤게모니 과정에 있어서 ‘한 순간’에 불과한 것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의 순간이 그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 그리고 지금의 순간을 거쳐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지 예측도 해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정해 나갈 수도 있겠다, 는 비전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역사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점들입니다.




- 세일러, 다음 아고라 경제 토론방, <매트릭스와 헤게모니> 중,2009.01.01

한예종 학생의 글

http://blog.daum.net/cinephile85/802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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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지만... 이건 참...

이정도면 국가적 손실 아닌가?

자라나는 지식인들보다는 코드가 중요...하겠지...

주식관련

세일러,상승미소,SDE,나선 님들, 그리고 미네르바 님,... 그녀생각,양원석 님 글도 애독하고있으며, 김광수경제연구소 글도 애독하고있습니다.



http://agora.media.daum.net/profile/list?key=GzmJaBl9eZM0&group_id=1

▶◀2009년 5월 25일 오전 4시 13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출처 ★야마꼬★ | 야마꼬
원문 http://blog.naver.com/icebug58/150048136687 이 저작물은 아래 조건 만족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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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서 살다보면 어떤이들은 자랑스러운 시대를 만들고,

어떤이들은 부끄러운 시대를 만든다.

다음 세대는 이를 평가하여 감사하거나,원망할 자격이 있다.



나는 부끄러운 시대를 만든 한명이 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운역사를 만든 세대가 되고 말았다.



다음 세대는 우리를 원망하는것을 주저하지마라

그리고 너희는 부끄러운 세대가 되지 마라